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걸 가진 듯 보여도 없게는 많은 사람이 있고, 아무것도 없는 보여도 필요한 건 딱 갖고 사는 사람도 있다. 혹 제시카처럼, 혹 동백이 처럼 말이다.
그렇다. 각 자의 삶이고 우린 함부로 타인의 삶에 대해 말할 수 없다. 다만 자신이 부족함을 자영 언니처럼 인정하고, 동백이 처럼 자신의 행복을 찾아가고 싶을 뿐이다. 누군가에게 내 인생을 맡기지 않으려고 하는 책임감을 행복에도 적용하고 싶다. 내 행복도 다른 누군가가 주는 것이 아닌, 내가 책임질 영역이고, 내가 인정해줘야 할 부분 아닐까?
남들이 보기엔 아무것도 없는 동백이었지만, 34년간 동백이는 건강한 자존감이 있었고 자신만의 행복을 세워나갔다. 자영 언니는 드디어 그렇게 먹고 싶던 동백이 두루치기를 먹었다. 앞으로 종종 베프가 되어 술잔을 기울이겠지. 마음을 털어놓을 친구가 하나 늘었다는 건 연봉이 오른 것보다 더 큰 행복이다. 자영 언니 삶에도 그렇게 행복이 늘어간다.
종렬이가 한 뼘 자랐다. 자신이 가진 모든 걸 걸고, 가정을 지키기로 한다.
종렬이도 제시카도 어쩌면 우리도, 스무 살이 넘고 주민증이 나오고 대학에 들어가면서 자연히 어른이 된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서른이 되고, 과장과 부장이 되어도 어른이 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부모의 손을 떠나 자립하는 시간이 우리를 성숙하게 한다. 집을 나오는 독립도 자립 중 한 방법이겠지만, 그보다 스스로 선택하고 그 결과에 책임을 지는 것을 나는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부디 제시카도 이번 일을 통해 알을 깨고 나왔으면 좋겠다.
"극 중 강하늘의 이런 발언은 현실과도 맞닿아있다. 인권을 앞세워 범죄자들을 제대로 처벌하지 않는 법에 대해 문제점을 제기한 것" (뉴스토마토 김희경 기자, 기사 인용)
좋은 드라마라고 생각하는 기준이 몇 개 있다. 그중 하나는 현실의 문제를 함께 생각하게 해주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 영화보다 드라마는 우리에게 친숙하다. 조금은 가볍게 시작해서 묵직하게 메시지를 던지는 방법에 유리하다.
처음 드라마 소개를 보고 웬 살인마인가 했는데, 작가님이 드라마 속에 던진 화두 모두 묵직하게 우리 삶을 돌아보게 했다.
서른다섯의 딸을 엄마는 아직도 아가라고 부른다.
아마 육심을 먹어도, 아이를 낳아도 엄마 눈에 나는 평생 아이겠지.
엄마가 되어도 엄마, 그러니까 나를 키운 나의 엄마 마음은 알 수 없다.
엄마에게 나는 엄마가 되어줄 수 없다.
이 생각을 A4용지 한 페이지 분량으로 글을 썼는데, 엄 작가님이 한 줄로 정리해버리셨스. 부러운 필력
엄마 팔자 닮을까 노심초사했다는데, 자식은 부모를 닮을 수밖에 없다. 태어나서 세상을 처음 보게 되는 창이 부모니, 자연스러운 수순일지도.
허니 동백이 지치는 삶 가운데서도 웃을 수 있던 건 어머니가 그녀를 통해 웃어 보인 까닭이고, 동백이가 엄마 당신을 품었다는 건 엄마가 힘든 상황 속에서도 딸을 품었던 그 칠 년의 시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기억은 왜곡되고 잊힌다. 난 더욱이 어린 시절을 많이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도 부모님을 참 많이 닮았다. 칠 년 삼 개월밖에 기억 못 하는 어린 딸에게 삼십사 년 사랑해 왔다는 엄마의 고백에 눈물 흘리는 나의 엄마를 보면서,
딸인 나는 또 한 번 가름 못 하는 엄마의 마음을 생각하게 되었다.
