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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보 Sep 10. 2020

이번 생은 처음이라 : 대사 편 1

그놈의 나이. 두 자리 숫자에 나는 지독히도 약하다.

나이 값 못한다는 소리 들을까 행동거지에 신경을 쓰고 화가 나도 참고 애써 어른인 척한다.


그와 동시에 그 나이 때라는 기준에 얽매인다. 대게 내 나이 때면 결혼을 했다거나 얼마를 모았다거나 얼마를 번다거나, 하는 말들.


나보다 먼저 이 나이를 지나간 사람들이 남긴 발자취는 평균값이 되어 남들처럼 이라는 기준이 생겨나게 했다. 보통이라는 말은 평범해 보이지만 살다 보면 이만큼 비범한 것도 없다.


세상의 평균값, 보통, 평범의 기준으로 보면 이 나이가 되도록 나는 뭐 하나 제대로 이룬 게 없다. 이번 생은 망한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나이를 처음 산다. 당연히 이번 생도 처음이 이 실수할 수밖에 없다. 잘못된 것 같은 길로 들어설 수 있으며 평균, 보통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 수 있다.


하지만 누가 알까. 우리 모두 처음 태어나 처음 사는 인생인데 내가 사는 모습이 옳지 않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두 번째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하는 이가 나타나기 전까지 정답은 아무도 모른다. 그저 살아가는 것뿐.


신피질의 재앙에서 벗어나는 길은 어떠함에 나를 가두지 않는 것일 테다. 초행길을 걷는 순례자처럼 겸손한 마음으로 살자. 내 나이가 어때서.

명문대를 나와 작가가 되기로 마음먹었을 때 그녀는 자신이 남들과 다른, 보통의 길에서 벗어났음을 느꼈다. 깜깜한 터널을 걷겠다는 마음의 준비가 있었지만 끝 모르는 터널 속에서 그녀는 지쳐간다.


인생은 그녀를 놀리듯 기회를 줬다 뺏음으로 결국 꿈을 포기하게 만든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결혼을 '선택'한다. 예상치 못한 그녀의 행보를 보며 친구들은 역시 또라이었음을, 과거부터 한 번씩 크게 일을 내던 그녀를 떠올린다.


실상 지호도 세희도 그녀의 친구들도 평범하지 않다. 그렇게 보이지만 어떤 부분에선 세상 또라이다. 아마 나도, 당신도 그렇지 않을까?


#이번생은처음이라서 를 다시 보면서 보통이라 불리는 평범한 삶이란 과연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있다. 나도 지난 시간 속에 지나 온 듯 한 저 터널. 지나온 게 맞나, 지나고 있는 중일까. 아님 다시 저 터널이 올 수도 있다.


하지만 처음 사는 생이니 보통도 평범도 제 각기, 저마다의 때가 있지 않을까. 이번 생을 처음 사는 우리에게 과연 평범이 어울리긴 한 걸까? 그거야 말로 비현실적이라는 생각과 함께.


주저앉고 싶었는데 때마침 앉은 곳이 세희라 다행이다. 이들은 서로 필요에 의해 만났다고 하지만 모르는 사이라서 더 솔직할 수 있었던 상황에서 서로가 좋은 사람이었음을 알아차리지 않았을까 싶다. 아무튼 이런 일도 비현실이지 �



지호는 이제 서른이 되었다. 그녀는 4년제를 졸업했음에도 80만 원 밖에 받지 못하는 보조작가 생활로 20대를 보냈다. 모두가 미쳤다고 했지만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훔쳤던 시나리오를 떠올리면서 글을 쓴다. 그저 글 쓰는 게 좋았기에 박봉과 열악한 근무환경도 문제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순수한 열정을 세상은 비웃듯이 뭉갠다. 무개념 한 인간들에 의해 꿈을 빼앗긴 그녀는 동네 카페에서도 채용해주지 않는 골치 아픈 고학력 무경력자가 되었다.


예전에 드라마 <스토브리그> 대사로 '미숙 씨가 해줬으면 좋겠어'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그곳에서도 나는 소속감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리는 왜 그토록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고 싶은 걸까. 어째서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는 안정감을 그토록 원하는 것일까.


정확히 자료를 찾아 쓰고 싶었으나 아무리 검색해도 나오지 않기에 예전에 본 내용을 기억해서 써본다. 매슬로우가 말한 인간의 5단계 욕구 중 기본이 되는 생리적, 안전 욕구는 이제 욕구가 아니라고 했다. 거의 대부분이 태어나면서부터 먹지 못하거나 안전을 위협받거나 하는 상황에 놓이지 않는다. 오히려 다이어트를 하고 외국으로 여행을 다닌다. 그렇기에 지금 시대를 사는 우리 그리고 다음 세대들에게 소속 및 애정, 자기 존경의 욕구가 더욱 중요해졌다고.


