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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보 Nov 23. 2019

동백꽃 필 무렵: 대사편 5

우리 회장님, 동백이 엄마 그리고 동백이 삶에 씌워진 편견이 굴레를 이루고 있다.

남들이 말하는 팔자에 자신을 굽히지 않고 삶을 지켜온 이들의 인생이 참 용기 있고 대단해 보였다.

한편 어떤 이들은 여자가 기가 세다, 가기 세서 저러고 산다고 하겠지.


사람마다 보는 시각이 다름을 인정하지만, 상처로 내리꽂는 시선은 인정할 수가 없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뚜렷해지는 한 가지가 있다면. 누군가의 삶을 함부로 말해서 안된다는 것.

돈을 벌기 시작했을 땐 몰랐다. 하지만 십 년 정도 사회생활을 하면서 억울한 일도 당하고, 남의 돈 버는 게 쉽지 않다는 걸 깨달으면서, 아빠가 얼마나 힘들게 돈을 버는지 헤아릴 수 있게 되었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지만 살림을 도우면서 집안일이 끝이 없고 해도 티가 안 난다는 말이 뭔지 알게 되자, 어마의 수고가 얼마나 큰 지도 알게 되었다.

때로는 돈을 버는 엄마였고, 살림을 하는 아빠이기도 했다. 모든 역할을 감당하는 부모님을 보면서 두 분이 살아온 나이테가 보였다. 부모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는 건, 내 삶에도 굵은 나이테 하나 정도 생겼다고 여겨도 될까?


옹산의 소문난 주접들. 뭐야 둘이 귀엽게.


이때 인스타에 쓴 글은 과연 왜 동백이 엄마가 돌아왔을까에 대한 추즉이었다.

흠, 아주 삽질을... 똥촉으로 헛소리를 가득 써놨다.

울면서 용식이한테 안겨 엉엉 우는 동백이가 의지할 곳이 늘어난 것 같아 이런 와중에도 편안해 보였다. 버리는 엄마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그녀는 이때 조금 알지 않았을까?


동백이는 엄마가 너무 짜증 난다고 했다. 안다. 엄마가 짜증 나는 이유가, 싫어서도 미워서도 아니다. 그저 이런 상황이 짜증 나는 거다. 엄마가, 내 맘 같지 않아서 속이 상한 거다.


다 아는 사실 굳이 알려주려 하지 않고, 가르쳐 들지 않고 오롯이 동백이 편이 되어 으쌰 으쌰 해주는 용식이가 그래서 참.. 탐나 >_<

인생에 핑계라는 무덤이 생기는 게 싫었다. 정정당당하게, 성실하게 살아가고만 싶었다.

하지만 모든 일에 적합한, 합리적인 이유를 붙일 수 없었다. 또한 모든 일을 내 맘처럼 설명할 수도 없었다.

그제야 사람들이 왜 핑계를 무덤으로 삼는지 알 수 있었다. 날씨가 좋아서, 비가 와서, 그냥 그래서를 이유로 삼아보았다. 그런 핑계에 마음을 쉬어보려 했다.


그래도 핑계로 피하기보단, 보조 배터리로 충전받는 게 낫겠다. 어쩜 이렇게 일상을 아름답고 따뜻한 표현으로 길고 하는지. 고단한 동백이 표정에 그래도 웃음이 지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허탈함이 아니라, 정말 괜찮은 얼굴이어서.. 함께 좋았다.


그리고 자신이 고작 치킨 따위에 밀려 3위냐고 하지 않는, 용식이의 저 겸허한 태도는 사랑받기 충분함이다. ♥


브런치 북 <내가 생각하는 단어> 중 "엄마"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그 글이  생각났다.


자식을 낳아 기르며 엄마를 이해하 가는 동백이를 본다. 자식은 밥을 먹어도 엄마는 그렇지 않다는 말. 장례식 이야기 앞에 나는 정말 또 한 번 부모 앞에 평생 자식인 모습을 보았다. 살아갈수록 부모님의 사랑은 가름할 수 없이 커져만 간다.



처음으로 엄마랑 동백이를 봤다.

엄마는 여러 차례 "나도 동백이 보고 싶다" 하셨는데, 드라마 속 대사와 장면을 캡처해야 한다며 아이패드를 붙들고 보던 고약한 딸이었다.


동백이 엄마는 동백이를 버렸다. 결과적으로는. 하지만 그건 동백이가 세끼라도 챙겨 먹었을 수 있길 바란 마음에서였다. 엄마는 자식을 버린 자리를 바라보며 살았고, 그녀 곁을 맴돌았다. 그리고 엄마라는 본능의 촉을 세워 그녀를 지켰다.


