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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보 Jun 29. 2020

사이코지만 괜찮아.

신박한 또라이를 만났다.

예고편만 보고 드라마 < 별에서 온 그대> 속 전지현 배우가 떠올랐는데 그보단 더 다크하고 기묘한 매력이 넘치는 신박한 또라이였다.


아동문학 작가인 강문영의 첫 등장은 미친 미모도 미모지만 예상치 못한 사고방식으로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자신의 팬이라는 어린아이에게 굳이 안 해도 될 말을 함으로 학습된 현실의 고정관념을 박살 낸다. 아무래도 드라마 제목 속 사이코는 강문영(서예지 분)을 말하는 듯하다.


"공주는 무조건 착하고 예쁘다고 누가 그래. 엄마 나는요 예쁜 마녀가 될래요."




이렇듯 그녀는 주변 눈치 따위 보지 않는다. 원하는 게 있으면 해야 하고, 갖고 싶은 게 있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뺏든지 훔쳐서라도 가져야 하는 사람이다. 인간의 향기라고 불리는 감정이 결여된 그녀는 반사회적 인격 성향을 가지고 있다.


그런 모습은 몇 장면 더 나온다. 가령 자신의 사인회에 참석한 아이 부모의 머리채를 잡는가 하면 면전에 대 놓고 욕을 하기도 하고, 사람을 찌르거나 계단에서 밀어버리거나, 죽이고 싶다는 욕망마저 거침없이 표현한다. 그렇다보니 문영이 어떤 사람인지 보여준 1-2회 속 장면이 다소 자극적이고 폭력적이었다고 보는 시선도 있었다. 그녀가 아동문학 작가다 보니 반사회적 인격 성향이 두드러져 보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1-2회를 곱씹으면서 든 생각은 누가 정상이고 누가 비정상인지 모르겠다는 점이다.

그녀가 머리채를 잡은 부모는 장애를 가진 상태를 거칠게 밀어냈다. 아이가 위협을 느꼈기에 보호 차원에서 한 행동이라고 했지만 그런 아버지의 폭력성이 아이에게 더 위험해 보였다. 실상 그들은 상태를 바보라고 생각했다. 장애를 가진 사람을 무시하는 태도가 몸에 배어 있었다. 문영이 칼을 휘두른 환자는 자식을 소유물로 생각해 죽여도 된다고 생각하던 사람이었다. 뇌물을 받아 글을 쓰고, 성희롱적 발언을 일삼던 평론가도 나온다. 이들은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느끼지 못하고 심지어 스스로를 정상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문영의 말과 태도가 거칠고 날 것 그대로라는 점에서 자극적으로 보이지만 그녀의 말은 틀린 게 없다. 오히려 자신의 결핍을 아는 사람이 스스로 정상이라 생각하는 이들보다 덜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류가 만든 최악의 개념은 정상이다,

라는 말이 았어요."

드라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에 나온 차현의 대사가 떠올랐다. 시작부터 공주와 마녀가 갖고 있는 일반적인 사고에 돌을 던진 이 드라마는 로맨스를 앞세워 담고 싶은 이야기가 따로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작품이 들려줄 메시지를 진지하게 들으려고 한다. 물론 전해주려는 메시지 자체가 기대된다. 하지만 이를 풀어내는 방식이 구구절절 설명하는 한 설명자의 시선에서가 아닌 적재적소에 심어둔 장면을 통해 주인공의 사연은 물론 주변 인물의 소개, 드라마 주제까지 녹여 전달해 내는 연출력 때문이다.


감각적은 연출은 여러 장면에서 보였다. 강태에게 환자가 구토물을 쏟는 장면을 폭포, 장미꽃 등이 떨어지는 화면으로 유쾌하게 푼다거나, 강태를 갖고 싶어 하는 문영의 상상을 보여주는 장면, 곽동연이 말하는 버닝 썬 아닌 모닝 썬 장면은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카메라 워킹을 보여줬다.


하지만 4회 중 내가 반한 최고의 연출은 문영의 문학 수업 시간이다.

드라마 인물 소개를 살펴보면 괜찮은 병원의 환자들이 몇몇 나와 있다. 이는 극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준다는 의미다. 그렇다고 한 명씩 사연을 소개하기엔 비중이 약한 이 인물들을 문영의 질문에 대답하게 하는 방식을 통해 소개한다.


흥부전에 대답한 여성은 부유하지만 우울증을 앓고 있고, 미운 오리 새끼에 대답한 남성은 별명이 간디다. 평화주의자다운 해석을 보여줬다. 인어공주에 대답한 젊은 여성은 가정 폭력으로 우울증을 앓고 있으며, 그녀에게 손수건을 건네던 젊은 남성은 알코올 중독이다.


문학을 해석할 때 자신의 삶이 투영된다는 부분을 활용해 주변 인물의 소개와 함께 문영이 어떤 사고를 갖고 있으며 익숙한 관점을 뒤집어 보는 이 드라마의 주제까지 품도록 전략적으로 짜인 연출이라고 보였다. 이 외에도 주인공들의 표정과 그에 맞는 아름다운 영상미는 드라마를 보며 다른 짓을 못하게 만든다. 식상한 표현이지만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한 장면, 한 장면에서 정성이 묻어난다. 그러니 당연히 각 잡고 진지하게 봐야지. 그게 연출진에 대한 예의 아니겠는가 :) 아니나 다를까 연출을 살펴보니 틈나면 다시 보는 드라마 <남자 친구>와 익살스러운 연출로 찬사를 받은 드라마 <질투의 화신>의 박신우 연출가 님 이번 작품을 맡았다. 입에 침이 마르도록 말했던 것 같은데, 내가 폭 빠진 (음악감독으로 유일하게 이름을 외우고 있는) 남혜승 음악감독님도 이 작품에 함께 한다. 나는 더욱이 예의 바르게 이 작품을 볼 수밖에 없겠다.


 


지금까지 드라마는 4회 방영되었다. 비주얼적으로 훌륭한 두 주인공. 구멍 없는 연기 장인들의 열현. 아동 동화 작가의 다크함, 정신 병동 보호사라는 낯선 직업 등 참신한 설정으로 이미 많은 이들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게다가 지혜롭게 배치한 연출까지. 하지만 무엇보다 익숙한 요소를 뒤집은 메시지는 섣부르게 위로를 건네는 것이 아니라서 마음에 들었다.


이들의 이야기 끝은 어떻게 끝날까.

왕자와 공주는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문영의 동화엔 마녀가 주인공이니 그저 그런 해피엔딩은 아닐 테다. 부디 처음 잡은 방향을 잃지 않고 괜찮은 현실 자각 각성 동화 한 편 써주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애정을 듬뿍 담아 성급한 리뷰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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