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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보 Jun 25. 2020

(아는 건 없지만) 가족입니다. : 대사 편 1

같이 살고 아침잠이 늘은 엄마와 출근길 잔소리로 다투는 일은 없지만, 엄마 전화를 우선순위에 두지 않음과 그로 인한 다툼. 그러고 나서 화해 제스처로 카톡 이모티콘을 고심해 고르는 모습에서 무심한 나를 보았다.

자녀 시간에 방해되지 않을까 물어보고 싶고 통화하고 싶은 여러 번을 참다 건 전화일 텐데 <슬기로운 의사 생활>에서 자식과 짧은 전화 통화로 행복해하던 주종수 이사장이 생각났다. 그때도 엄마가 언제나 내게 전화하길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않게 하는 딸이 되자고 다짐했는데. 매번 마음만 먹는다.

가족인데, 가족에 모르는 표정이 있다.
동생은 얼음 같은 첫째 누나가 바리스타랑 웃으며 친근하게 이름을 부르는 모습에 놀랐고, 첫째는 인상만 쓰는 엄마가 누군가 다정하게 통화하는 모습에 놀란다.
내가 모르는 표정으로 회사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언니, 아빠. 내가 몰랐던 엄마의 오래전 친구. 그때 느낀 감정을 생각나게 했다. 아는 게 없다. 그래서 가족인가. 드라마 제목을 그대로 보여준 장면인 것 같다.

집 안 다산 콜센터인 나도 엄마에게 자주 “언니한테 할 말은 언니한테 직접 해”라고 하는데... 이 집도 그러네...

엄마의 지침, 아빠하고 생긴 거리감. 알면서도 모른 척하게 된다. 뭐라도 먹고 가라는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주스를 한 모금 마시지만 결국 남은 건 엄마 몫이 된다. 순간 안쓰러운 마음에 아빠가 두고 간 도시락을 챙긴 은희처럼, 나도 처음부터 잘하지 못하고 뒤늦게 상한 마음을 달래 보려 한다..

물리적으로 너무 가까운데 아이러니하게도 심리적 거리가 가족 모르게 생긴다. 정말... 이 드라마 제목 자체가 띵언이다.

참 잔인하게 말하는 은주. 은희에게 잔소리할 때는 아웃사이더 부럽지 않은 래퍼가 되면서도 정작 자기 일은 말하지 않는다. 아무튼 위로가 필요한 순간 팩트 폭행당한 은희는 이후 5년간 연락을 끊고 지낸다.


이 장면만 봤을 땐 은주가 독하다고 했는데 그렇다고 연락을 끊은 은희도 여간 독한 게 아니란 생각이 든다. 아무튼 둘은 화해를 하지만 가족이라도 서로 간에 상처는 남는다. 시작은 은희만이었을지 모르지만 오 년이란 시간 사이 은주에게도 상처가 생겼다.


아버지는 정말 죽으려고 했던 걸까? 산속에서 저체온증으로 발견된 뒤 아버지의 기억은 22살, 1982년 10월 13일로 돌아갔다. 머뭇거림 없이 안 주머니에서 반지를 꺼냈던 그 날로.

평생 기억해야 하는 날이라고 했던 말은 다짐이었나. 그렇다면 왜 긴 시간 살아오면서는 서로의 다짐을, 행복의 순간을 잊게 되었을까.

우리 집 거실 벽 한쪽에 가족사진이 걸려있다. 네 식구가 함께 찍은 사진은 아니다. 엄마 아빠의 연애 시절, 결혼식 사진과 함께 나와 언니의 자라남을 한눈에 볼 수 있게 엄마가 큰 액자에 모아 붙여놓은 형태로, 가족사진이다.

하도 오래 붙어 있다 보니 잊고 지내는데 집을 찾는 손님들에겐 인상적인가 보다. 이건 언제냐, 여긴 어디냐 묻는 질문에 대답해주는 엄마 덕에 내 기억에 없는 이야기를 종종 듣게 된다.

언뜻언뜻 나도 모르게 엄마가 자주 쓰는 말투가 나오고 아빠처럼 행동이 나온다. 그럼에도 그때도 지금도 부모님에 대해 아는 게 없다. 특히 모든 물음에 당신은 상관없다, 너희 좋을 대로 -라고 말하는 아빠의 취향은 거즌 모른다. 이 장면을 보면서 언니와 나는 고개를 주억주억 끄덕였고, ‘너는 알아?’ ‘너는 알고?’ 화면 속 둘째와 셋째의 대사를 눈빛으로 나눴다..

