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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보 Jul 27. 2020

(아는 건 없지만) 가족입니다. : 대사 편 6



오래 친구였던 찬혁은 단순한 남사친 이상이다. 은희의 개인금고 이자 그녀의 가족의 해우소 역할까지 했다. 가족이 아니니 가족만 아는 은희는 모를 수 있어도, 가족이 모르는 은희를 아는 유일한 사람이다.


피를 나누진 않았으나 가족만큼 오랜 시간을 곁에서 함께 했다. 공유하고 있는 추억 양으로 계산하면 가족에 밀리지 않는다. 그래서 오래 고민해왔다. 이 마음을 표현할지, 이대로 숨길지.


남사친, 여사친이 연인이 돼가는 과정은 드라마 단골 소재다. 이 드라마에서 두 사람의 이야기는 중심 스토리는 아니다. 그렇다고 무거운 감정선을 부드럽게 하기 위한 역할로 소비되지도 않는다. 오히려 찬혁을 통해 가족만큼 소중한 가까운 누군가를 떠올리게 한다. 만나다 헤어지면 좋은 친구 하나 잃는 그 이상의 일임을 가족을 잃는 것만큼의 무게로 다룬다.


핏줄을 나눈 사이를 대게 가족이라 생각하지만, 부부는 핏줄을 나누지 않았다. 그럼에도 자식보다 가까운 0촌 사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두 사람이 연인이 되어 가는 과정이 단순히 우정에서 사랑으로 변해가던 기존의 이야기가 아닌, 가족이 되어가는 어떠한 과정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고민하는 은희가 답답하게 느껴지지 않았고, 드라마가 전달하려는 본 메시지도 잘 담아내는 것 같아 두 사람의 이야기가 참 좋았다.


서른.

그 수에 많은 의미를 담았다. 물론 먼저 서른을 겪은 이들의 조언처럼 몸이 예전 같지 않았다. 하지만 생각만큼 많은 변화가 있지 않았다. 오히려 별다른 변화가 없어서 불안했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인생을 바꾸고 싶어서 하루에 세장씩 쓰고 계획대로 살던 은희 마음이 어떠했는지 그래서 조금 알 것 같다. 물론 내겐 9년의 연애 이런 건 없었지만. 하지만 얼마나 절실했을진 모르겠다. 쓰고 쓰고 또 쓰고, 계획을 이행 해나가도 끝맺지 못한 글들만 늘어가고 마무리되지 못 한 감정이 쌓이기만 했다.


이쯤 해서 포기해야 하는 걸까. 은희가 습작을 컴퓨터 휴지통에 버릴 때 그런 생각을 잠깐 했다. 하지만 자신과 1일은 선포한 그녀를 보면서 포기가 아닌 정리가 필요한 시간임을 느꼈다.


서른을 훌쩍 넘긴 지금이지만 여전히 무거운 마음과 묵직한 부담을 갖고 있다. 그래서 은희가 습작을 컴퓨터 휴지통에 버릴 때 나도 이쯤 해서 포기해야 하는 건가, 고민했다. 하지만 자신과 1인을 선포한 그녀를 보면서 포기가 아닌 정리가 필요함을 느꼈다.




왜 부모는 다 자란 자녀가 겪는 모든 불행을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좋은 일에 대해서는 절대 자신의 노고를 나타내려 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아무튼 마지막 회로 가고 있음을 느낀다. 은주가 농담을 했고, 은주 때문에 웃게 되다니:)

 

한예리 배우님의 내레이션은 마음을 덜컹이게 할 때가 많다. '청춘시대'에서도 그랬고.

'나 자신이 초라해서 누구도 만나지 못했던 시절' 내게도 있던 그 시절이 한예리 배우님의 목소리와 함께 떠올라져 울컥하고 말았다. 글을 쓰는 지금도 마음이 울컥울컥거린다.


그래도 그런 시간에 은희는 씨앗을 하나 심었다. 그리고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나왔다. 그때 나는 구석, 구석으로 숨어들었는데 은희는 참 씩씩하다. 이왕이면 좋은 이유로,  준비되어 나왔으면 하는 마음이 아버지 표정에 묻어있다. 하지만 인생에 준비되어 맞는 시간보다 속수무책으로 맞딱드려 지는 시간이 더 많은 듯하다.


대사에서는 은주 말에 공감을 했지만, 상황이나 감정적으로는 은희에게 더 마음이 간다. 독립을 고민하는 이유는 부모님의 부담을 덜어드리기 위함도 있지만 그래야 정말 어른이 될 것 같아서. 고마운 그 울타리를 나오는 필요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우리 엄마도 아직 내가 아기 같은가 보다. 자주 아기 취급을 한다. 민망스럽게 :)

그 모든 시선과 손길, 억양에서 사랑을 느낀다. 평생을 받기만 하는 사랑이 있다면 부모의 사랑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 내가 살아오며 내린 결정과 그에 따른 책임을 당신의 잘못으로 여기지 않으셨으면 한다. 은주의 말처럼 엄마 때문에 이만큼 살아가고 있으며 이겨내고 성장하고 있으니까. 부디 이제는 엄마 생각을, 당신 생각을 좀 더 했으면 좋겠다.



