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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보 Jul 22. 2020

(아는 건 없지만) 가족입니다. : 대사 편 3

엄마가 기억하는 시간은 불안으로 가득 찼다. 사랑받기에 자신이 부족하다는 생각은 아빠뿐 아니라 엄마도 갖고 있었던 게 아닐까. 불안은 질문을 삼키게 하고 오해를 쌓고 틈을 만들었다..


가끔 엄마로부터 너네 때문에 살지, 자식 때문에 살지- 라는 말을 들을 때가 있었기에 진숙 씨의 회상이 슬펐다. 지금 내가 사는 시대는 자아실현과 자아만족을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게 생각한다. 아빠와 대화를 하는데 워라밸이 무슨 말이냐고 하시더라. 아빠와 엄마가 살아온 당시는 자신보다 가족이 먼저였겠지. 이미 나로 인해 젊음과 수많은 기회를 놓친 부모님이 여전히 그런 것 같아 죄송했다. 변해가는 시대의 분위기를 부모님은 적응하기 어렵겠지만, 그래도 이제라도 자신을 먼저 생각하셨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돕는 딸이 되어야겠지.




그럼에도 은희는 여전히 맞춰준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간도 쓸개도 빼주면서 눈치까지 살핀다. 사람 좋은 은희는 자신에게만 좋은 사람이 되지 못한다. 사랑받을 충분한 사람인데 마음속 불안이 눈 앞에 놓은 게 전부라고 믿게 한다.


그래서 달콤한 말을 하는 건주가 참 별로다. 그가 하는 달콤한 말은 은주를 위하기보단 어딘가 자신을 위하는 것만 같아서. 그리고 자신이 겪은 9년의 마지막을 반대쪽 입장에서 되풀이하는 은희가 너무 이해가 안 되다가도, 안타깝다.


남편이 처음 온 울산이라면서 곳곳 모르는 길 없이 걸었다. 결국 화가 난 진숙 씨가 남편에게 언제까지 거짓말을 할 거냐고 따져 묻자, 그제야 남편은 숨겨온 자신의 과거를 들려주었다. 같이 산 세월이 얼마인데, 모르는 이야기가 있다니. 그럼에도 마음을 걸어 잠근다. 듣지 않음으로 좋았던 시절은 잊고 아픈 시간은 기억하지 않으려고 한다. 엄마의 상처도 깊었으니까..


두 사람이 가장 사랑했던, 그 시절로 기억이 돌아간 상식 씨는 자꾸 그때 이야기를 한다. 상식 씨 기준에 그때는 과거가 아닌 현재겠지만 진숙 씨는 잊은 기억이다. 살아오느냐 잊어버린, 반짝이던 시절..


어려진 상식 씨 덕분에 추억을 회상하며 진숙 씨는 몇 번 웃었다. 순간이지만 가슴 한편에 행복도 느꼈다. 그럼에도 졸혼에 대한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아마도 과거를 추억할수록 달라져버린 지금의 관계가 도드라지게 느껴져 홀로 상실감을 느끼기 때문은 아닐까. 하지만 아버지가 다른 살림을 차리거나 했을 것 같진 않다. 그런 막장은 없을 것 같다. 복합적인 감정 변화를 보며 진숙 씨가 상식 씨를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는 생각이 자꾸 들기에.


좋은 기억이 많아야 하는 건, 이런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는 정말 왜 죽으려고 했던 걸까.

극적인 사건이 있어야 되돌아보게 된다. 익숙하고 당연했던 존재들에 대해. 은희는 이번 일을 통해 아버지를 생각해보고, 은주는 엄마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뻣뻣한 사과지만 그런 사과를 건네고 제대로 받는 게 가족 간엔 더욱 미숙하다. 그래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비록 기억이 돌아온 아버지가 은희와 약속은 지키지 못했지만, 이 날 딸이 자신에게 보여준 마음은 기억할 테니

적극 동의하는 생각.

"말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무거운 것이다. 무엇보다 대화 상대가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라면 더욱 조심해야 한다. 믿었던 사람에게 맞는 돌멩이가 더 아픈 법이다. 그래서 우리는 나를 믿어주는 사람일수록, 나를 아껴주는 사람일수록 예의 있게 사랑해야 한다." #마음의 방향 중에서.


남편의 예상이 맞았다. 왜 굳이 잔인한 방법으로 사실을 밝혔어야 했냐고 묻는 은희에게 이렇게 하지 않으면 은주는 자신을 이해하려고 노력할 거라고 했다. 배신감과 상처 속에서도 은희는 시시때때로 남편과의 지난 시간이 떠올랐다.


가족으로부터 품어지지 못했던 그에게서 은주는 자신을 보았던 것 같다. 그에게서 느낀 동질감, 자신은 알 수 있는 그가 느낀 감정들.. 이로 인해 그녀는 그를 그의 가족처럼 매정하게 무시할 수 없었다.


