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로 사색하기

by 양보

거실에 앉아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어김없이 질문이 들어온다.

"저기 저 장면 뭘 의미하는 거야?"

"쟨 왜 저렇게 말한 거야?"


꽤 수다스러운 사람이지만 집에선 말이 적은 편이다. 그런 내 말 문을 여는 건 역시나 드라마다. 취향을 존중하기에 웬만해서는 드라마 영업을 하지 않는 편이지만 가족만큼은 예외다. 내게 붙잡혀 지극히 주관적인 설명을 들으며 드라마를 보는 가족은 그래서 나와 드라마를 볼 때면 주인공의 심리나 장면이 나타내는 의미가 무엇인지 물어 온다. 그럼 나는 돗자리를 깐다. 물론 내 예측이 틀릴 수 있음을 전제로 하지만 그동안의 스토리와 작가의 전작을 토대로 미루어 짐작한 해석을 늘어놓는다.


가끔은 묻지 않아도 드라마를 보면서 느낀 생각을 곁들이기도 한다. 그런 나를 보며 엄마와 언니는 평론가나 칼럼리스트가 돼보는 게 어떻겠냐는 레퍼토리를 이어간다. 어떤 이에게 드라마는 재미있거나 재미없거나, 둘 중 하나다. 나의 언니가 그런 타입이다. 그에 반해 내가 드라마를 보며 느끼는 생각과 감정은 너무도 다양하다.


이제는 이런 반응이 익숙하지만 한동안 드라마를 보는 자세가 너무 진지한 건 아닌지 고민한 적이 있다. 이런 말이 있다. '웃자고 던진 말에 죽자고 달려든다.' 내 생각이 딱 이런 반응이 아닌가 싶긴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나의 언니처럼 유희적 차원으로 드라마를 즐긴다. 드라마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울고 웃고 화도 내며 여러 감정을 느끼지만 대개는 즐겁게 보고 잊어버린다. 나도 드라마를 보며 여러 감정과 즐거움을 느낀다. 다만 나는 장면과 대사가 준 생각을 잊지않고 삶에 투영시켜 확장시켜 나간다. 그리고 이를 글이나 말로 표현하다 보니 다른 사람이 보기에 내가 드라마를 어렵게 보는 것처럼 보였던 것 같다. 그리고 ‘어렵다’는 단어는 드라마를 즐기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도 주었나 보다. 드라마 정도는 편하게 보라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한 번은 내게 드라마는 그만 보고 책을 읽으라고 말한 사람이 있었다. 그가 드라마를 가벼운, 통속적인 이야기로만 생각하는 게 느껴졌다. 그런 그에게 드라마로 장황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내가 이해가지 않는 사람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가 가진 생각에 동의할 수 없었다.


드라마는 그가 유용하다 생각하는 책처럼 현실에 뿌리를 내린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일상을 소재로 만든 이야기가 종이에 적히면 책이 되고 사람이 연기해서 브라운관에 담기면 드라마가 된다. 영사기로 송출되면 영화가 되고 무대에 올려져 관객과 직접 만날 땐 연극이 된다. 그 안에 담긴 작가의 생각이 방법의 차이로 수준을 달리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드라마 리뷰와 대사에서 파생된 에세이를 적고 있는 브런치 매거진 이름을 <드라마, 현실을 착안한 판타지>라고 정한 이유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드라마를 더 잘 이해하고 싶은 마음에 작가가 모티브로 삼은 책이나 작품을 찾아본다. 많이 읽을수록 더 좋은 글이 나온다는 여러 작가님의 말을 신뢰하기에 더 나은 표현을 위해 꾸준히 책을 읽고 있다. 아마 내게 책을 읽으라던 그 분보다 훨씬 많이 읽고 있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말하진 않았다.)


드라마를 다른 작품들에 비해 낮춰 보는 시선과 만날 때마다 속이 상한다. 집순이인 내게 책과 드라마는 가장 편한 장소에서 만나는 친밀한 친구이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정해진 시간에 맞춰 찾아오는 성실함까지 갖췄다. 두세 시간 안에 이야기를 들려주는 영화도 매력적이지만, 매주 감정선을 쌓아가는 드라마는 곱씹어 생각하는 내 취향에 더 잘 맞는다. 그렇다 보니 책을 읽듯, 시를 읊조리듯 드라마로 사색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래도 가끔 장면마다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건 아닌지, 혼자서만 진지한 것 같아 눈치를 볼 때가 있다.

얼마 전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통해 많은 드라마/캘리 계정 중 왜 이 계정을 팔로우하고 있는지 물어본 일이 있다. 좋아하는 드라마를 다시 한번 볼 수 있어서, 취향이 맞아서라는 의견이 다수였지만 생각보다 장면에 대한 코멘트가 좋다는 의견도 많았다. 그리고 게시글마다 길고 길게 자신의 생각을 남겨주시는 댓글을 보면서 나 혼자만 즐거운 게 아니란 생각이 들어 다행이고, 감사했다.


그래도 일방적인 전달의 형태가 큰 SNS의 특성상 사적인 코멘트가 감상을 방해하지 않도록, 수위와 표현에 대한 고민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다. 하지만 드라마를 통해 사색하는 내 방식에 대해서는 이제 더 눈치 보지 않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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