먹고 사느냐 바빠도 그런 말들은 좀 하고 살 걸 그랬어.


이 내레이션에 함께 보고 있던 언니가 내게 사랑 표현을 강요했다. 언니는 자주 '사랑해'라고 말한다. 과거 힘든 순간을 지나면서 언니가 깨우친 바다. 할 수 있을 때 표현할 것. 마음을 전하는 일을 미루지 말 것.


많이 듣는 말은 무의식 중에 베여 따라 하게 된다. 엄마로부터 들은 '고맙다', '미안하다', '감사하다'는 곧잘 따라 하게 되는데, 언니가 해주는 '사랑해'는 아직도 익숙지 않다. 민망하고도 쑥스러워 손가락 하트를 옛다 하고 전해줬더니 좋다고 웃더라.


상대를 행복하게 하는 건 어쩜 쉬운 일인데 참 핑계가 많다.



생물학적으로나 법적으로 어른이 되었지만 자신 있게 어른이 되었다고 인정하진 못 하겠다.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어른 됨'이 앞서 말한 범주에 속해있지 않기 때문이겠지.


내가 생각하는 '어른'은 영화 <인턴>에서 시니어 인턴으로 채용된 '벤 휘태커' 씨 다. 자칫 올드하고 구태의연하게 보일 수 있는 그의 생활 방식을 주변 젊은 동료들이 하나 둘 따라 한다. 무엇을 강요함 없이 '벤'이 살아온 시간으로 주변을 포옹해 나감이 내게 이상적인 어른의 모습이 되었다.


그래서 가끔 어른으로서, 선배로서 내게 무언가를 바라는 눈빛을 볼 때면 괜한 책임감이 생긴다. 굳이 어른이 되어야 하나 생각할 수 있지만 좋은 어른을 꿈꾸는 동생들에게 굳이 찬물을  끼얹고 싶지 않다. 그런 꿈이, 바람이 있는 것과 없는 건 삶에 큰 차이가 있으니까.



#디어마이프렌즈 나문희 님이 연기 한 정아 씨도 진숙 씨처럼 세계 여행이 꿈이었다. 내방 하나 메고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어느 영화 속 주인공처럼 자유롭게 여행하는. 나의 엄마도 같은 꿈이 있다. 그 시절엔 여행이 지금처럼 자유롭지 않았고, 홀연히 떠나기엔 여행엔 묶어 놓는 손과 발이 많았으니 여행에 대한 간절함이 이해된다.


몇 해 전 엄마와 바다를 보러 다녀온 적이 있다. 지금도 부산, 강릉이 TV에 나오면 엄마는 그때 기억을 말한다. 엄마의 바람을 들어주는 건 내게도 오래 남을 기억이다. 효도도 효도지만, 내게 살아갈 힘이 되어줄 가족과의 기억을 많이 만들어 놓아야겠다.


그리고 이런 시간이 쌓이면 엄마도 엄마만의 여행을 떠날 수 있지 않을까.

진숙 씨와 상식 씨는 오랜 시간 풀어주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과연 말했다면 오해 없이 들었을까? 싶긴 하다. 하지만 그 결과 은주 말처럼 쌓아두기만 하고 모른 척하다가 문 한번 잘 못 열어 한꺼번에 우당탕 쏟아져 나온 창고를 만들었다.  


#아는건별로없지만가족입니다 는 꾸준히 가족 간의 대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말해주고 있다. 꼭 모든 걸 말해야 하나? 상황에 따라 다르다는 점도 언급했다. 아픈 아버지한테 굳이 막내 놈이 친 사고를 말할 필요는 없지만 그건 지금이 아니란 의미지 평생 몰라도 된다는 건 아니었다. 서로를 향한 마음이 왜곡되지 않기 위해 꾸준히 대화를 쌓아가야겠다. 가족이 가족이라 기울어야 하는 노력이 있다면 이 부분이 아닐까 싶다.

 

은주와 태형이 헤어지는 과정에서 '친구'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인디언 말로 친구는 '내 슬픔을 자기 등에 지고 가는 사람'을 말한다. 가족에게 슬픔을 짊어지게 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혼자서 감당하기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존재, 친구.


친구에서 연인이 돼가고 있는 두 사람은 슬픔도 짊어지고 가 주는 가족이 되지 않을까. 다정한 모습이 참 예쁘다.

가족의 첫 시작은 진숙 씨와 상식 씨였다. 두 사람이 만나 가정을 이루어 은주, 은희, 지우가 생겨났다. 그러니 이 가족의 중심은 두 사람이다.


나는 부모님이 부모로서 살아감을 고민하는 만큼, 두 분이 만들어가는 시간도 생각하셨으면 좋겠다고 자주 말하는 편이다. 가족이 단단하기 위해선 중심이 되는 두 분의 관계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진숙 씨 말처럼 언젠가 다시 두 분이서만 생활하는 시간이 오기도 할 테고. 여러모로 쉽지 않네:)


막내 놈 정말 좋게 봤는데 이렇게 철이 없을 줄이야.

