생각보다, 아니 남들에 비해 싫다는 표현을 많이 하는 편에 속한다.
회사로 복귀하던 중, 팀 저녁으로 코다리 찜이 어떠냐는 팀장님의 말에 육식 파인 동료들이 생각났다. 나는 눈을 맞추고 웃지만, 미간을 찌푸리며 도리도리를 했다. 미루고 미루다 하루에 몰아준 일감을 실시간 퀘스트 깨기처럼 해쳐나가자, 눈치 없는 상사가 퇴근 시간 가까이 새로운 일을 주었다. 억눌렀던 감정이 터지기 직전, 깊은 한숨과 일시 정지, 아이컨텍 뒤 이어진 몇 초간의 정적으로 당신의 행동이 무척 싫다는 표현을 했다. 전적으로 나의 공이라고 할 순 없지만, 그 날 우리 팀은 코다리 찜을 먹지 않았고, 새로운 일은 다음 주 진행으로 스케줄이 조정되었다.
생각해보면 하루에도 여러 번 ‘죄송합니다’라는 말로 클라이언트의 무리한 부탁을 거절하고, 허무맹랑한 의견에는 직접적으로 싫다고 말하면서 언어, 비언어를 총동원해 '싫음'을 표현을 하고 있었다.
물론 이 부정적인 단어를 사용할 땐 나름의 규칙이 있다. 우선 기분을 상하게 할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분위기를 파악하고, 다수의 의견 앞에 나의 싫음 만을 주장하지 않으려고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대안도 없이, 무조건 싫다고만 하지 않으려 한다. 정말로 답도 없이 싫을 땐, 함께 답을 찾는 노력을 기울인다. 이러한 이유에서인지, 감사하게도 주의 사람들은 내가 하는 싫다는 표현을 기분 나쁘게 받아들이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소소한 것(물론 기준에 개인차가 있겠지만)을 제외하고 난 어제도 하기 싫은 일에 대해 싫은 티를 냈지만 결국 하겠다고 말했다. 대부분이 그렇다. 하고 싶은 일 보단, 싫지만 해야 하는 일이 더 많다. 나이가 들수록 기회는 줄고, 내가 거절하면 나 대신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줄을 섰으니까.
무엇보다 이러한 부정적 표현을 사용할 땐,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내적 에너지가 적은 나는 그래서 대체로 참는 편이다. 하지만 여러 시간을 거치면서 무조건 하겠다는 속 없는 긍정이, 나와 우리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경험했다.
내키지 않았지만 불편한 티를 감추고 하겠다고 답했다. 내 속이 어떤지는 일하는데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말을 하지 않으니 상대는 계속 몰랐다. 결과적으로는 긍정적인 답변이었기에, 그는 자신의 태도가 정당한 거라고 확신했을 수도 있다. 더 나아가 앞으로도 쭉, 그렇게 행동해도 된다는 당위성을 부여받았고 여길지도 모른다.
그리고 마침내 우려했던 일이 현실이 되었다. 우리는 곧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번엔 그렇게 해줬잖아요. 왜 이번엔 안돼요?" 무례와 불합리한 상황은 개선되지 않고, 그 피해는 내게서 동료, 후임, 조직 전체로 퍼져나갔다. 나는 그리 정의감이나 사명감이 높은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그 일이 있은 후, 싫다는 의사를 지혜롭게 표현할 줄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어제 내가 하기 싫다고 간접적으로 밝힌 일을 시작하는 첫날이다. 그리고 이 일을 썩 내켜하지 않았다는 걸 결제권자가 안다. 맞다. 안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하기 싫은 일이 사라진 건 아니니까. 다만 그 자리에서 그간 내가 겪었던 고충을 말했고, 그 사실을 상대가 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조금 후련해졌다. 그러니 불평은 잠시 접고, 잘해보자는 마음으로 임했다.
이 것이 내가 싫음을 표현하면서 배운 또 한 가지다.
당장 바뀌는 건 없지만, 그래도 누군가 이 상황을 안다는 사실은 추후 문제를 개선해 나가는데 도움이 된다. 그 혜택이 내게 올 지, 안 올진 중요하지 않다. 알고 있다는 것, 그래서 변화될 거란 사실이 더 중요하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그 변화를 경험하게 되는 날이 내게도 올 것이기에.
고급지게 싫음을 표현하기 위해 오늘도 나는 외국어 능통자들에게 묻고 있다. 한 번에 알아들을 수 없는데 왠지 약 오르는 뉘앙스를 지닌 ‘싫습니다’를 표현하는 외국어가 뭐 없겠냐고. 소심하기에 나름대로 눈과 표정으로 말하는 비언어적 '싫습니다'에 고급진 외국어 날개를 달아주고 싶다.
좋은 표현이 있다면 DM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