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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보 Nov 23. 2019

동백꽃 필 무렵: 대사 편 6

고운이란 이름의 주민등록증 속 사진은 환하게 웃고 있다. 그냥 그 이름으로 살지, 그랬으면 고운 날을 맞이했을 것 같아... 고운의 삶도, 향미의 삶도 함부로, 외롭게 떠났다. 그래도 울어주는 동백이로 인해 가는 길은 덜 외로웠길.

동백이에 대한 오해도, 편견도 6년의 시간 동안 풀렸다. 고집을 이어가면 아집이 되는데, 울 언니들은 그렇지 않았다. 지난날을 미안해하며 마음을 고쳐 먹고, 힘을 모았다. 역시 걸크러쉬. 내 동생 감히 누가 건드리냐! 디졌으. 무심한 듯, 다정한 건 옹산 특유의 매력인가 보다.

규태는 자영이 앞에 남자이고 싶었다. 그 말은 자영 역시 규태 앞에 여자이고 싶었단 것이 된다.

스스로 못났음을 인정하면서도, 상대를 탓하지 않는 오정세 당신. 

정말 멋진 남자 >_< 이런 고백은 또 이런대로 심쿵하네.

나는 예의를 중시했고, 상대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서로를 위한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나를 사람들은 편하게 대하지 못 했다. 깍듯한 존대만으로도 어딘가 어렵고, 차갑고 거리감이 느껴진다나.. 사실 친해지면 이런 허당도 없는데.


나이가 조금씩 들면서 혼잣말이 늘었고, 모르는 사람과도 말을 하는 경지에 올랐다. 어느 날  마트에서 계산하기 위해 선 줄에서 앞의 할아버지가 무언가를 물어 오셨다. 나는 대답을 해드렸을 뿐인데 할아버지게서는 잘 웃고, 이야기도 잘 받아주니 오늘 참 좋은 하루라고 말해주셨다. 그때 왠지 모르게 죄송하면서도 뭉클했다. 그러면서 예의를 갖추면서 친밀해진다는 것이 이런 건가 싶었다.


'예의 있다'가 딱딱하고 어려움을 의미하는 게 아닌데, 나는 잘못 알고, 잘못 행동하고 있었다. 어쩌면 나는 불편한 관계는 정리하는 것을 지혜로 삼는 세대 속에 정리해버리고 싶은 꼰대였을지도.


선영 언니의 말에 예의를 덜 차림으로 예의를 갖추는 것에 대해 또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언니 말처럼 부탁도 하고, 실수도 하고, 엉키고 염치도 없어보니 정이 붙더라. 물론 예의를 기틀을 든든히 한 까닭도 있겠지만, 아무렇지 않게 다가가 한마디 말을 건네고 적당히 돌아서면서 좁혀진 관계들이 떠올랐다.




그래도 엄마 원망 말아야지. 인생 살오니 후회되는 일이 많지만, 그렇다고 그게 부모를 원망하고 탓할게 아니더라. 잘되길 바라는 어미의 마음이었고, 어느 순간이 되면 자식은 독립해 걸어야 한다. 나중에 나중에는 자식이 부모를 업고 걸어야 할 때가 오니, 가능한 늦지 않게 두 다리로 걷는 법을 익혀야 한다. 그때를 놓치고, 부모 탓하는 거... 아니다. 그만큼 철없진 말아야지.  


용식이 편에 붙을 사람 :) 



어디 이런 아홉 살 아이가 있을까?

엄마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필구는 혹이 되지 않기 위해 엄마 곁을 떠났다. 


동백이는 필구가 이처럼 생각하는지 몰라 서운했지만, 필구 앞에 말을 가린다.

그에 반해 종렬이는 어른이 덜 되었다. 딸 바보라고 하는데, 결코 레베카에게도 좋은 아빠는 아닐 것 같다. 

필구랑 대화하는 종렬이는 필구보다 어른 듯 싶다. 그러니 필구가 아빠한테 가면서도 자신을 메뚜기로 생각하지.


하 필구 때문에 눈물 마를 날이 없네...

