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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보 Jul 05. 2020

내가 너를 응원해

(아는건 별로없지만) 가족입니다(tvN, 2020)


외근을 마치고 돌아가는데 조금 전 헤어진 주임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그 날의 외근은 예기치 못했던 일정이었다. 주임이 담당하는 사건에 손이 필요하게 되면서 지원을 나가게 되었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독특한 업무 성격 상 직급보단 업무 담당자의 권한이 컸고, 독자적인 활동이 많다 보니 누군가의 업무에 지원을 나가는 일이 드물었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내게 커피 쿠폰까지 보내어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아무리 업무에 독립성이 강하다 한들 엄연히 회사 일이다. 개인적인 부탁을 들어준 것도 아닌데 그녀가 또 커피 쿠폰을 보냈다. 또 라고 말하는 것은 이미 그녀로부터 하나를 받았기 때문이다.


혹여 늦을까 부지런을 떨었더니 우리는 30분이나 일찍 현장에 도착했다. 낯선 곳이 신기해 이리저리 두리번거리고 있자 그녀는 이 곳이 자신이 전에 살던 곳이라며 때마침 시간도 있겠다, 대학가 앞 이곳저곳을 구경시켜주었다. 그리고 내게 기어이 비싼 마카롱 하나를 사주었다. 오늘 외근 업무가  꽤나 당 떨어지게 만들 거라며 하나 챙겨 먹고 시작하자고 했다. 거절했으면 큰 일 날 뻔했다. 그 뒤로 우린 4시간 동안 목 한번 제대로 못 축이고 일했다.


내게 고마워할 일도 아니었지만 맛있는 마카롱으로 이미 그 마음을 받았는데 뭘 또 보내냐고 적다가, 거절하면 더 큰 걸 들고 올 그녀임을 알기에 잘 먹겠다고 답했다. 안 그래도 헤어질 때 그녀가 저녁을 사겠다며 내게 광화문에 가자고 했다.


여대 앞을 구경할 때 그녀가 이 곳에서 광화문이 가깝다고 말했었는데 지리에 둔한 나는 얼마나 가까운지 물으면서 광화문 안 간 지 오래되었다고 했다. 내게 광화문은 책과 전시, 예쁜 카페가 있는 애정 하는 공간이었은데 언제부터 발길이 뜸했다. 그냥 그 시절이 생각나 지나치듯 한 말에 그녀가 이런 식으로 화답할 줄 몰랐다. 여러 모로 내게 마음을 쓰고 있었구나 고마우면서도 미안했다.


하지만 젊은이... 저질체력인 내겐 불금도 광화문의 추억도 너무 버겁구려.  외근을 갈 줄 모르고 신고 온 신발이 불편했다. 그런 신발에 발을 넣고 한시도 쉬지 않고 있었더니 두 다리는 이미 천근만근 한 상태였다. 허리까지 아팠다. 생각해주는 마음은 고마우나 내겐 휴식이 더 간절했기에 퇴근을 외치며! 그녀와 나는 지하철 역 앞에서 헤어졌다. 그리고 몇 정거장 갔을 무렵 그녀로부터 커피 쿠폰이 담긴 문자를 받은 것이다. 오고 가는 훈훈한 덕담 마지막에 그녀가 내게 말했다.


“대리님은 좋은 분이에요! 응원해요 정말”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란 소리... 언제 들어봤더라. 갑자기 마카롱을 고르라던 그녀 얼굴이 생각났다. 덕분에 대학가 구경도 했다. 그것만으로도 좋았는데 광화문에 가보고 싶다던 말을 기억하고 함께 가자던 그녀는 이전에도 내 관심사를 귀담아듣고 기억했다 관련 책을 소개해주기도 했다. 다정한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란 칭찬을 들으니 멋쩍어 웃음이 났다.


생각해보니 그녀는 자주 나를 응원해주었다. 나는 숨기기 바쁜 캘리그래피 활동도 그녀는 자랑할 일이라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주변에 알렸다. 대사를 쓰기까지 어떤 고충이 있고 노력이 필요한지, 자식 자랑하는 부모처럼 뜨겁게 나를 대변했다. 내가 캘리그래피 활동을 숨긴 건 삶을 분리시키고 싶은 마음이다. 일종의 부캐라고 할까.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마음은 자신이 없어서다. 자랑하고 드러내 놓기엔 잘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이런 생각이 컸다.


그런 내게 그녀는 항상 자신 있게 말해주었다. 열심히 하는 일, 대단한 거고 자랑해도 될 일이라고. 난 그녀에게 특별히 무언가를 해준 적이 없다. 고작 도시락 몇 번 싸와 나눠 먹은 것? 설마 그런 걸로 내가 그녀의 마음을 산 것일까? ㅎㅎ


사람에게 잘하지 못하는 부족한 인간인지라 예상치 못한 회사 동료에게 받은 응원이 너무나 귀하게 느껴졌다. 이번 여름 시작과 동시에 여러 차례 보양식을 먹었지만 그래도 채워지지 않았던 허함이 그녀의 응원으로 가득 채워진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예전 같으면 부담스러워하고 미안해했을 텐데, 이번에는 고맙다는 말로 그 마음을 받았다.


tvn,(아는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중에서


집안의 둘째로 태어나 비유를 맞추고 웃겨줘야 집안이 잘 돌아간다고 생각하던 은희는 초긍정으로 보이지만, 자기를 낮춰 버릇해 쟤 눈에 괜찮고 멋져 보이는 사람은 안될 거라고 아예 선을 그었다. 문학상까지 받아놓고도 글을 쓰지 않고 출판사를 다니는 걸 보면 은희는 나와 비슷한 사람일지 모른다. 자주 자신을 미워하고 자신 없어하던 은희에게 오랜 친구였던 찬혁이 말했다. 내가 너를 응원한다고.


예상이지만 드라마 마지막에 가면 은희는 출판사를 나와 글을 쓸 것 같다. 만약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그건 찬혁의 오랜 응원이 준 용기겠다. 내가 느낀 그런 뜨근한 힘 같은 거겠지.


벌써 2020년의 반이 지났다. 올 해는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모두가 예상치 못한 이유로 잃었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의 삶을 응원한다. 지금 우리에겐 서로를 향한 응원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몸을 든든하게 해주는 보양식처럼 마음을 든든하게 해 줄 응원의 힘을 믿는다. 다시금 우리의 열정에 불이 붙길!


곰아워요. 주임님아 (이 글을 볼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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