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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보 Jul 29. 2020

사이코지만 괜찮아 : 대사 편 1


'사이코지만 괜찮아' 시작 리뷰 [바로가기]


벚꽃 휘날리는 병원 마당에서 아담스패밀리 장례식 장 가는 듯한 복장으로 만난 문영과 강태.


운명이 뭐 별건가. 이렇게 필요할 때 내 앞에 나타나 주면 그게 운명이지.

참 어렵게만 생각했던 운명에 대해 간단하게 정리해주었다. 그래서 이 문장을 많이 사람들이 좋아했나 보다.

그리고 그 생각처럼 문영과 강태는 폭탄과 안전핀 마냥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어간다. 


동화나 소설, 대부분의 이야기 속 주인공은 착한 사람이다. 누구나 착한 역할을 맡고 싶다. 하지만 살다 보면 세상 돌아가는 많은 부분에 악역이 필요 함을 느낀다..


나쁜 사람, 매정한 사람이라 손가락질받는 일에 아랑곳하지 않고 아닌 건 아니고, 틀린 건 틀린 거라고 말해주는. 솔선수범하는 또라이 덕에 정신 바짝 차려지는 순간이 있다. 어떨 땐 이런 악역이 내 인생에 히어로가 되기도 한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악역은 상식과 일상 선에서 연상했다. 드라마, 영화 속 말고 �


고문영의 동화에는 공주보다 마녀가 더 예쁨 이 드라마에 실질적 주인공이다. 잔혹동화처럼 보이지 삶이 때론 잔혹 동화스럽지. 우리가 알고 있는 동화들이 실제는 잔혹동화였다고 도 하고. 


마녀는 악몽을 꾸는 소년의 괴로운 밤을 가져갔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약속대로 영혼을 가지러 왔다.

소년은 악몽이 사라졌지만 행복하지 못했다며 마녀를 원망했다. 소년의 원망에 답한 마녀의 말을 곱씹으며 상상해 보았다. 마녀가 악몽으로 지쳐 잠들지 못하며 괴로워하던 소년을 처음으로 찾아갔던 그 밤을. 소년의 부탁을 기꺼이 들어주는 조건으로 영혼 회수를 약속받은 마녀를. 


마녀라고 하니 이 거래가 못되고 사악해 보이겠지만, 잘 생각해보면 마녀는 소년에게 이미 알려주었다. 그 악몽을 갖고 간다는 건 너의 영혼을 갖고 가는 일이라고. 반대로 말하자면 그 악몽을 갖고 있을 때 영혼을 지켜낸다는 의미가 된다. 


요정이라면 어땠을까? 밝은 빛을 내뿜으며 소년에게 온 요정이라면 다독이며 그 밤의 악몽을 아무런 대가 없이 가져가 주었겠지. 하지만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소년의 삶에 또다시 악몽이 찾아오지 않았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조금의 힘듬이 찾아와도 소년은 스스로 해결하기보단, 문제를 대면하기보다 요정만 기다리지 않을까? 도깨비 속 대사가 생각난다. 신이 있다는 걸 알았던 한 소년은 그래서 인생을 열심히 살 수밖에 없었다고 하자, 김신이 말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이 있다는 걸 알기에 복을 맡겨둔 것처럼 요구하기만 한다고.


물론 친절하지 않은 마녀는 상세한 설명을 해주지 않았으니, 어쩌면 불공정 거래일 수 있다. 하지만 그냥 마녀가 마녀라는 이유로 못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 거친 세상을 살아가는데 요정보다 마녀가 필요할 때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에 온기라고 전혀 없는 소녀. 그 뒤를 쫓는 아이. 어쩐지 드라마 오프닝에 등장한 문영의 동화책 이야기와 닮았다. 자신을 무서워하고 그런 대우가 당연한 문영은 어린 소녀를 기억하며 묘사한 강태가 공포 속에 소녀를 기억하리라 확신했는데, 돌아온 대답은 "좋아했어"였다.


사소하지만 일상적으로 하던 생각들을 반 스텝씩 꺾는다. 이 드라마는 고정된 시선에 부딪혀 상처 입은 이야기들에 대해 말하고 싶은 걸까.

고문영의 행동을 자극적, 폭력적이라고 보는 불안한 반응을 느꼈다. 어떤 맘인지 알 것 같다. 게다가 그녀의 직업이 아동문학 작가다 보니 반사회적 인격 성향이 두드러지게 보이는 듯하다.


