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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보 Jul 22. 2020

(아는 건 없지만) 가족입니다. : 대사 편 4

오랜 시간 메일을 주고받으면서 읽는 책의 취향도, 사고하는 모습도 닮았다고 느꼈다. 비록 얼굴은 모르는 출간 협의를 위해 먼 외국에 보내는 메일로 친해졌지만 어느 순간부터 영혼의 단짝이란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한다고 한다. 그런데 그 사람과 나눈 메일을 보면서 다른 사람이 생각나지는 건 왜일까.


건주는 솔직하고 나이스 해 보였지만 까면 또 나오는 양파처럼 의뭉스러웠다. 메일의 상대가 실은 자신이 었다는 것도 솔직해지기 위해 말했다기 보단,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이었기에 알렸던 것 같다.


잘 통하는 소울메이트지만 어쩐지 거리끼는 마음이 드는 이유겠고, 세세하게 잘 맞는지는 몰라도 꽤 오랜 시간 추억을 공유한 진짜로 그리운 사람이 떠오르게 된 이유이겠지.

아무튼 건주랑은 빠이 #손절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읽어보지 않아서 따로 줄거리를 찾아봤다. 상식 씨 트럭에서도 이 책이 발견된 걸 보면 그도 아내가 읽는 책이니 찾아서 봤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끝까지 읽었을까? 중간에 보다 말았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책 속에서도 부인은 남편이 자리 비운 사이 다른 사람을 만났고, 함께 떠나자는 말에 마음이 흔들렸다. 거기까지만 읽고 책을 덮지 않았을까. 그리고 진숙 씨도 책 속 주인공과 같은 마음일 거라고 오해하며 의심하고 미워하고, 그렇게 살아왔다.


하지만 당시 진숙 씨가 가출을 감행한 건 상식 씨의 마음이 변해서라고 생각해서였다. 그가 싫고, 다른 사람이 생겼거나 은주의 진짜 아빠, 그 남자에게로 가고 싶어서는 추호도 아니었다.


왜 이들은 의구심이 든 당시 묻지 않았던 건가, 답답함에 대해 논하는 기사를 봤다. 사실일까 봐 무서운 마음 때문이 아니었을까. 가족은 싫다고 피하고 안 보고 일방적으로 끊어낼 수 없는 관계니까. 그래도 말을 했어야지,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이런 마음을 갖게 하는 게 이 드라마가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엄마랑 첫째 언니가 집을 떠난 며칠. 그리고 돌아왔을 때. 사건에 대한 인지는 모두가 갖고 있었지만 세부 기억은 모두 달랐다. 그래서 모두에게 저마다의 상처가 생겼다.

은주 말처럼 기억은 주관적이다. 그래서 대화를 하고 서로를 알아야 하는데 그러기엔 은주랑 은희.. 아니 항상 내게 어른이었던 부모님도 실로는 어렸다.

다만 이렇게라도 알게 되었으니 다행이다. 우리는 여전히 자라는 중이라 생각된다.



나도... 김지석이 한예리 보러 뛰어갔을 때 드디어? 하고 김칫국 마셨는데.....

아주아주 오래된 친구 사이도 가족만큼 깨질까 두려워 조심하게 된다. 괜찮은 척, 아닌 척. 소중해질수록 비밀이 쌓인다는 건 상대를 향한 마음이지만, 불편해져 버린다는 점에선 아이러니함이다.

(오늘따라 더욱 긴 개인적 감상입니다:)

 출생의 비밀이 없다면 가족 드라마고 할 수 있을까. 이제 출생의 비밀을 드라마 단골 소재로 다소 진부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종전 드라마와 다른 시각을 보여준다.


은주네 가족이 출생의 비밀을 알아차린 건 예기치 못한 사고로부터다. 기억을 잃은 아버지로의 실수로 막내와 은희는 첫째 은주가 친딸이 아님을 알게 된다. 다만 이 과정에서 비밀을 가진 자를 협박하거나 인위적으로 파헤치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다들 어쩌다, 우연히 듣게 되고 알아차리게 된다.


가족은 오랜 시간 함께 했기에 시작부터 만들어진 비밀을 모르고 평생 살 수 있다. 하지만 동일한 이유로 가족 내 흐르는 공기의 변화를 예민하게 알아차리기도 한다. 나는 이들이 비밀을 알아가는 과정이 인위적이거나 자극적이지 않아, 오히려 현실감 있게 느껴졌다. 그리고 엄마는 첫째 딸 은주에게 직접 비밀을 밝힌다. 다른 누구에게 듣게 하거나, 우연히 알게 하지 않는다. 이 부분이 본 드라마가 강조하는 점이 아닌가 싶다. 해야 할 말은 꼭, 당사자에게 하자.


카메라의 시선은 엄마에게서 딸에게로 옮겨 간다. 천천히 클로즈업되는 딸의 얼굴은 이어 20대 시절의 엄마에게로 향한다. 그동안 '출생의 비밀'을 생각하면 오랜 시간 비밀을 품고 있던 엄마(혹은 부모)가 그 이야기의 주인공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카메라 워킹은 비밀을 품고 산 이뿐만 아니라 비밀의 당사자까지 대상자라고 말하는 듯했다. 그동안은 비밀을 숨기고, 밝히는데 집중했기에 이 부분을 놓쳤던 것 같다.


