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생활을 시작한 지 오래되었다. 대학교 졸업하고 바로 취업을 했으니 13년째다.
그동안 여러 조직에서 일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내가 이 회사에 필요한 사람인가, 아닌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불확실함이었다. 물론 박봉이나 넘치는 야근도 힘들었다. 하지만 일이 재미있고, 소속감이 있던 시절에는 자원하는 마음이 컸다. 적어도 그것들이 문제 되지 않았다. (대표의 갑질은 논외로 두자.)
일을 시작한 이래, 현재 하고 있는 일을 가장 오래 하고 있다. 하지만 독보적인 위치에 올라와 있지 않다. 물론 ‘독보적인 위치’를 논하기에 애매한 부분이 있다. 내가 하는 일의 상당수는 눈에 띄지 않는다. 높은 수치와 만족스러운 결과의 뒤편에 있다. 그렇다 보니 팀이 좋은 결과를 내면 이를 함께 만들었다는 생각보다 내가 한 수고는 별개 아니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언제든 다른 사람으로 대체될 수 있다는 생각은 고용의 불확실성을 넘어 존재의 불안으로 다가왔다
한 때는 '그래, 내가 아니어도 회사는 잘 굴러가'라는 생각이 해방감을 준 적도 있다. 홀로 만든 업무의 부담을 떨쳐 내는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나이가 한 살씩 들어가면서 줄어드는 기회 앞에 더 이상 자유해질 수 없었다. 불안이 삶으로 파고들었다.
'아무나 다 -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사람'. 나는 중요한 사람이 아니었다. 나를 귀하게 여기지 못했다.
미숙 씨의 대사를 듣고 잠시 멍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정말 '아무나'에게 시키지 않았을까? 굳이 내가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하는 건, 나여야만 한다는 뜻은 아닐까? '미숙 씨가 해줬으면 좋겠어'라는 말에는 그동안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아온 미숙 씨를 신뢰함이 담겨있다.
드라마 <스토브리그> 속 미숙 씨의 대사는 현재 인스타 캘리 계정에서 5,700개의 좋아요를 받았고, 게시물 노출 그러니까 눈으로 보고 간 사람까지 포함하면 73만을 기록하고 있다. 80여 개의 댓글에는 ‘생각지도 못한 말’, 즉 생각해보지 못 한 생각이란 반응이 많다.
물론 호구 대접인지는 한 번쯤 생각해봐야겠지만, 어떤 일은 자격증이나 전문 지식보다 믿음과 신뢰가 필요하다. 일의 크고, 작음보다 이를 행하는 사람이 더 중요하다. 그동안 우리는 너무나 ‘일’에만 집중한게 아닌가 싶었다
'보람 씨가 해줬으면 좋겠어'라는 말을 직접적으로 듣지 못했어도, 많은 사람 중에 내게 주어진 일이다. 나를 믿고 맡긴 일이란 생각이 드니 오늘 내 책상 위의 서류더미가 조금 달리 보였다.
설사 중요하지 않은 일인 것 같고, 다른 이가 하는 일이 더 반짝이고 멋져 보여도 당신에게 주어진 일이라 소중하다. 이를 하는 당신이 이미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당신이라, 당신이 해줬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