엄마가 은주에게 아이를 가지라고 한데도 분명 이유가 있겠지만 은주의 결혼 생활은 그렇게 행복하지 못했다. 그걸 안 걸까. 아빠는 묻지 않고 그저 행복을 빌어주었다. 두 사람의 행복이 아닌 은주의 행복을.

매 회 밝혀지는 비밀은 가히 서스펜스급이다. 스포 방지를 위해 비밀들을 밝히지 않을 테다. 다만 매일 붙어사는 가족 간에도 이렇게 비밀은 있을 수 있구나, 그걸 느꼈다.

숙이 씨는 어이, 야, 아니면 자녀들 이름으로 불리고, 상식 씨는 여기, 저기 아니면 부르지 않음으로 불러지는 호칭으로 변했다.

22살 상식 씨는 숙이 씨가 빛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여기며 소중히 여겼는데, 약 30년이 지나 졸혼을 요구하며 집을 반으로 나누자는 숙이 씨에게 이 집을 네가 샀냐며 소리친다.

오랜 시간을 함께 하면서 우리는 왜 이렇게 서로에게 모지고 밉게 변한 걸까. 옆에서 보던 언니가 사는 게 팍팍해서 그래-라고 했다. 두 분의 시간에 어떤 이야기가 흐르는 걸까.

찬혁이 찍은 웨딩 사진 속 두 사람에게선 애정은커녕 행복도 느껴지지 않는다. 시작부터 그러했으니 5년이란 시간은 어떠했을까?

하지만 은주가 노력해옴은 느껴졌다. 차가운 남편의 시선에도 그녀는 대화를 청했다. 표정을 고르고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말하는 은주에게 조금은 다정히 대답해줄 수 있지 않았을까? 살아오며 쌓인 정이란 게 있을 텐데, 가끔 남보다 더 낯설고 더 차갑게 대할 때가 있다.

너무 잘 아는 사이라 남들은 볼 수 없는 모습까지 안다. 그런 상대가 고른 말은 본의 아니게 더 날카로운 말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때로는 못되게 꼭 상처 주는 말을 골라하기도 한다. 우린 가족에게 왜 이리 모진지.


김지석 대사............ 에 입틀막. 가족이라는 타이틀이 쥐어 준 믿음을 지나치게 신뢰하는 나머지, 그 믿음을 방패로 우린 서로에게 무관심하고, 당연시 여겼던 건 아닌지.



은주 말은 얼음송곳 같다. 차갑고 날카롭게 찌른다. 하지만 틀린 말이 아니라는 점에서 분하기만 하다. 조금 더 예쁘게 말해주면 좋겠지만 은희에겐 은주 화법이 특히나 지금 시점에 적절하다. 그리고 가족이라 남들은 해주지 않는 말도 이렇게 거침없이 하지. 물론 거침없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일 수도 있지만.


막내는 큰 누나의 비밀을 알고 있다. 아빠의 친 딸이 아니라는... 상상도 못 한 비밀. 그런데 이렇게 보면 너무나도 찐자 매, 찐 남매다. 싸우다가도 한 편이 되는 가족이라는 짬에서 나오는 티키타카 플로워 스웩.


가족에 대한 숨겨진 정의를 짚어주는 김지석의 대사는 모두 뼈를 때린다. 하지만 마지막 상념에 잠긴 은희의 독백도 알 것 같다.


다른 사람이 내게 했으면 그냥 무시하고 넘겼을 행동도 가족이 했을 때 커다란 상처가 되는 일이 있다. 잘 알고 아니 믿었던 이로부터 받는 공격은 아주 작아도 날카롭고 깊이 찌른다. 틈을 아니까.

가까이에서 볼 때 모른다. 가까워서 전체보단 부분만 보니까, 모른다. 아니 틀린다.

가족이라지만 한 사람, 각 자의 삶이다. 겪어보지 않은 그 사람의 시간을 가족이란 이유로 다 알 수 없어 틀릴 수 있다는 걸 간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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