하지만 1-2회를 곱씹으면서 느낀 건 자신의 결핍을 아는 사람이 오히려 덜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반대로 사인회에서 장애를 가진 상태를 거칠게 밀어내던 부모, 뇌물을 받고 글을 쓰고, 성희롱적 발언을 일삼으면서도 무엇의 잘못도 느끼지 못하는 평론가를 보며 스스로 정상이라 생각하는 이들이 더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문영은 강태를 만나며 조금씩 변해갈 것이다. 강태도 그녀를 통해 마주하기 두려워했던 일들 앞에서며 극복해 나갈 것이다. 이런 변화를 예상하며 드라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 속 차현의 대사가 떠올랐다. "인류가 만든 최악의 개념은 정상이다, 라는 말이 있어요." 시작부터 공주와 마녀가 갖는 일반적인 사고에 돌을 던진 이 드라마가 로맨스를 앞세워 담고 싶은 이야기가 또 있지 않을까.

양 손을 교차해서 자신의 어깨에 하나씩 올리고, 가볍게 토닥토닥. 흥분된 감정을 먼저 가라앉히는 나비 포옹법. 나비의 날개를 뜯어내던 문영에게 날갯짓을 알려주는 강태. 만약 강태가 흥분한 문영을 안아서 달래주었다면 흔하고 뻔했을지 모른다. 아니 그런 위로는 어딘가 문영가 어울리지 않는다.


여기서 섣부르지 않은 위로를 본다. 토닥여주는 손길은 너무 고맙지만 스스로 먼저 자신의 감정을 다스릴 수 있어야, 타인의 위로를 건강하게 받아 들 일 수 있다 본다.


강태의 행동은 보호사로서 직업적 행동이었을지 모르지만, 문영이 손 위에 올린 강태의 손이 약하게 토닥이는 모습 속에서 혼자서는 아직 홀로 감정을 다스릴 수 없고, 그렇다고 의지하게 하는 건 위험한 상황 속에 함께 방법을 찾아가는 따스한 위로의 모습을 본 듯했다..

문영은 자신이 차갑고 서늘하고 때론 기괴한 분위기를 만든다는 걸 안다. 알고도 하는 건 의도가 있지 않을까. 나는 그녀가 일부로 사람을 밀어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것 치고 사람을 너무 잘 파악해. 


시간이 정해진 시험을 볼 때 모르는 문제는 우선 넘어가라고 한다. 그래야 뒤에 풀 수 있는 문제들을 놓치지 않는다. 인생에서도 가끔은 넘어가는 방법을 선택해도 괜찮다. 삶을 너무 묶어두지 않고 살아가다 보면 과거에 일이 스스로 풀리기도 하고, 풀어낼 수 있는 힘이 생기기도 한다.


문영이의 말에 강태는 자신이 그동안 문제를 피해 다녔다는 걸 깨닫는다. 그리고 괴로워한다. 나비를 피해 도망 다니던 십 년의 시간 동안 그도 많이 자랐음이 느껴졌다. 괴롭다는 인정함에서 오는 감정으로 묶인 매듭을 푸는 첫 시작이 되기도 하니까.


강태는 발달장애 3급의 고기능 자폐를 가진 상태를 자신이 보살펴 줘야 하는 사람으로 여기며 살았을 것이다. 강태가 보호사가 된 것도 같은 이유겠지. 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의심하지 않고 갖고 있는 생각은 굳어져 합리화, 당위성의 초석이 돼버린다.


난폭한 고문영으로 각성한 강태는 아마 몇십 년 만에 처음으로 굳어진 생각에 먼지를 걷어낸 것 같다. 그리고 본모습은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것과 달랐다. 형은 버릇처럼 동생의 낯을 살폈다. 타인의 미세한 표정을 관찰해 상대의 감정을 읽는 상태는 실로 섬세한 사람이다. 그에겐 동생의 웃는 표정이, 행복해하는 얼굴을 보는 게 자신에게도 행복한 일이다.


그런 동생이 성진 시로 가기를 물었다. 모든 사건의 시작이 된 그곳, 상태가 정확히 어떤 마음으로 그곳으로 가는 걸 동의했는지 모르지만 그에게도 강태는 자신이 지켜줘야 하는 동생이었다. 상태는 그렇게 약하고 보호만 받아야 하는 존재가 아니다. 실로 대부분이 그렇다. 어쩌면 강태 자신이 위로와 보호를 받고 있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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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시선을 비트는 재주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동화의 결말을 재해석함으로 보여준다. 잠자는 숲 속의 공주가 그랬고, 빨간 구두가 그렇고. 다음 편에서는 여러 동화, 우화의 메시지를 문영스럽게 전달한다.


재해석된 메시지는 너무 직구이기도 하고, 여러모로 놀랍고 어색하고 그래서 거부감도 든다. 하지만 여러 번 곱씹다 보니 당연함과 익숙함이 누군가에게는 특권의식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보니 드라마 스토리 진행에 논란이 있지만 메시지에 주목하려는 이들의 마음이 왜 때문인지도 알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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