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by 양보

한동안 동굴에 들어가 있던 적이 있다.

수다스러운 사람이 말을 잃을 정도로 모든 게 상처였던 시절. 회사에서 오는 스트레스에서 비롯되었던 것이었기에 사람들은 회사를 그만두길 권했다. 그리고 그간 힘들었으니 좀 쉬고 여행도 다녀오라는 말에 퇴사를 하고 여행도 다녀왔다.


대게들 힘든 시간을 겪는 사람에 이런 말을 한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하지만 특별히 달라지는 건 없었다. 환경을 바꿔도, 쉬어도, 나는 자주 혼자만의 동굴에 갇혔다. 얼마의 시간이 흘러야 괜찮아지는 걸까? 나는 왜 괜찮아지지 않는 걸까?


반년쯤 시간이 흐르자, 생활비가 부족해졌다. 현실 앞에 어쩔 수 없이 다시 일할 준비를 했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엔 다시 상처 받을까 하는 두려움과 나약한 자신을 향한 괜찮지 않은 감정이 남아 있었다. 그래도 간간히 식탁에 나와 가족과 이야기를 하고, 친구도 만나고 있으니 괜찮아지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생은 언제나 그러하듯, 삶을 계획대로 살게 가만 놓고 보지 않는다. 이력서를 넣고 면접을 보러 다니던 중 엄마가 쓰러지셨다. 합병증으로 급성신부전증이 오면서 엄마를 간병할 사람이 필요해졌다. 나는 취직 준비를 접고 엄마 곁을 지켰다. 어렵게 사람들 사이로 나올 마음을 먹었는데, 부딪힌 현실 앞에 나는 더 깊이 동굴로 들어가 버렸다.


격 일로 엄마를 모시고 투석실을 오가고, 이식 수술이 결정되면서 퇴원하기까지 가족과 함께 병실을 지켰다. 퇴원 후에는 감염 방지를 위해 매일 온 집을 소독했으며, 영양사님이 알려준 식단대로 음식을 만들었다. 물론 엄마가 시작한 일을 내가 마무리 짓는 식이었지만, 지루하고 지칠 수 있는 루틴 속에서도 엄마는 참 씩씩했다.


정신없이 엄마와 시간을 보내는 사이 또다시 반년이 지났다. 아무도 알 수 없고, 대신해 줄 수 없는 아픔을 홀로 견디면서도 엄마는 그 시간을 그저 흘려보내지 않으려고 하셨다. 자신의 몸을 살피며 건강하게 회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셨다. 그런 엄마의 모습은 달라지기 위해 동굴 속에서 긴 시간 묵묵히 쑥과 마늘을 먹었다던 신화 속 곰을 떠올리게 했다. 그에 비해 나는 궁지에 몰리면 머리를 모래에 박고 움직이지 않는 타조였다. 성실히 시간을 보낸 엄마는 감사하게도 재입원 없이 건강을 회복하셨다.


그렇게 깨달았다.

시간은 그저 흘려보내기만 해서는 절대로 괜찮아지지 않는다는 걸. 백번 양보해서 시간이 흐름으로 괜찮아질 수 있다고 해도, 결국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결정해야 하는 때가 온다는 걸.



아픔을 끝내기 위해 시간에 직면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나의 엄마처럼 포기하지 않고 하루, 하루를 살아내는 것 자체가 노력인 사람도 있을 것이고, 잠시 문제에서 벗어나 쉬면서 마음을 새롭게 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나는 타조가 되어 문제로부터 숨고만 싶을 때, 잠시 혼자 있기를 택한다. 많은 말들에 휘둘리지 않도록 일기를 쓴다. 문제를 정확히 보려는 노력이다.


그러한 시간을 통해 내 아픔에만 고개를 숙이고 있느냐, 그간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연약한 자신은 미워해야할 대상이 아니라, 인정해줘야 할 부분이라는 것도 받아들이게 됐다. 그리고 연약함을 인정하자, 함께하는 방법을 익히게 되면서 오히려 상처 받는 부분이 줄어들었다. 한 걸음, 한 걸음 시간 속에 발을 내딛으려 지금도 노력하고 있다.

그 뒤부터 '시간이 흐르면 괜찮아진다'는 말 보다, '시간을 보내어 괜찮아지길'이라는 말로 힘든 시기를 보내는 이들을 격려하게 되었다. 더불어 그 시간이 홀로 외롭지 않도록, 곁에 있어주려는 노력을 기울이려 한다.


부디 당신의 시간이 다행일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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