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JTBC
해원(박민영 분)은 오랜만에 엄마와 이모 이렇게 셋이서 외식을 하러 나왔다. 어색한 침묵이 감돌던 식당에서 해원은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그녀는 오랜 서울 생활에 지쳐 도망치듯 이모가 있는 북현리로 내려왔다. 마음이 상한 그녀는 자신이 지금까지 해온 모든 일이 싫게만 보였다. 하지만 이 곳에 내려와 변함없이 따뜻한 은섭(서강준 분)의 곁에서 한 계절을 보내면서 해원은 자신을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녀는 다시 서울로 돌아갔다. 그리고 친구들과 학원을 차렸다.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던, 학생을 가르치는 일을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근황을 알리는 해원의 표정은 한결 편안해져 있었고 그런 그녀를 향해 이모와 엄마는 "좋네"라는 짤막한 대답을 하고 다시 짜장면에 집중했다. 퉁명스러워 보이지만 한 계절 동안 부쩍 다정해진 세 사람이다.
해원은 자신에게 생긴 변화를 '몸이 데워지고 나서 다시 해보니까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는 말로 설명했다. 나는 그 뜻을 단번에 이해했다.
나는 엘사랑 혈연관계라고 해도 믿길 정도로 수족냉증이 심하다. 몸이 차다는 건 생활에 여러모로 불편함을 준다. 우선 몸의 온도가 낮아지면 두통과 소화불량이 생긴다. 움츠러든 장기를 펴내고 움직임을 갖게 하기 위해 한정된 체력은 감정을 소화시킬 힘을 가져다가 오장육부에게 보낸다. 언제나 생존이 먼저다. 덕분에 마음으로 향하는 에너지는 항상 부족했고 빨리 떨어졌다. 쉽게 예민해지고 사소한 일에 상처 받았다. 그러면 마음은 다시 움츠러드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실로 몸의 온도는 마음의 온도에 영향을 미쳤다.
몸과 마음이 차갑게 식어진 날이면 가능하면 운동을 가려한다.
나는 요가를 한다. 몸의 에너지를 순환시켜주는 요가는 스트레칭의 연속 같아 보여도 전신 근육을 사용하는 고난이도 운동이다. 한 시간 제대로 수련을 하고 나면 몸에서 냉기는 사라지고 송글송글 땀이 맺힌다. 가끔은 주르륵 목을 타고 땀이 흘러내리기도 한다. 프로수족냉증러인 내게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그런 신기한 경험을 하고 따뜻한 물로 목욕까지 하면 온몸에 열이 돈다. 노곤노곤해진 몸은 차갑게 굳어 있던 마음에까지 열을 실어 보낸다. 힘을 얻은 마음은 걱정도, 염려도 모두 편안하게 풀어준다. 몸이 따뜻해지면서 열린 땀구멍으로 노폐물이 빠져갈 때 마음속 차가운 기운도 빠져나갔나 보다. 걱정 없이 잠을 자고 맞이하는 아침에는 부쩍 따뜻해진 마음이 주는 격려를 받는다.
'그래 그렇게까지 최악은 아니었어. 다시 하면 돼.'
'내 생각에 사로잡혀 판단하지 말고 직접 물어보자.'
'별 거 아니야. 할 수 있어.'
‘괜찮아.’
해원의 말처럼 따뜻한 기운으로 나를 보니 다시 할 수 있는 새 힘이 느껴졌다. 고작 이런 방법으로 마음이 풀릴까? 릴케라는 시인이 말했다.* 쌀쌀한 도시에서도 서로 손을 나란히 잡고 걷는 사람들만이 봄을 볼 수 있게 된다고. 사랑하는 이와 마주 잡은 손의 온도도 마음을 데워 봄을 가져오게 한다면, 내가 하는 이 방법이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엉뚱한 생각만은 아니지 않을까 :)
*라이너 마리아 릴케 '봄을 그대에게' 한 문장입니다. 저는 이 구절을 드라마 <남자 친구>에서 만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