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함.

by 양보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 그 이치를 깨달은 건 오 년 전이다.


일 년 반을 쉬다가 경력과 무관한 분야로 취업을 했다. 오래 쉬었고, 경험이 없다 보니 성실하기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매일 남들보다 일찍 출근했다. 제일 먼저 탕비실을 정리하고, 쓰레기통을 비우며 다른 직원들의 출근을 맞이했다.


텃세가 심한 바닥이라고 들었는데 다행히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좋았다. 그래서 더욱 열심히 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마다하지 않았다. 새로운 일을 배우는 건 즐겁고, 그만큼 할 수 있는 일이 는다는 건 내게도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경계 없는 업무가 자꾸 더해졌다. 큰 일은 아니지만 번거롭고 손이 많이 가는 분리수거나 비품 주문, 점심 심부름과 같은 자잘한 일부터 굳이 담당이 필요한 건지 알 수 없는 복합기에 A4용지를 체우는 일에도 내 이름이 불러졌다. 모든 직원이 그랬던 건 아니다. 얄밉게 구는 몇 사람의 문제였기에 그저 참았다. 참았는데, 참는 게 능사가 아니더라.


하루는 늦잠을 자서 출근이 늦었다. 서둘러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켜니 모니터 속 시계가 9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지각이라 보기 힘든 시간. 하지만 이내 곧 내 귀를 의심할만한 소리가 들렸다.


"보람씨, 오늘 늦었네? 왜 늦었어?"


추궁스런 질문에 나는 기분이 상했다. 어쩌면 부장님은 평소와 다르게 흐터러져 있는 사무실 분위기가 낯설어 나의 출근 시간을 확인한거라고 좋게 생각해 보려고 했다. 하지만 9시에 맞춰 출근한 직원에게 일찍 다니라고 하는 건 너무 한 게 아닌가! 당황스러움이 억울함으로 번진 표정을 읽었는지, 부장님은 서둘러 농담이었다고 했지만 그 날 나는 다짐했다.


치사하다고 해도 내 마음을 당연한 듯 치부하는 당신에게서 만큼은 고맙다는 말을 들어야겠다고. 돈도 아니고 고작 말 한마디를 원하는 나를 보면서 내게 수고했다는 격려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말 한마디를 원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누가 나서서 도와주래? 원래 월급 받는 만큼만 일하는 거야.”
"호의를 계속하니 호구된 거지."


선배들의 조언에 뼈가 아펐다. 왜 호의를 베푼 사람이 호구가 되어야 하는 걸까? 그 마음을 당연하게 여기지 말라고, 그런 사람이 사람이 잘못된 거라고 말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나도 이런 말을 내뱉고 있었다.


어쩌면 나도 누군가에겐 호의를 권리로 누리는 사람일지 모른다.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는 이치를 깨달았지만 부족한 인성이 자주 감사를 잊게한다. 유치한 어린아이처럼 선을 긋고, 먼저 호의를 베풀기 싫어하는 고집을 부리기도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30년 넘게 먹고 있는 엄마의 밥상이나 아빠가 피땀 눈물로 마련한 집에서 산다는 것, 언니가 주는 용돈, 우체부 아저씨와 택배 기사님의 수고가 당연하게 받아야 할 권리가 아니란 생각이 자꾸, 깊게 든다.


그래서 종 종 들려오는 이야기. 우리가 지불한 가격에 편리함을 제공받을 권리가 포함되어 있다는 말이 불편해졌다. 그 권리가, 제공하는 이의 성실과 수고 그리고 헌신을 당연한 듯 무례하게 치부해도 된다는 뜻이 아닐 텐데. 그렇게 혼동하는 이들로 인해 감정노동자라는 말이 생기고, 기꺼이의 마음들이 사라지게 된 것 같아 이러한 현실을 볼 때면 다시 한번 당연함을 경계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내가 듣고 싶었던 수고의 한마디를 건네고 있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잘 먹었습니다" 이 일상적인 한마디는 상대를 호구로 만들지 않고, 누군가의 마음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도록 도왔다.


나는 앞으로도 당연함을 경계하는 노력을 기울이며, 무례한 이들에게 지지 않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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