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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보 Apr 30. 2020

슬기로운 의사생활

2020년 상반기 드라마 라인업 중 기대를 걸었던 건 작품은 <이태원 클라쓰>와 <군주> 그리고 <슬기로운 의사생활>이었다. 믿고 보는 신원호 연출과 이우정 작가. 그리고 슬기롭게 응답할 것 같은 배우들까지 <슬기로운 의사생활(슬의 생)>을 시작 전부터 사랑했다. 그리고 이제는 주말이 시작되는 금요일보다 목요일을 더 기다리고 있다.


슬의생에 대한 매력을 뽑은 여러 기사들을 보았다.
우정과 사랑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흥행 보증 수표로 불리는 의학드라마라는 장르까지. 예상했고 예견했던 이유들이 나왔고 그 의견들에 동의하며 내 기준에서 슬의생의 매력을 정리해보려 한다.



1999년에 발매한 가수 이정열 2집. 그대 고운 내 사랑 가사 일분

'믿고 보는'이라고 했지만, 내가 신원호, 이우정 사단이 제작한 드라마 중 제대로 정주행 한 건 ‘응답하라 1997’이 유일하다. 다른 작품들은 중간에 한 번씩 끊었다 다시 보았고, 1988은 끝내 다 보지 못했다. 아무래도 내겐 시대적 공감이 중요한가 보다.


슬의생은 응답하라 시리즈와 달리 현재를 배경으로 한다. 하지만 그 안에 흐르는 시대적 감성은 99년도다.  정원의 제안으로 한 병원에서 근무하게 되면서 이들은 대학생 때 재미로 했던 밴드 모임을 다시 시작한다. 의사라는 직업 특성상 새로운 곡을 익힐 시간은 없고, 당시 연습하며 불렀던 그 시절 노래를 연주한다. 자연스럽게 과거 구질구질하고 지질했던 일들이 생각나고, 그때 이야기를 하며 짓궂게 장난을 친다. 그러는 사이 묻어두었던 옛 감정이 되살아나기도 한다.


응답하라를 보면서 ‘맞아 우리 저 때 그랬었는데’ 하며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던 것처럼, 구구즈도 모이면 ‘맞아 너 그때 그랬어’라고 한다. 99년도에 대한 추억과 현재를 살며 과거를 소환하는 모습까지 공감했다. 그래서 이 다섯 명에게 우리는 '구구즈'라는 애칭을 붙여준 건지도. 만약 또다시 시대를 직접적으로 연상시켰다면 지루했을 테다. 제작진이 갖고 있는 추억을 소환하는 강점이 지혜롭게 응용된 부분이겠다.


미운 일곱살 :)

그렇게 추억과 함께 이들의 우정을 본다.


대학교 1학년 오티에서 만나 지금까지 시간을 공유하면서 볼 꼴, 못 볼 꼴 많이도 봤다. 하지만 모나지 않게 다져진 관계다. 서로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달려가지만 그렇다고 마냥 훈훈하지 않다. 거의 대부분은 일곱 살 어린애처럼 군다. 그래서 좋다. 가식 없고 자존심도 세우지 않는 찐 우정을 보고 있자면 ‘내게도 이런 친구들이 있었으면 좋았겠다. 부러운 마음이 들게 한다.
분명 슬의생에도 사랑이 흐른다. 이들의 마음이 어디로 향하는지 지켜보며 느끼는 설렘도 분명 재미를 준다. 하지만 그보다 더 강하게 우정이 흐른다. 구구즈뿐만 아니라 정원의 엄마와 병원장, 어른들의 우정과 후배들의 우정까지 다양한 연령과 모습의 돈독함을 보여준다. 이를 보면서 몇 번의 직장이 바뀌고, 삶의 여러 사건 (이를테면 결혼이라던가)을 겪으면서 놓친 관계를 떠올렸다. 다 큰 어른들이 지켜가는 우정 , 이 역시 제작진이 '슬기롭게' 추구해오는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마지막으로 의사생활.

개인적인 생각으로 한국 드라마 중 흥행이 보증된 장르물 중 단연 최고는 의학드라마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슬의생은 전문 의학드라마를 지향한 다기보단, 제목이 알려주듯 ‘의사’들의 ‘생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다들 실력 좋은 의사다. 대학병원에서 조교수라는 설정에서 이미 이들의 실력은 검증되었다고 봐야한다. 구구절절 얼마나 훌륭한 의사인지 설명하지 않는다. 의드의 포인트가 의술이지만 이를 연출해 내는 방법이 그간 지루했다. 수술실에서 의사의 흔들림으로 마음 불안하게 하던 장면들이 떠올랐다. 다행히 슬의생은 그런 클레셰를 가볍게 무시한다. 이런 배경 속에 등장하는 수술 신도 그렇다 보니 의술을 뽐낸다기보다 '의사'로서 갖고 있는 자세, 인간성을 보여주는데 초점을 맞춰 놓은 듯하다.

구구즈는 의사로서 자신들의 말 한마디가 환자와 보호자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고 있다. 첫회부터 정원은 겨울에게, 준완은 재학에게, 송화는 석민에게 환자와 보호자에게 의사가 어떻게 말하고,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 강조하는 장면이 거듭 나온다.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아픔을 안은 체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을 향한 배려가 이들의 모습에 담겨있다. 뛰어난 실력도 실력이지만, 마음을 먼저 헤아리려는 이들의 모습이 우리가 슬의생을 보며 위로받는 지점이 아닐까?


사실 이러한 의사들을 현장에서 찾아보긴 힘들다. 어떤 의미에서 미디어가 주는 또 다른 의미의 화려함일 수 있다. 하지만 결국 의사도 사람이고 이들의 삶이, 마음이 우리와 다를 봐 없구나. 살리지 못하면 슬프고 생명을 구하면 행복하고 조금 더 자고 싶고, 한 입 더 먹고 싶고, 친구와 노래하고 싶고, 아들의 생일을 제 날짜에 축하해주고 싶은 그런 마음을 가진 우리와 같은 사람. 그렇기에 더욱이 자신의 생명과 일상도 포기하면서 가장 위험한 자리에서 전 국민의 생명을 수호하고 있는 의료진 분들께 더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슬의생은 시즌3까지 제작이 예정되어 있다. 보이는 장면 속 모든 장소가 세트라고 하더라.

그만큼 공을 들인 작품이라 앞으로 몇 년이 행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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