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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보 Jan 03. 2020

아무튼, 행복

거실에 촌스러운 꽃무늬 이불이 펼쳐져 있다. 집에서 가장 따뜻한 곳에 놓인 이불에는 오랜만에 모인 네 식구의 발이 모였다. 나는 시끄러운 티브이 소리와 부모님의 수다에도 곤히 낮잠을 자는 언니 옆에서 책을 읽었다.


오랫동안 책은 조용한 공간에서 집중해서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회사 독서 목임에서 주입시킨 독서론 책들의 도움으로 이제 어디서나 책을 펼쳐 읽는다. 그 덕에 오늘도 책 한 권을 끝냈다.


아무튼, 양말이라니. 촌스런 이불 끝에서 꼼지락 거리고 있는 수면양말이 보였다. 양말은 신으면 답답하다. 하지만 수족 냉증人에게 양말은 체온을 유지시켜 주는 필수 생존 아이템이다. 그래서 여름이 오면 맨발로 다닌다. 겨울에는 검정 양말만 고집한다.(스티븐 잡스도 검정 양말만 신느다고 한다. :) 이렇다 보니 양말 쇼핑만으로 십만 원 이상을 결제하고, 명품 양말에 대한 호기심이 구입까지 이어지는 작가와 안 맞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한 쳅터가 끝났을 때 이미 작가에게 빠져 있었다.


시원시원한 문장은 작가의 수다를 직접 듣고 있는 기분이 들게 했다. 세상에 양말 브랜드가 이렇게 많았나? 작가가 표현한 양말 디자인을 상상하는 재미도 있었다. 실제로도 책이... 웃겼다. 입고리를 올린 체 책을 읽었다.   편집자로 오래 글을 다뤘기 때문에 가독성 좋은 글을 쓸 수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양말에 대한 애정이 이런 글을 쓸 수 있게 해 준 것 같다.


나도 이런 마음을 안다. 좋아하는 가수나 노래, 하다 못해 맛있는 음식점에 다녀오면 주변에 알려주고 싶어 진다. 시키지 않아도 자발적 전도를 행한다. 그 이야기를 하는 순간은 해와 같이 밝은 얼굴로 신이 나 있다. 작가의 신남이 책을 뚫고 내게 왔다. 2D가 4D가 되는 기적을 체험했다.

비슷한 경험이 얼마 전에도 있었다. 수요일 예능으로 '이동욱의 토크가 하고 싶어서'를 보는데, 정말 이동욱 씨는 토크가 하고 싶었나 보다. 시키지 않아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망가지고, 상대를 알아가려는 열심히 눈에 보인다. 행복해 보였다.

무언가에 빠져 있는 사람은 행복이 넘쳐흐른다. 내가 그 사람이 빠져 있는 대상이 아니라도 덕분에 행복해진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내가 행복했고 기분이 좋았던 이유겠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수면 양말이 벗겨져 있었다. 이불속에서 따뜻해진 몸이 갑갑한 양말을 벗어던진 것이다. 책을 다 읽었지만 내게 양말은 여전히 체온 유지 용이다. 하지만 도비에겐 자유를 주고, 작가에게는 일할 동기와 삶을 행복하게 살게 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이제 안다. 아무튼, 양말이 그저 그런 생존 템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나도 이런 행복을 느끼고 싶어 졌다.

마음을 홀랑 빼앗길 무언가를 만나, 삶을 행복하게 채우고 그 행복이 4D로 전달되는 기적 같은 삶. 오랫동안 묵혀 놓은 마음을 훨훨 풀어내자. 아낌없이 퍼줘 보자. 아끼다 똥 되는 것보다 낫겠지. 나도 올 해는 "아무튼 OOO"라고 말할 수 있는 무언을 만나 건강한 에너지로 삶을 살아 보길, 촌스러운 이불속에서 올 해의 행복을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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