그래서 가족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슬픔을, 상처를 보여 줄 친구로 그녀 곁에, 그의 곁에 남자고 했을지도. 보면 볼수록 은주에게 사랑을 쏟아부어주고 싶다.


"난 절대 안 그럴 것 같은데"

라고 말하는 은주의 표정이 복잡 미묘하게 보였다.


누군가 앞에서 우는 것, 힘든 감정을 내 보이는 것 그건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안타깝게도 그런 생각은 스스로가 지운 무게다.


집안에 가장 역할을 했던 때, 그녀는 자신이 휘청이면 집안이 휘청일 거란 생각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그녀는 수많은 시간을 홀로 모든 걸 감당해왔다. 그래서 말이라도 힘들면 언제든 연락하라는 찬혁의 말이 고마웠을 테다. 가족에겐 자신의 힘듬을 보이지 않았을 테고 가족은 미안해서 혹은 몰라서 은주에게 찬혁이와 같은 말을 해주지 못했을 테니까. 그래서 자신에 비해 훨씬 자유로운 감정을 갖고 있는 은희가 부러웠을지도. 은주가 말한 '절대'라는 단어에서 부러움마저 느껴졌다.


부디 "절대"라는 말로 자신을 가두지 말았으면 싶다. 강산도 10년에 한 번은 변하는데 사람이라고 다를까. 타인의 시선과 말에도 우린 자주 움츠려 드는데 그보다 스스로 가둔 프레임이 더 독하다. 이쯤 되자 이 드라마가 끝나기 전에 은주가 누군가 앞에서 속 시원하게 우는 모습이 보고 싶어 졌다.


우리 집 정여사는 고맙다는 말에 인색한 분은 아니었는데, 몇 해 전부터 더욱 고맙다는 말과 미안하다는 표현이 늘었다. 많이 들어도 막상 하기에는 쑥스러운 표현이다. 그래서 늦은 밤 엄마와 나만 깨어 있다 잠자리에 들 때 엄마를 따라 말한다. 오늘도 수고 많았어. 고생했어. 고마웠어.


앞서 올린 은주의 대사처럼 가까운 사이일수록 예의 있게 대해야 한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 가까운 사이는 친구도 친구지만 가족이겠지. 나도 실질적인 도움 없이 말만 하는 게 싫어 방법을 찾을 때까지 미룬 적이 있는데, 고맙다와 미안하다는 표현은 진심과 만나면 그 자체로 힘을 내는 독특한 표현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괜찮다는 말

말뿐인 위로이지만 #이하이 #위로


은주는 사람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혼자 울었다. 늦은 오후 빈 놀이터 같은 곳. 절대 누군가 앞에서 우는 일은 없을 거라고 했는데.. 불 꺼진 집에서 혼자 울고 있는 모습을 남편이 보았다.


남편은 그녀의 슬픔을 목격 후 방관하지 않았다. 자신 탓을 하는 은주에게 그럴 일 아니라고, 오히려 자신을 탓하게끔 했다. 누가 누구를 탓할 일인가 싶긴 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속죄 방법이었을지도.


분명 며칠 전 남편에게 친구가 되어주겠다고 했는데, 당신의 슬픔을 짊어지고 가겠다고 했는데, 은주가 말을 바꿨다. 하지만 그런 모습이 변덕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그 말은 진심이었으나 아직은 이른 진심이니까. 이해가 혼란을 거쳐서 생기는 것이라고 본다면 이런 은주 모습은 오히려 현실감 있어 보인다. 그리고 그 혼란 속에 고민하다 은주는 자신의 진심까지 알게 되었으니.

기억을 되짚어보니 두 사람은 통하는 게 있었다. 가족이라면 당연시, 자연시 기대되는 것들의 부재. 한쪽은 그보다 채면이 우선이었고 다른 한쪽은 삶의 고단함이 소외와 거리감을 쌓게 했다. 그게 일부로든 아니든, 결과적으로 그랬다.


은주는 이 결혼이 일반적인 그러니까 사랑이 넘치고 양가의 크나큰 축복 속에 진행된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그렇게 만난 남편이 그래도 좋았다. 무심한 듯 보여도 조용한 삶의 모습이 닮았고, 속에 많은 걸 쌓아두는 것 같지만 그도 가족에게 속마음을 보이며 산 사람 같지 않다. 그러니 입이 무거운 자신을 그는 이해해주는 듯했다.


그렇게 오 년의 시간 동안 은주의 남편만이 알았을 것이다. 시댁에서 그녀가 어떤 대우를 받는지. 칭찬하 듯 돌려서 우아하게 깎아내리는 그 모멸감을 그도 받아왔을 테니까. 있지만 없는 사람 취급을 그도 받았을 테니까.


그 시간 동안 은희는 일방적으로 은주와 연락을 끊었다. 은주는 오롯이 혼자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자신의 경계선 끝 쪽엔 그가 있었다. 멀지만 자신의 테두리 안 쪽에 있는 그를 보는 것만으로도 은주는 안정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이제야 진심을 담았는데, 애처로운 고백이 애달프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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