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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보 Aug 01. 2020

부모님의 감정노동


내가 서른을 넘게 먹고서 부모님 집에 얹혀살 거라고 스무 살 무렵의 나는 상상하지도 못했다. 몇 해전 독립을 하고 싶어 알아보다 조용히 마음을 접었다. 높은 벽에 치이고 나니 도리어 철이 들었다.


그럼에도 넉넉히 생활비를 드리거나, 관리비 등을 내는 좋은 딸이 되진 못했다. 몸으로 갚자는 생각으로 청소부터 빨래 등 온갖 집안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하지만 오랜 세월 살림을 해 오신 엄마 눈에 찰리가 없다. 이건 이렇게 해야 한다, 저건 저렇게 해야 한다는 조언이 잔소리로 들릴 때가 있고 돕는다는 마음이 생색냄으로 변하면서 엄마 마음을 상하게 만들곤 했다.


안 그래도 작은 집이었는데 커져버린 몸과 함께 늘어버린 개인 살림살이, 그보다 더 자라 버린 생각은 이 모양, 저 모양으로 계속 부모님과 부딪힘을 만들었다. 왜 때가 되면 출가를 하는 게 효도라고 했는지 어른들의 말이 이해가 갔다.



tvn드라마 <(아는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중에서


2020년 드라마 중 단 하나의 드라마를 추천할 수 있다면 나는 단연코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tvn>를 선택할 것이다.  인생에 많은 느낌표를 던진 이 드라마에는 나처럼 철없는 막내 놈, 지우가 나온다.


부모님께  마음이 상한 지우는 한 동안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평소보다 일찍 출근하고 늦게 들어옴으로 엄마를 일부로 피했다. 아들의 방 문 앞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엄마의 모습에서 우리 엄마도 저러셨겠지 하는 생각이 드니, 나도 별다를 것 없으면서도 막내 놈한테 화가 났다.


결국 지우는 냉철한 첫 째 누나에게 혼이 난다. 독립은 안 하고 엄마가 차려주는 밥, 치워주는 방, 빨아주는 옷을 입고 편한 대로 살면서 엄마에게 네 기분과 눈치를 살피게 해야겠냐는 첫째 누나의 말에 지우뿐만 아니라 나까지 KO 패를 당했다.


이 드라마는 가족이라는 타이틀을 맹신한 나머지 서로에게 타인보다 못하게 굴 때가 많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에게 하숙생이라는 설정을 걸은 것이다. 남보다 못 한 사이가 되지 않으려고. 무엇보다 우리 엄마가 나를 그 정도로 철없게 키우지 않았다고 믿는다.


할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 부모님을 육체적, 경제적 노동에서 해방시켜 드리고 싶다. 그럴 수 없음이 죄송하고 그래서 가능한 감정 노동만큼은 그만 하실 수 있게 부모님께 잘하는 딸이 되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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