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책을 읽다가 싫어지면 어떻게 하죠? 요즘 통 책 읽기가 싫어요."
출판부 마케터로 근무한 지 몇 개월이 지났을까. 유명 출판사 편집자 한 분과 식사하는 자리가 생겼다. 편집자님과 친분이 있던 부장님 덕분에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식사가 끝나가는 무렵 전화 통화를 위해 부장님이 자리를 비우자 갑자기 대화가 끊겼다. 어색한 침묵이 감돌던 차, 편집자님께서 부장님이 힘들게 하는 건 없냐고 농담을 건네셨다. 분위기를 풀어주시려는 편집자님은 그런 거 없다는 나의 대답을 빈 말로 잘 이해하셨고, 그러면 일하는데 힘든 건 없냐고 물으셨다,
책 읽는 걸 좋아한다. 책에서 발견한 문장은 나를 이해해주고, 너만 그런 게 아니라는 위로를 주었다. 지혜를 나눠줬고 때론 따끔한 충고를 했지만, 언제나 정중했기에 책 읽는 일을 싫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마케터로 일을 하면서 책 읽는 기쁨이 줄었다. 좋아하는 저자의 기다리던 신간보다 출간 예정인 원고를 읽고 피드백을 해야 했고, 기존 책의 마케팅 방안을 생각하려면 읽고 또 읽어야만 했다. 근무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책 상 위에는 읽어야 할 책이 산처럼 쌓이게 되었다.
점 차 읽고 싶어 산 책은 물론 그냥 글자 자체가 보기 싫어졌다. 팀장님이 적당히 읽어도 된다 말씀해주셨지만, 그 당시 나는 지금보다 더 융통성이 없었다.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장 마침표까지 정독하던 독서 습관이 대충을 허락하지 않았다. 출판사 마케터가 책 읽기를 싫어한다니, 불호령이 떨어지진 않을까 움츠려 든 내게 편집자님은 한 줄로 답을 하셨다.
"읽기 싫으면 안 읽으면 되죠!"
아 뭐지. 왜 이렇게 쿨해?
책을 읽다가 멈춘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던 내게 편집자님의 대답은 그야말로 혁명 그 자체였다. 그렇게 읽다 멈추면 책에 대한 그리고 작가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않나? 책 한 권도 끝까지 읽지 못한다면 너무 끈기 없는 거 아닌가? 되묻고 싶은 말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나보다 더 많은 책과 원고를 읽어야 하는 분께서 너무나도 쉽게 읽히지 않을 때는 중간에 멈춰도 괜찮다고 말했다. 거기까지가 내 책이라고. 다시 안 읽을 수도 있지만 다시 읽게 되는 일이 자신의 경우 더 많았다고 말씀해주셨다. 그리고 멈췄을 때 보다, 다시 읽게 되었을 때 와 닿는 부분이 더 많았다며, 읽히지 않을 땐 멈춰도 괜찮다고 다시금 말해주셨다.
읽다 만 책은 내게 포기와 실패의 상징으로 죄책감을 주었다. 그게 뭐라고 책에게 패한 기분을 느꼈다. 그래서 끝까지 붙잡고 늘어지느냐 독서가 지쳐갔던 것이다. 일상에서도 많은 것들을 '해야지, 해야 돼'라며 미련 가득한 생각으로 붙잡고 있었다. 삶이 지치고 무거웠던 건 '포기를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편집자님의 조언을 들은 후 중간에 멈추는 책이 늘었고, 다시 읽는 책도 늘었다. 처음에는 마음이 불편했지만, 끝내야 한다는 부담이 사라지자 전보다 책 읽기가 즐거워졌다. 중간에 멈춰 다른 책으로 갈아타고 그렇게 섞이는 문장들은 참신하게 연결되어 한 권을 정독했을 때보다 더 넓고 다양한 생각을 이끌어 내주었다.
포기해서 얻어진 것은 또 있었다. 포기를 선택하면서 멈춰서는 일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이 줄었다. 멈춰 선 순간만 본다면 누군가는 내가 실패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 일을 다시 시작할 수도 있고, 다른 일에 연결시킬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건 실패가 아니다. 끝도 아니다. 또 다른 시작이 되고, 완성으로 가는 길이다. 그러니 포기는 잠시 멈춰 선 것에 불과하다.
이제 내게 포기란 실패, 좌절, 끝이 아닌 여러 선택지들 중 하나가 되었다.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의 '자세'이고,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잠시'가 되었다. 덕분에 무언가를 하다 멈춰도 크게 무너지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되려 삶이 좀 더 윤택해졌다. 실패자가 될 경우가 사라졌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