결국 지호는 세희와 결혼하기로 한다. 편히 머리 하나 누일 곳 없는 서울 땅에서 그녀에겐 사랑보다 주거 공간이 더 간절했고 그런 이해타산이 세희와 맞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본질적으로 그녀의 마음을 움직인 건 '지호씨니까요'라는 한마디였다. 6회쯤 가면 지호도 복남이에게 말한다. 똑같은 조건이었더라도 세희 씨가 아니었으면 거짓 결혼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참 별거 아닌 그 한마디가 우리 생을 움직인다.


서로를 존중하며 필요하다고 여기는 마음은 억만금을 주지 않아도 사람을 살아가게 하고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준다. 내 삶을 타인에게 기댄다는 게 아니라 존중받고 싶은 마음이다.


부디 우리의 '열심'이 무심함으로 무시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도 출근.

마지막 내레이션이 너무 비관적이긴 했지만 마지막 회 엔딩이 아니니 괜찮았다.


꿈꾸던 대로 그리던 미래는 아니지만 남들하고 비교는 하지 말자. 앞서 적은 코멘트에서도 보통과 평균이라는 기준과 잣대에 갈대처럼 흔들리는 내가 있었지만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냐는 도종환 시인의 시 한 구절을 떠올리며, 보통을 탐내는 그 속에서도 나다움만은 잃지 말자 그렇게 마음먹어볼 뿐이다.


엄마 마음을 몰랐다. 괜한 심술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엄마가 자식한테 하는 행동 중에 괜한 것이 어디 있을까. 갑자기 결혼할 사람을 데리고 왔으니 엄마는 섭섭했고 걱정됐을 테다.


아무도 응원해 주지 않았던 글 쓰는 일을 엄마만이 응원해주었다. 지호 본인은 포기한 이 순간에도 엄마는 자신의 꿈을 응원하고 있었다. 어렵게 남긴 엄마의 당부 편지는 그래서 눈물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알게 된 지 얼마 안 되었지만 자신을 제대로 봐주는 세희 때문에도 눈물이 났다. 서로를 잘 모를 때 그래서 더 세밀히 관찰하고 더 깊은 인상을 남기기도 한다.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둘이나 있다. 그리고 그 두 사람 모두 지호의 꿈을 응원해준다.


결혼이 뭔지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마지막 어머니의 말처럼 행복을 맡겨 놓고 당연하게 요구하는 건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이렇게 서로를 믿어주며 행복을 응원해줌으로 커진 서로의 행복을 나누는 관계를 바람은 너무 큰 이상일까.

드라마 대사 중 듣기 좋은 말이 있는가 하면 삶에 와 부딪히는 말도 있다. 이 드라마는 후자 쪽에 가깝다.


드라마 제목부터 그렇다. 이번 생은 처음이라니. 인생에 새로운 진리를 깨우치게 하는 제목은 지금까지 여러 매체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내 안에 아니 어쩌면 우리 안에 두리뭉실하게 떠 다니던 생각에 구체적인 형태를 만들어 준 내레이션이 등장한다.


'유대와 낭만이라는 평범함도 비용과 에너지로 계산되는 시대'


언제부턴가 새로 게 맺는 관계가 현격하게 줄었다.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시절에는 만나고 싶어도 커피 값 한잔이 부담스러워 약속을 피했다면 지금은 마음 쓰는 게 부담스러워 피하고 있다. 차라리 마음보단 돈을 쓰는 게 낫다는 물질 만능 주의식 관계관이 생겨버렸다.


물론 굳이 새로운 관계가 필요한가,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한테까지 잘해야 하나 생각한다. 각박한 세상을 살아야 하니까, 내 몸 하나 간수하기도 힘들어.라는 말은 변명처럼 느껴진다. 옹졸해진 마음이 가까운 사람을 향해서도 마음 쓰기 주저하게 되는 일이 생기면 돈은 있으나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된 건 아닌가 걱정스럽다.


이번 생의 초반 내레이션은 다소 무겁다. 짙게 가라앉은 감정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나중에, 나중에 이런 내레이션이 나온다. 이런 세상에 사랑이 있다고.


옹졸하다 말한 내 모습이 불편한 건 아마도 사랑이 있던 시절을 보냈기 때문이겠지. 이런 세상에도 사랑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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