인생이란 게 카약이나 타며 유유자적 살 수 없다는 걸 은주 언니가 깨우쳐 준다고 했으니, 살짝 불쌍해 보였지만

가끔 내가 부모님을 잘 모실 수 있을까 고민이 걱정으로 이어질 때도 있어 조오 금 막내 놈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은희의 바람처럼 나는 막냉이다. 어리광 부리는 타입은 아니지만 그래도 언니가 있다는 게 때론 마음에 위안이 된다. 가족은 이렇게 서로를 의지해 살아가는 게 아닐까. 그러니 쉽게 덮는걸... 덮은걸.. 이제 정리해야 하는데, 역시 겁이나.

찬혁이 언제부터 반지를 끼고 있던 걸까? 저 날 은희가 고백할 줄 몰랐을 텐데.

주머니에서 꺼낸 반지를 은희 네 번째 손가락에 끼어주었다. 그 자리엔 이미 은희가 자신에게 준 반지가 있었다. 그 반지를 빼내지 않고 자신의 반지를 넣는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를 좀 더 사랑하겠다던 은희의 마음까지 찬혁이 사랑한다는 걸 느꼈다.


드라마 상 찬혁의 모든 말은 옳았고 다정했다. 상처를 지닌 사람이 그 상처로 타인을 감싸 안을 때 얼마나 아름다운지, 찬혁을 통해 알게 되었다. (하.. 오빠.. 멋이쓔)

자려고 이불에 누웠는데...... 내일 출근해야 한다는 생각에 갑자기 우울해졌다.

'인생 언제까지 일 해야 하는 거야!' 머릿속으로 외치는데, 진숙 씨 대사가 생각났다. 아 백세 인생.


난 고작 이런 고민을 한지 십 년 정도밖에 안되었는데, 부모님 속은 어떨까.

그럼에도 나는 나 하나 사는 것도 힘들다고 하는데 부모님은 그런 와중에 자식 걱정까지 하니,

사는 게 힘들어. 힘들지.



마지막을 보면서 작년에 방영한 #눈이 부시게 가 자꾸만 떠올랐다. 가족 드라마라지만 분명 다른 결인데 아마도 그때 느낀 감동을 이 드라마에서도 느꼈기 때문인가 싶다.


제목에서부터 취적당한 나는 16회 내내 진지한 마음으로 드라마를 보았다. 무엇보다 엄마가 이 드라마를 챙겨보셨다. 덕분에 시청하는 동안 엄마의 찐 잔소리도 들었지만 그 덕에 진숙 씨와 상식 씨 마음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었다.


자매의 갈등이 풀리는 과정과 막내가 성장하는 이야기, 부모님의 오래되고 긴 오해가 풀리는 모든 이야기가 기존 가족 드라마의 막장을 답습하지 않고, 감동적으로 꾸미지 않아 좋았다. 특히 마지막에 엄마와 엄마가 각 자만의 시간을 갖는 엔딩이 좋았다.


우리 언니로부터 내가 매정하다고 불려지는 이유지만 나는 우리가 가족으로 묵여 있지만 각 자의 삶을 사는 개인이라고 본다. 가장 많은 시간과 기억을 공유해도 은주와 은희의 기억이 달랐던 것처럼 말이다.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정말 너무나도 소중하다. 세상 어느 공동체와도 비교할 수 없는 특별한 관계다. 그렇기에 각 사람으로서 존중함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엄마이지만 그전에 한 사람으로서 '진숙 씨'이며, 그 삶을 내 엄마라고 해서 그 역할에만 가둘 수 없다.


이 드라마 덕에 가족 간의 대화와 부모님을 향한 이해의 폭이 좀 더 넓어졌다. 가족에 대해 굳어진 편견도 많이 깨지며 삶에 던져주는 물음표가 많았던 드라마로 기억될 것 같다. 물론 너무 현실적인 표현과 상황에 뜨끔 하느냐 불편한 적도 있었지만, 올해 드라마 중 한 편을 추천해 달라면 나는 1번으로 이 드라마를 꼽을 것 같다.

나는 이 엔딩을 보고 진심으로 웃었다.

아버지를 향한 아이들의 오해도 풀렸고, 가족 간에 크게 흐르던 여러 문제들도 해결된 마지막 회. 가족 여행을 가자는 아빠의 말에 어디 휴양지로 떠나 탁 트인 배경에서 화목하게 웃으며 그렇게 끝날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이렇다. 가족 단톡 방에 아빠가 무언가 물어오면 언니와 나는 갠톡을 한다. 서로 의견을 합의 보고 가족 단톡 방에 이렇다더라, 저렇다더라 답을 한다. 나름 극적인 화해가 있었다 해도 다음 날이 되면 그 감동은 옅어지고 삶을 살기 바쁘다. 너무나 현실적인 모습에서 다시 한번 억지로 감동적인 상황을 만들지 않고도 느끼고 깨닫게 하는 제작진의 연출이 고마웠다.


그리고 두 분이서 떠났을 여행이 상상만으로도 행복했다. 조금씩 두 분이 자식들에 대한 걱정은 접어두고, 두 분만의 삶을 살아가시는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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