선한 행동이 꼭 선한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다.

그건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선한 마음이 선한 열매를 맺게 해 줄 가능성은 분명 높다. 엄마의 사랑은 더욱이 더.

엄마를 보며 속상한 마음이 들지만 짜증이 나는, 결국 울어버리는 제시카를 보면서, 조금 느린 그녀의 성장함이 보이는 듯했다.

엄마가 살아온 인생의 절반쯤 살아가고 있다. 점점 엄마가 말을 안 듣는다. 

면역력이 약해서 몸에 수포가 올라오는데 밥 먹기가 싫다고 하신다. 엄마가 아침을 뜨는 걸 지켜보다 나갔다. 저녁에 먹을 걸 사서 시간 맞춰 들어왔다. 병원에 가라는데 말만 알겠다고 하신다. 결국 퇴근 시간에 맞춰 엄마를 모시고 병원을 다녀왔다. 제발 당신을 위해 쉬라고 하지만 나를 위해 움직인다.

어렸을 때 내가 이처럼 말을 안 들었을까, 내게 복수하는 거냐고 하니 엄마는 웃으며 말하셨다.

새 발의 피라고 :) 

규태 엄마가 케이크를 들고 자영을 찾아온다. 하지만 화를 내고 나간다. 답답하고 이해가 안 간다. 왜 저럴까 싶은데, 사는 건 이 쪽 모양에 좀 더 가깝다. 우린 서로를 온전히, 전부 이해하고 살 수 없으니 자주 이처럼 부딪힌다. 하지만 자영이 케이크를 안 좋아한다는 사실을 시어머니가 알게 되었다. 또한 규태가 자영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사실도 이제 안다.

자영과 규태가 다시 처음의 마음을 확인한 것처럼, 시어머니와 자영이도 이제야 서로를 알아가고, 맞춰가는 게 아닐까 싶었다. 가족이라 할지라도 관계가 만들어지는 데는 계기와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사이다 대사는 인정!


자식을 향한 엄마의 마음에 마음이 찢어진다. 

그런데, 그 와중에 꽃 만지작 거리면서 동백이 주변에 머무는 용식인 왜 귀여움. 

이 스토리에서 가장 안타까운 건 필구가 맞다. 아이라고 무조건 잠을 잘 자는 건 아니고, 아이라고 걱정이 없다는 것도, 어릴 때 일은 잘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도 모두 편견이다.


두 사람은 비슷한 상처를 가졌다. 그러니 회장님은 자신이 얼마나 큰 실수를 한 건지 더 알았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어른은 성숙하고 지혜로워 보인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는 회장님의 그 불편한 마음이 그래도 좋은 쪽으로 기울 거라고 믿는다.



아... 너무 마음 아펐어. 힝 필구 이때 엄청 미워했는데, 이모가 미안해.

우리 필구만큼 엄마 생각하는 9살도 없는데 ㅠ


배우들이 너무나 사실적으로 울어줘서, 더 몰입되었던 37회 마지막. 


우리 종렬이 사랑의 매 맞고 정신 차렸다. 이제 어른이 되려나 보다. 


뛰어갔다가 곰방 다시 와가지고, 내가 여전히 당신 편이라고... 헤어지는 마당에 또 힘이 되는 말로 동백이를 살린다. 드라마 시작부터 밀어 치기 당해서 안쓰러웠지만, 우직한 옹산의 곰이 한 여자를 향해 보여준 순애보가 요즘처럼 썸이 난무하는 시대에 귀했고 귀엽고 좋았다.


용식이는 말로 천냥 빚을 갚은 게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을 살렸다.

멜로가 체질에서도 드라마 상 PPL을 엄청 꼬집었는데, 동백이와 용식이가 드라마 속 이별을 꼬집네.

맞아 현실을 살아야 하는 우리는 삶에 등 떠밀려 잊어간다. 가차 없이 굴러가는 쳇바퀴에서 인정을 느낄 정도다. 그러고 보면 현실이 젤 무섭다. 그 무서운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는 용기 있는 사람들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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