용식이는 항상 동백이를 지켜주었다. 지켜봤고 응원해주고 필요할 때 곁에 있어주었다. 그의 행동엔 존중함이 있었다. 내가 지켜줘야 할 연약한 존재의 여자가 아니라 자기 옆에 서서 나란히 함께 가는 동백이. 그녀의 삶을 존중하며 그녀 곁에 있었다. 그런 그의 인정함이 너무 좋다.
그리고 동백이는 자신을 지켰다. 겁에 눌리지 않고 500잔을 들어 까불이의 뒤통수를 쳤다.... 그 잔에 내 뒤통수도 함께 맞았다.
어머니와 어머니의 대화. 한 마디, 한 번의 숨, 잠깐의 침묵마저 알아차릴 수 있는 두 사람은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듯 보였다.
한 동생이 해준 이야기다. 하루는 이유 없이 열이 나서 병가를 내고 집에 왔다고 했다. 원래는 기숙사 생활을 하는데, 아프니까 엄마가 그립지. 동생은 엄마가 오랜만에 차려준 밥상을 자랑했다. 며칠이 지나 몸은 괜찮은지 물었다. 알고 보니 급체였다고 하더라. 속은 괜찮았는데 열 만나서 감기인 줄 알았는데, 엄마가 급체라고 했다. 열만 나면 그럴 수 있다고. 엄마는 모르는 게 없다. 감기랑 급체도 딱 구분한다. 엄마는 못 하는 게 없다. 따뜻한 밥 한 그릇이면 없던 병도 낫게 한다. 다른 누구보다 내게 필요한걸 너무 정확히 안다. 그래서 엄마의 말이 너무 따가운 것일지도.
회장님이 동백이의 공짜 엄마가 되어주었다. 동백이에게 가장 필요한 게 뭔지 아는 엄마. 따스한 시선으로 그녀를 귀하게, 귀하게만 받겠다는 말에 너도 너도 울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 회장님도 긴 긴 시간 누군가에게 그렇게 품어졌길 바라진 않았을까? 결국 자식이 부모를 이긴다. 다 알고, 못 하는 것 없는 엄마가 늘 진다. 맥없이 백기를 들었다.
남이면 안 그런다는 이 예스러운 말을 들어본지가 얼마던가. 존중이라는 단어를 좋아하고, 인정하는 자세도 중요하게 여기지만 그래서 결국 남인 사람이 되고 싶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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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아가,라고 부르던 회장님의 소리에 용식이가 아닌 필구가 반응하는 그 찰나가 너무 찡했다. 소갈비 구워줬음 남 아니지. 나를 보살펴 주셨던 일충 할머니가 그리워지네 갑자기.
하, 용식이.. 저 멀리서 찔끔찔끔 걸어와서 눈치 살피는 거, 왜 귀여워? 아니 그렇게 귀여울 거야? 동백이가 하는 말을 무슨 금줄기 흘러내리는 것처럼 바라보고, 끊지 않고 막 끄덕이면서 오롯이 편이 되어주는데, 하 옛날 자동차 뒤에 있던 끄덕이는 강아지 인형인 줄 진짜.... 위로는 이렇게 하는 거란 걸, 용식이 너란 남자 때문에 눈만 높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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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이는 어린 시절부터 동정과 편견 어린 시선 속에 살았다. 상처도 입고 움츠러들었지만 그녀는 매 순간 바쁘게 움직이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성실히 자신의 삶을 살자 살아야 할 이유가 생겨났다. 엄마가 되었고 필구를 위해 더욱 부끄러운 일은 하지 않으려 자신을 지켜 나갔다. 고단해 보이는 삶이었지만 그녀는 웃음을 잃지 않았고, 천천히 그녀 곁으로 사람들이 다가왔다. 그녀는 그들이 건네는 동정 속에서 사랑을 발견했다. 쑥스럽고 익숙하지 않아 덜거덕 거리는 수줍은 마음을 받아들였다. 누군가는 기분을 상하게 해서 사람을 죽일 동기가 되었던 동정을 그녀는 삶을 행복하게 하는 동기로 삼았다.
