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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보 Jul 22. 2020

(아는 건 없지만) 가족입니다. : 대사 편 5

가족 금고 찬혁의 말씀, 이번에도 옳다. 때로는 가족이 못 해주는 걸 친구가 해준다고.

가족은 태어날 때 정해 준 인연이다. 전생에 악연을 가족으로 만난다던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 가족에게 말을 아끼는 건 싫어서, 미워서, 설명하기 힘들어서라기 보단 같은 일로 비슷하게 마음이 어려울 테니까. 남이라면 떨쳐낼 고민을 가족은 끌어안을 테니까.


여러 생각으로 가족에게 하지 못 하는 말을 친구에게 한다. 한 때는 그게 못내 섭섭했었는데 지금은 굳이 내가 아니어도 털어놓을 누군가 있다면, 그래서 후련해진다면 그것도 괜찮은 일이라 생각한다.



은주가 은희에게 모난 말을 너무 쏟아부어 오해할 뻔했는데, 은주는 동생 은희를 아꼈다. 어떤 아이인지 가족 중에 엄마만큼 잘 알지도.


가족만 아는 모습이 있다. 반대로 가족은 모르는 모습도 있어 가끔 사회생활하는 언니를 볼 때면 맴찢�‍♀️ 하기도 낯설기도 하지만, 역시 가족이지 할 때도 분명 있다.


그나저나 내 이야기하는 줄 알고 뜨끔했네�

키득거리다가 진지했다가 꿈, 미래 이야기하며 걸어왔던 길을 반대로 다시 걷고, 일부로 돌아가는 길을 선택해서 한 없이 걷던 그 시절. 찬혁과 은희가 그리워하는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문뜩 그때가 그리워졌다. 무슨 고민이 그리 많았는지 밤새 걸어도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고 그러면서도 별 것 아닌 거에 웃고, 금세 발랄해지던 그때. 그렇게 걸어도 다음 날 멀쩡했던 체력이 그립고, 알 수 없는 미래가 불안했지만 그래서 꿈을 꾸던 희망찬 시간이 그립다.


지금 나는 #검블유 속 타미의 대사처럼 '에라 모르겠다 하기엔 모르지 않고, 돌 대로 돼라 하기엔 어떻게 되는지' 아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물론 그때 치열히 고민하고, 망하기도 하고 무너지면서 알게 된 것들이다. 그런데 그렇게 아는 게 많아지자 꿈과 미래를 이야기하는 시간이 줄었다.


한 없이 걷고 또 걸을 수 있는 체력은 사라졌을지라도, 제한하지 않고 꿈꾸며 설레던 나는 그대로였으면 좋으련만. 부쩍 너무 멋없이 늙어가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나는 이제 시작,

인 줄 알았지.

오래된 관계를 다시 맺는 것도 쉽지 않지 � 그래도 #살짝설렜어

도대체 어쩌라는 건지 일도 모르겠다. 은희야. 막막 선 먼저 그어 놓고 왜 안 넘어왔냐고 따져 묻는 은희 앞에 찬혁은 거의 보살.


그래도 스무 살 밤을 추억할 이가 가까이 있다는 건 참 좋은 일이다. 나의 스무 살 밤은 이른 취침이 전부였는데. 그래도 한 살, 한 살 늘어나며 길어진 밤. 그 밤에 희희낙락 거리던 대환장들은 모두 늙어 이제는 해가 중천일 때 만나 겨우 3시간만 지나도 하품 릴레이가 시작되면서 헤어질 준비를 한다. 한 50살이 되면 삼십 대 정오를 생각할 수 있는 이들이 있다는 것도 좋은 일이지.


오래 함께 한 시간을 추억할 수 있도록, 내가 잘할게. 선 넘어와줘서 고맙다. 대환장들아 �


이제 서로를 바라보고 대화하는 게 불편하지 않다. 마음의 큰 짐을 덜어내서 일까 더 이상 속일 게 없어 오해가 생기지 않아서 일까. 서로를 바르게 보고 알아차리고 이전보다 더 많은 대화를 나눈다.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어떻게 해쳐나가는 게 좋을지 은주를 보며 느끼는 게 많다. 결국 그녀는 잘 이겨낼 것이고 더 좋은 사람이 되며 또 좋은 인연을 만날 테니까.

멜로 눈깔.. 뭐예요. 오빠.. 하... 오랜만에 드라마보다 치였네. 제 마음 서랍 세 번째에 있는 오빠 얼굴 자기 전에 한번 꺼내보았습니다.


이러고도 둘이 친구라고 우기면 양심 없다고 경찰에 신고하려고 했는데 � 무흣해집니다.