네기 한 추리는 반 발자국씩 틀렸다.

나는 엄마가 까불이한테 쫓기다 동백이를 버렸나 했다. 돌아온 이유는 결혼한 그 남자의 유산을 동백이에게 주려나 싶었다. 하지만 엄마는 자식에게 떳떳하기 위해 악착같이 일했고, 동백이의 몫을 만들었다. 만약 추리가 백 프로 어긋났다면(물론 그렇게 봐야 할 상황이지만) 당황스러웠을 것 같고, 백 프로 맞았다면 시시했을 것이다. 엄마에게 "정말 대박이지? 어떻게 저렇게 이야기를 풀 수 있지? 와 동백이 엄마 반전"이라면서, 드라마를 보는 내내 시청자를 조련하며 극에 몰입시킨 작가님의 필력을 찬양했다.


그런 내게 드라마가 다 끝나고 엄마가 말했다.

"그러니까, 너는 자식이야. 엄마 마음을 통 몰라."


나는 드라마의 다음 이야기뿐만 아니라, 엄마 속도 맞추지 못했다. 자식은 항상 몇 발자국씩 헤아림이 늦다. 그래서 떠나시고 혼자 남게 되었을 때, 그렇게 후회를 하나보다.

몸이 안 좋으면 슬며시 방에 들어가 눕는다. 설거지도 하고 빨래도 돌리고 걸레질도 해야 하는데.. 생각하지만 나는 우선 침대에 눕는다. 하지만 엄마는 그렇지 못한다. 왜 그렇게 부엌에만 있냐고 타박했는데, 나 때문이고 가족 때문에 그 자리에 서 있다는 사실을 나는 매번 까먹는다.


엄마의 쉼도, 젊음도 빼앗은 내가 미안해하는데, 약하게 태어나게 한 것 같아, 고은 손으로 집안일 시켜서 미안하다고 하는 사람. 내게 매일 미안하다고 말하는 엄마가 나는 정말 너무 짜증이 난다.


이제 꽃 피우려는 향미가 왜 죽어야만 했을까? 이제야 사랑받으며 가족 안에 살게 되었는데, 너무 화가 나고 슬프다. 그래도 향미가 규태에게 미움이 아닌, 응원을 받았다. 미워했던 마음이 미안함이 되고, 안타까움이 되고. 오해와 편견에 사로잡혔던 사람들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돌이켜 함께 그녀의 마지막 동선을 짜 맞춘다.


약하고 작은 힘이 때로는 크고 거대한 서울의 경찰보다 더 힘을 낼 수 있다는 걸 보여줄 다음 이야기가 기다려진다.


집 밥은 따뜻하다. 삼시 세끼 꼬박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그건 방금 지어서도 아니고, 조미료를 넣지 않아서도 아니다. 혼자 먹지 않으니까.

좁은 상에 가족이 모야 앉아 먹으니까 따뜻하고,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오늘 하루도 힘내길 바라는 마음과 수고했다는 격려가 네모난 상에 함께 놓여있기 때문일 게다. 가끔 잔소리가 상을 뛰쳐나가게 만들고, 먹다 체하는 건 아닌가 싶게도 하지만, 그 마저도 나중엔 그립다. 오늘 아침 혼자 먹은 김치찌개는 영 맛이 없었다. 그러니 도시락까지 해서 삼시세끼 집밥을 먹고 있는 나는 이만치 건강한가 보다. 


그나저나 용식이는 말도 잘하고 자상하고 따뜻한데, 요리까지 잘하는 거야? 이거 반칙 아닙니까 작가님!

베개도 같은 거 안 쓰고, 주황 베개 반으로 접어서 떨어질 듯 침대 끄트머리에 걸쳐서 있는 거, 나만 귀여워?

하.... 여러분 이 장면은 메이킹을 꼭 봐야 합니다. 예습 복습 철저히 하시고, 참고서 보듯 메이킹 챙겨봐야 합니다!

물건을 훔치는 건, 갖고 싶어서라기보단 관심받고 싶은 게 아녔을까? 

향미는 생활에 전-혀 도움 안 되는 것들을 훔쳐 보물처럼 모아놓았다. 

바늘이 있어 훔치고, 소가 있어서 훔치는 게 아니라 사실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었다.

이제야 그 마음 딱 알아주는 동백이를 만났는데, 하.. 까불이 내가 족치고 싶다.

엘리베이터에 스스로를 가두어 놓았을 때, 나라면 정말 그냥 죽고 싶었을 것 같다. 하지만 너무 억울하잖아. 공수교대를 알렸다. 동백이는 삼십사년간 한 번도 자신을 놓지 않았다. 옹산의 하마, 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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