멋없어 보이고 손해 보는 것 같아도 정도를 지키며 사는 삶은 이렇게 중요한 순간에 다름을 만든다. 착한 사람이 조금 더 착하게 사는 건, 세상을 지키는 히어로가 되는 거라고 말했던 #멜로가체질 의 범수띄 대사가 생각났다.
요즘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에 필요한 마인드인가 보다. 자주 반복해서 메시지를 던지는 걸 보면.
동정은 쉽고 동경은 어렵다. 동경과 질투가 한 통속인 걸 알면서도 우리 동경을 쫓는다.
SNS을 붙잡는 시간이 늘어난 내게 생각하게 하는 대사였다. 결국 내가 살아갈 현실, 진짜 REAL은 이 조그만 프레임 밖에서 일어난다. 누군가의 댓글, 격려로 힘을 내기도 하지만 결국엔 내 옆에 있는 당신이 건넨 한마디가 나를 살린다. 제시카도 이제 살아나겠다.
처음에는 유부남이 첫사랑을 만나 흔히 풀어지는 치정인가 싶었는데, 가정의 소중함, 부모의 사랑과 동반자의 의미를 따뜻하게 풀었다. 우리는 이러한 굴곡 속에 어른이 되어간다. 제시카, 좋아요 언니 예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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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이 엄마를 살려내는 과정에 개연성이 좀 떨어져도 넓은 마음으로 댓츠 오케이 하려 했다. 엄마가 죽는 것보단 말이 안 되는 게 더 나았으니까.
여차저차 동백이와 엄마가 수술을 받았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호로록. 다른 드라마였으면 마지막 회니까 기적이었어요!!! 호들갑 떨며 살아나게 했을지 모르겠지만, 고것은 옹산 스타일이 아니지.
한 없이 정스럽고 오지랖이 가득한 이 이상한 나라 옹산에선 기적을 하늘에만 맡겨두지 않았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하지 않던가, 서로를 항한 마음이 길을 만들었고, 생을 포기하지 않은 간절함이 기적을 만들었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나와 당신이 사실은 존재 자체로 나쁜 놈들이 발 붙일 면적을 줄이고 있으며, 일상에서 소소한 기적을 만들고 있었다. 이렇게 우리를 격려하는 예쁜 드라마, 레버랜드 옹산 사람들 안녕
흙더미 속 뿌리내린 불안한 나무가 튼튼하게 살아가는 이야기였다. 옆의 나무들과 뿌리를 얽고 가지에 기대며, 살아야 한다. 인간은 섬이라고 하지만 홀로 살아갈 수 없는 무리 동물이라고도 불린다. 멀찍 보면 모두 떨어져 있는 듯하여도 그 아래에선 우린 기대어 있다. 발을 딱 붙이고 주변을 돌아보자, 천지가 꽃 밭이다. 당신이 나의 꽃 밭이다. 서두르고 조급할 것 없이, 행복은 차오른다. 둘러보자, 우리. 가끔 선 없이 달려오는 이를 반겨보자. 어떤 이의 동정 어린 시선이나 때론 모진 시선 속에 숨겨진 수줍은 마음을 발견해보자. 행복을 발견해 나가자. 함께
주접 커플. 덕분에 행복했어요. 후라쉬 같이 인생의 부분, 부분들을 비춰주고, 인생 속 숨겨진 기적을 발견하게 해 줘서 고마워요. 곧 필 우리의 동백꽃을 기다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