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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보 Jul 16. 2020

밤에 내는 개소리

사이코지만 괜찮아(tvN, 2020)

머리만 대면 어디서든 잘 자던 나는 2년 전부터 밤 잠을 설치는 날이 많아졌다.

숙면을 이루지 못하면 다음 날 바로 컨디션에 영향을 미쳤다. 밤이 되면 예민해지고 그럼 또 잠을 못 자고 힘든 밤이 반복되었다. 어렵게 잠이 들어도 작은 소리에 눈이 번쩍 떠졌다. 근래 내 잠을 깨운 소리는 엄마의 잠꼬대였다.


잠깐, 뒤척이며 나오는 잠꼬대가 아닌 랩을 하듯 쏟아지는 엄마의 잠꼬대에 하는 수 없이 방을 옮겨 잠을 청했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잠은 저 멀리 달아났고, 아침이면 엄마에게 짜증을 냈다.


‘엄마 잠꼬대가 심었어? 너무 피곤해서 그랬어. 피곤하면 그러더라. 우리 딸 못 자서 어떡해?’

미안해하는 엄마를 보면 마음이 불편했지만, 엄마의 잠꼬대에 유독 깨는 날이 많아지니 하루는 아예 엄마 쪽으로 몸을 돌려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보았다.


‘미안해.. 고마워... 고마워.. 감사합니다.’

엄마는 퍽하면 미안해했고 퍽하면 감사하다 하셨다. 누구에게 미안하고 무엇에 감사한 걸까. 그래도 끝이 감사라 다행이다 싶었다.  그러나 심장을 덜컹 떨어지게 하는 잠꼬대도 있었다.


‘아파.. 너무 아파... 아파..’

엄마가 예전에 지나치며 한 말이 생각났다. 아파도 우리에게 말하지 않는다고. 스무 해를 넘게 병원을 다니며 큰 수술을 두 번이나 받은 엄마는 자신이 아프다고 하면 온 집안이 걱정을 넘어 염려하는 걸 아셨기에 평소 아프다는 말을 하지 않으셨다. 정말 아파도 혼자 견딘 뒤 나아지면 그제야 요 며칠 아펐다고 하실 뿐이었다. 그러니 엄마가 아프다고 하면 정말 아픈 건데, 모두가 잠든 밤에 자신도 모르게 아프다고 말할 정도라면 낮동안 엄마는 얼마나 아펐다는 걸까?


상태는 감정을 모르는 자폐증을 앓고 있다. 그래서 표정과 감정을 공부했고 사람의 얼굴을 살펴 감정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학습으로 알아가기에 감정이란 보이는 것만큼 명확하지 않다. 강태는 형을 위해 슬퍼도, 힘들어도 웃었다. 그럼 상태는 동생이 행복하다고 믿었으니까. 하지만 모를 거라고 생각했는데 상태는 밤에 나는 개소리, 낑낑거리는 앓는 소리가 무얼 의미하는 알고 있었다. 마음이 아프다는 것. 밤마다 낑낑 거리는 동생이 마음이 아파 그렇다는 걸 상태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부족하지만 상태 나름으로 동생의 편이 되어주었다.


tvn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 중에서


모두 꿈나라로 떠난 밤이 되면 그제야 비어 있는 세상에 꽁꽁 숨어 있던 마음이 나온다. 모두가 듣지 못할 밤이라며 안심하고 있다 속을 털어놓은 엄마의 마음이 내게 들켰다. 그 날 이후 엄마의 잔소리로 잠을 설치고 방을 옮기게 되어도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자고 일어나면 비어 있는 옆자리를 보며 엄마는 당신의 잠꼬대로 내가 잠을 푹 자지 못 했을 걸 짐작하고 미안해하신다.


그럼 나는 비상금 위치를 물어봤다거나 하는 농담으로 놀린 뒤 피곤할 테니 더 자라며 출근을 서두른다. 엄마도 모르는 사이 방심해 들킨 속마음은 모른 척하기로 했다. 어설프게 다 아는 척 구는 것보다 몰라서 더 자세히 살피는 상태를 떠올리며 엄마에게 전화해 어디 아픈 곳은 없는지 묻는다. 그럼 또 아픈 곳 없다고 할 당신이지만 그렇게 숨어 있는 마음을 밝은 낮에 찾아가 달래준다. 조금은 마음이 솔직해질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엄마와 나의 밤이 평안하길 바람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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