아버지의 비밀이 밝혀졌다. 죽으려고 한 게 아니라 살려고 했다. 그런데 그 순간 정말 죽을 뻔했다니... 기억이 모조리 돌아온 순간 얼마나 철렁했을까.


진숙 씨는 자신이 살아온 시절을 생각하면 남편이 죽으려고 한 이유는 겨우 그것, 이다. 하지만 상식 씨 입장에선 절대 그것, 일 수 없다. 안타깝게도 우린 가족이지만 이처럼 타인이기도 하다.


하지만 겨우 그것 때문에 죽고 싶었다면 전화 한 통, 꽃 한 송이, 좋았던 시간의 기억이 살고 싶게 만들기도 한다. 서로에게 조금 더 노력하고 사소해 보이는 행동이라도 하려는 게 우리가 가족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은주 언니의 모든 말이 뼈에 와 닿는다. 이 대사를 소재로 쓴 글은 조만간 업로드 예정입니다 :)


맏이의 숙명. 맏이가 아니라 모르겠다만 겉 단속촉.... 은희도 언니 은주를 너무 잘 알고 있다.

차갑고 매섭게 말해 놓고서도 은희가 자기 전화 일부로 피하는 거냐고 물었다는 말에 바로 집으로 쳐 들어올 수 있는 열린 문을 허락해주었으니까.

현실의 남매는 이렇지. 진지함으로 마무리할 수 없어. 그래선 안돼. 법적으로 안되는 거야. �


찬혁의 말처럼 가까운 사이일수록 예의를 지켜야 한다면 편안하고 솔직한 관계는 뭘까?

하지만 이 말이 나오게 된 배경을 생각해본다면, 어느 순간에 우리가 편안하고 솔직한 관계가 아니게 되었다는 게 아닐까? 여기서 예의란 말과 행동을 함부로 하지 않는 태도로서 보단, 서로가 쌓은 시간이 주는 믿음을 우선에 두는 거란 생각이 들었다.


환경을 먼저 보고 오해 해버 리거나, 당사자보다 주변 말에 휩쓸려 버리거나 하는 식으로 너와 나 사이를 쉽게 대하지 않는 믿음. 그런 믿음이 있다면 행동에 예의는 자연히 따라 올터-


다행히 은희가 찬혁의 말을 제대로 이해해 둘은 더 친밀한 사이가 되었다.

돗자리 깔아야 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사람 정확하게 보는 은주의 레이더에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 걸렸다.


처음에 이 장면을 보면서 말을 하다 말고 왜 갑자기 아버지를 떠올렸을까 의아했다. 몇 번을 다시 보면서 은주는 그런 아버지가 보기 싫었던 건 아닐까 짐작했다. 미안해하며 자신의 눈치를 보는 아버지의 모습.


남들에게 그렇게 보이는 게 싫으면 그 사람이 널 좋아하는 거라던 말은 은주의 속 마음이었다. 나의 아버지가 아니라 밀어냈지만 실은 단 하나뿐인 소중한 아버지라는 마음을.


때때로 상대를 위해 한 충고가 내게 필요한 말일 때도 있다. 그런 말을 늘어놓고 돌아가는 날이면 뭐가 잘났다고 입 찬 소리를 했나, 나나 잘하자 자괴감이 든다. 하지만 은주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깨달은 생각으로 마음을 고쳐 먹었다. 자신의 부족함에도 정직한 은주이기에 그녀의 조언이 힘이 있는 게 아닐까 생각되었다.

5년 전에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바람 난 남자 친구한테 받은 상처를 위로받고 싶어 언니를 찾아갔지만 위로 대신 욕을 아니 정확하게는 욕처럼 들리는 촌철살인 잔소리를 들었다.


은희는 슬픈 일이 있으면 누구에게라도 전화를 걸어 운다던 찬혁의 말이 생각났다. 자신의 아픔에 갇혀 상대의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못했던 은희는 당시 언니가 유산을 했다는 걸 알지 못했다. 은주는 슬픈 일이 있으면 홀로 울던 사람이었으니까.


은희는 오 년이라는 시간 동안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언니를 떠올렸을 것이다. 잔소리 대마왕 언니가 부재한 오 년 동안 은희는 누구에게서도 냉정하지만 필요한 말을 들을 수 없었을 테니까.