그동안은 엄마에게 무게가 실렸다면 비밀이 밝혀지면서는 무게가 딸, 은주에게로 이동할 테다. 칼자루를 은주가 쥐고 있다는 의미가 아닌 정체성을 찾아가야 하는 의미로서 말이다.


실제로 은주는 혼란과 원망보다 당시 엄마의 심정이 어땠을까를 헤아려본다. 그리고 자신이 엄마의 인생을 희생시키며 태어난 불행한 존재는 아닌지 묻는다. 물론 이후 혼란스러워하며 모진 말을 하기도 하지만, 그건 은주의 방어기제라는 걸 안다. 그리고 그런 과정이 없이 받아들이는 진실은 진짜 일 수 없음을 우리는 안다. 섬세한 연출 덕에 우리는 진부한 소재에서 삶의 느낌표를 받았다. 이 드라마가 고마운 이유는 이런 느낌표들을 던져 줌에 있다.


'너무 잘 알고 지겹도록 보는 가족한테도 노력해야 한다는 거'


찬혁의 대사는 모두 좋았다. 익숙한 존재로 치부되어 버리는 가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대사들. 뜨끔하게 만들어 불편한 적도 있었지만 그만큼 의미 있는 대사였겠다.


그런데 이 장면을 보고 나니 찬혁의 대사가 더욱 좋아졌다. 그의 담담하지만 현실적인 조언이 실은 은희를 향한 위로의 마음에서 나왔다는 게 느껴져서. 그래서 그의 말이 날카로웠지만 상처를 주지 않고 뒤를 돌아보게 만들었구나.


애정이 담긴 조언이 이처럼 아름다운 거구나. 찬 팔이 정말 당신은 이 드라마 속 유니콘입니다.


집에서 식구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편이 갈린다. 나는 대체로 아빠 편, 언니는 엄마 편이다. 은주는 아빠 편, 은희는 엄마 편인 것처럼.

하지만 비밀을 알고 난 뒤 은주는 엄마 편이 된다. 평소에 냉정하다고 싫어했던 엄마를 변호한다. 그러자 은희가 아빠 편이 된다. 언니 말하던 아빠의 자랑스러운 부분을 은희가 상기시킨다.


우리는 제삼자로 지켜봐서 알지만 은희는 엄마의 졸혼이 자신 때문에 사랑하지도 않은 사람과 결혼을 해서, 이제라도 편히 살고 싶어서라고 오해하고 있다. 그래서 그동안 수없이 변호해온 아빠 편을 그만두고 엄마 편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아빠의 딸이 되지 않겠다는 듯.


하지만 나는 그래서 이들이 부정할 수 없이, 가족이란 생각이 들었다. 사회에서는 노골적으로 누군가의 편을 들지 않는다. 그것이 위험한 일임을 안다. 하물며 한쪽 편에 섰다 해도 순식간에 상대편으로 돌아서거나, 둘 사이를 왔다 갔다 하지 않는다. 그런데 가족은 그게 가능하다.


앞서 아빠 편, 엄마 편이라고 말했지만 가족이란 테두리 안에 우리가 하나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니 양쪽을 다 알고, 생각해 말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은주는 가족이 아니라고 하지만 다툼의 순간에도 나는 이들이 한 가족이라고 자꾸만 느껴졌다.



최근에 검블유를 빠르게 다시 봤다. 그리고 텔레비전에서 보여준 다시 보기로 봄밤을 몇 회 시청했다. 여기에 드라마 남자 친구까지 더하면, 참 말 예쁘게 하는 드라마 삼종 세트가 완성된다.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틱한 순간은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성숙한 대화로 풀어낼 때다. 하지만 대부분 현실은 이 자매와 같다.


혹자는 은희가 굳이 은주에게 저렇게 말했어야 했나 할 수 있다. 머리로는 언니가 힘든 상황이라는 건 알아도 아는 것과 그것이 행동이 되기까진 꽤 먼 거리다.

더욱이 가족은 가족이라 남이 모르는 틈을 안다. 쏟아지는 은주의 날카로운 말에 은희도 성난 말로 받아쳤다. 결국 두 사람 모두 상처뿐이 대화였지만, 이 드라마가 시작한 이후 두 사람이 다정히 말을 나눈 기억은 없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두 사람 사이 오랫동안 대화다운 대화가 없었으니까.


그래서 전혀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틱한 상황이 아니었지만 이대로 이 장면이 좋았다. 두 사람이 다시 서로를 향해 말을 배우고 말문을 틔우고, 진짜 대화로 나아가는 것 같아서. 은주가 이제 은희 앞에서도 울 수 있어서. 아차 하는 순간을 잊지 않을 테니까-



요 대사로 쓴 글 바로가기 ▶ "내가 너를 응원해"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

참 정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런 말 생각보다 우린 많이 한다. 친구나 회사 동료에게 내 생각을 강요하기보단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며 이해하려고 한다. 가족이라고 해서 모두 같은 의견을 갖고 행사해야 하는 건 아닌데, 가족을 ‘하나’의 의사 집결체로 여기며 이해와 존중을 생략한다.



은주의 표현은 차갑지만,


존중의 개념을 염두에 둔다면 이러한 자세는 가족 간에도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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