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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보 Jan 08. 2020

스토브리그

주말을 맞아 대청소를 했다. 창문을 열고 이곳저곳을 치우느냐 정신없이 움직이다가 혼자 떠들고 있는 텔레비전에 시선이 갔다. 브라운관에는 남궁민 배우가 무미건조한 어투로 조근조근 말을 하고 있었다. 슬그머니 소파 옆에 걸터앉았다. 그렇게 3회가 끝나고 광고가 나왔다. 잠깐, 아주 잠깐의 시간이 지난 줄 알았는데 촉촉했던 걸레는 그 사이 수분감을 잃었고, 어정 정한 자세로 앉아 있다 보니 다리에 쥐가 났다. 게다가 활짝 열린 창문으로 인해 집은 너무나 추웠다. 오랜만에 시간 순삭을 경험했다.


나는 그날 바로 1회부터 5회까지 <스토브리그>를 정주행 했다.


2020 드라마 라인업을 확인하면서 <스토브리그> 안중에 두지 않았다. 궁민 배우를 신뢰했지만, 아무래도 야구라는 소재가 걸림돌이 됐다. 하지만 내가 <스토브리그> 빠지는데 필요한 시간은 아주 짧았다.  그리고 지금 <스토브리그> 뒤늦게 빠진 나와 같은 사람들로 인해 시청률이 수직 상승이다. 스포츠 드라마는 재미없을 거라는 편견을 밀어내고, 드라마는 스스로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스토브리그>, 생소한 단어를 검색해봤다. (아마 야알못인 분들은 한 번쯤 검색해 봤을 테다:) 프로 야구의 한 시즌이 끝나고 다음 시즌이 시작하기 전까지의 기간을 뜻 한다. 드라마 제목이 내용의 전부다. 군더더기 없음이 <스토브리그> 다웠다.


내가 야구를 직관한 건 딱 번, 회사에서 단체 관람을 갔을 때다. 기본적인 룰을 알지만, 좋아하는 팀 같은 건 없었다. 상사가 응원하는 팀을 같이 응원했고, 에너지 있는 관객석의 분위기에 취했었다. 즐거운 기억이다. 만약 이 드라마가 야구 시즌의 경기를 소재로 했다면 아마 나는 보지 않았을 것 같다. 룰도 잘 모르거니와 프로 야구 경기가 훨씬 더 생동감 있을 테니까.


하지만 <스토브리그>는 비시즌, 우리가 쉽게 볼 수 없는 팀의 뒷모습을 담고 있다. 이 기간에 구단과 선수는 재정비에 돌입한다. 드라마에서도 계약 갱신이나 트레이드, 연봉 협상 등을 주 소재로 다루고 있다. 화려해 보이던 선수도 생계를 고민하는 가장이었고, 꿈꾸는 마음을 돈으로 사려고 하는 이야기에서는 열정으로 가득했던 사회 초년생 때 내 모습을 보았다. 선수들이 겪는 문제, 이를 해결하고 독려하기 위해 그라운드 밖에서 선수들 못 지 않게 뛰는 스텝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들만의 리그, 내가 모르는 세계의 이야기란 생각이 사라졌다. 주어진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그냥, 사람 사는 이야기였다.


내 이야기다 생각하니 대사가 삶으로 와 닿았다.


사실 <스토브리그> 명대사가 많은 편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우리는 친구나 가족, 연인과 나누는 대사에 쉽게 공감한다. 비슷한 상황에 처해 봤기 때문에 오는 이해가 높은 까닭이다. 하지만 <스토브리그> 일적인 대화가 주다. 게다가 야구,  모르는 이야기를 한다. 그래도 용어에 대한 설명을 자막화 하며,   인물의 대화로 충분히 이해할  있다. 어려울  같다는 편견은  회만 봐도 깨진다.


그리고 짧지만 강력한 임팩트 있는 대사를 통해 연기하는 캐릭터들을 설명충으로 만들지 않았다. 관행을 탈피하는 백단장의 대사는 속 시원함을 주었고, 동생과 (전 부인으로 소개되는) 유정인과의 대화는 먹먹한 위로를 주었다. 충분히 그 사람의 매력에 빠질 수 있도록 반짝이는 대사들이 곳곳에 담겨 있다. (이런 대본이 첫 데뷔작이라니! 이신화 작가의 작품은 앞으로 찜*_*)



앞서 인스타그램에 <스토브리그> 아이들이 먹는 쌀과자에 비유했다. 특별히 찾아 먹는  아니지만, 한번 먹기 시작하면 멈춰지지 않는 중독성. 식감은 퍽퍽하지만 고소하고, 계속 씹다 보면 단맛이 도는 건강식 과자. 좋은 식재료가 주는 힘이다. <스토브리그> 스포츠 드라마라면 의뢰 기대하는 경기 중에 오는 극적인 긴박함이나 흥분 같은  없다. 물론 막장도 없다. 대신  자리에 진솔함과 진정성을 담았다. 여러모로 좋은 식자재로 만든 건강식과 닮은 드라마다.


스포츠 장르의 드라마는 여타 드라마들에 비해 만들기가 쉽지 않겠지만, 앞으로는 이런 차별화된 그것도 건강한 장르물이 많이 선보이길 바라본다. 시청자들의 안목도 높아졌기에 좋은 작품이라면 반드시 빛을 볼 거라고 생각함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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