후회로 물든 오 년이 아무런 소용이 없던 건 아닌 듯싶어 다행이다. 그 날과 똑같은 상황에서 은희는 은주의 모진 말에 굴하지 않는다. 남편의 비밀과 출생의 비밀 속에 힘들어하는 언니 곁에서 그렇게 무겁지 않은 고민을 주절거리는 게 은희의 위로법이었으니까. 그리고 실상은 언니가 해주는 어떠한 위로가 아닌 그저 언니 자체가 자신에게 위로라는 것도 알게 되었으니:)


우리는 다 자란 듯 보이지만 매 순간 자란다. 그리고 수 없이 부딪히는 관계 속에서도 가족에게 가장 많은 걸 배우는 듯하다.


추억마저 자신들의 성격대로 하는 두 자매가 서로 달라서 함께 함이 조화로운 게 아닐까.

앞에서부터 이어진 두 자매의 대화 내내 눈시울이 붉어졌다.

나는 건주가 참 싫다.

그는 차분히 자신의 생각을 상대에게 이야기한다. 논리적인 그의 의견은 하나 같이 맞는 말 같다. 다독하는 사람이라 그런가? 사람을 잘 보고 통찰력도 있다. 그런데 왜 건주의 말은 인정하기 싫고 어깃장을 놓고 싶은 걸까?


은주 언니 역시 논리적이고 이성적이며 상대를 꿰뚫어 본다. 심지어 은주 언니는 건주처럼 친절하게 말하지 않는다. 가슴을 관통하는 날카로운 말이지만 순응하게 된다.


두 사람의 차이점은 뭘까?

은주 언니의 말은 진심으로 상대를 위함이다. 상대가 잘되길 바라는 애정의 마음으로 하는 잔소리라면 건주는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위해 하는 말이다. 자신을 바라보게 하기 위해 어느 날은 당근을 어느 날을 채찍을 준다.


은주 언니는 자신이 악역이 되는 게 좋진 않지만 그래도 동생이 잘못되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건주는 자신이 악역이 되는 일은 절대 없다. 상대가 당신의 말이 내게 상처가 되었다고 말하면, 그것마저 당신과 나 사이를 위한 것이었다고 사탕발림을 한다. 그래서 아무리 다정해도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다.


만약 이 드라마가 가족드라마가 아니었다면 난 범인으로 건주를 지목했을지도. 우리 은희가 건주한테 제대로 선 그어줘서, 나 너무 고마워. 은희야 잘했어� 성숙한 연애� 은주 언니가 보면 뿌듯해하겠어 �

무릉도원에 있어도 혼자 있음 재미없을 터. 게다가 상식 씨 인생에 가장 좋았던 시절의 주인공인 진숙 씨가 변했다. 22살의 기억으로 회귀 한 상식 씨가 기어이 기억을 되찾으려 한 이유는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혼자만 행복한 것 같아서. 도대체 왜 진숙 씨가 변한 건지 궁금했겠다.


그래서 기억이 돌아왔을 때 상식 씨는 진숙 씨와의 오해를 풀기 위해 노력했다. 그 방법이 여전히 투박하고 일방적이었지만, 서로의 말을 끊지 않고 듣기 시작하면서 진숙 씨는 상식 씨의 언어를, 상식 씨는 진숙 씨의 언어를 배워가게 된다.


오래 막힌 대화가 다시 시작되면서 두 사람은 함께 좋았던 그 시절로 돌아간다. 말도 안 되는 이유 하나와 꽃 한 송이로 찾아오는 상식 씨를 어느 순간부터 진숙 씨는 기다리게 되고 두 사람은 그 시절에 해보지 못 한 데이트를 한다.


혹자는 오랜 시간 쌓인 오해와 감정이 이렇게 쉽게 풀리 수 있는 거냐고 물을 수 있다. 나는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기에 정확히 알지 못 하지만,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닐 거라 생각한다.


난 그래도 우리 부모님에 대해 조금 안다고 생각하는데, 엄마로서 아빠로서가 아닌 아내와 남편으로서는 두 분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다.


오랜 시간, 부부로 엄마와 아빠로 살아오면서 역할의 변화를 맞아 온 두 사람의 시간은 두 사람만 아는 유대감이 있을 테다. 그러니 나는 진숙 씨와 상식 씨의 관계가 편안해진 일에 대해 논리로 다가서지 않으려 한다.


그저 데이트를 마치고 온 부모님을 본 막내아들 말처럼 나도 우리 부모님의 그런 다정한 모습을 오래, 자주 보고 싶을 뿐이다. 뭐.. 물론 아버지가 아픈 설정은 좀 진부했지만 그래서 이젠 자식들을 책임지는 삶에서 두 분이 살아가실 삶에 대해 고민하는 촉매로 사용됨은 뻔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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