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로가 체질> JTBC
며칠 째 인스타그램에 #blacklivesmatter라는 해시태그를 단 블랙 화면이 올라오고 있다.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는 의미를 담은 이 문구는 2019년부터 흑인에 대한 과도한 공권력 사용에 항의할 때마다 사용된 시위 구호다. 지난 5월 미국에서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비무장 상태의 아프리카계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사망한 일로 미국 전역을 비롯 전 세계와 SNS상에 흑인 인권 운동이 일어났고, 그 형태가 앞서 말한 블랙 화면과 해시태그다.
그러던 중 한 영상을 보았다. 이 영상의 진위여부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미국에서 진행 중인 흑인 인권 운동에 대한 상반된 두 반응이 담겨 있었다. 영상에는 검은 복면을 쓴 남성 셋이 상점을 약탈하기 위해 창문을 부수고 있다. 이때 마스크를 쓰고 종이 피켓을 든 한 여성이 그들 앞을 막아선다. 여성의 차림새는 그녀가 '조지 플로이드 사건'에 대해 평화 시위를 하던 사람 중 한 명임을 짐작하게 했다. 약탈을 감행하던 무리는 여성을 거칠게 밀어냈지만 그녀는 몇 번이고 다시 일어나 상점 앞에 선다. 무엇을 하기보다 그저 서 있다. 눈을 마주 보며 피켓을 보이는 모습 속에서 '나는 당신과 다툴 마음이 없어요. 그저 이 일을 멈춰 주세요'라는 호소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결국 남성 셋은 그 자리를 떠난다.
이후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다른 빈 가게로 가서 다시 약탈을 시도했을까? 왠지 나는 그들이 복면을 벗어 버리고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갔을 것 같다. 그들보다 작고 약해 보이는 여성은 난폭함이 아닌 그저 침묵함으로 상점을 지켜냈다. 선한 마음과 그곳에 뿌리를 둔 행동이 갖고 있는 강인함을 직접 겪은 그들은 자신들이 한 행동에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았을까? 그리고 자신들이 앞세운 힘이 얼마나 약하고 가치 없는 행동인지 느끼지 않았을까? 순진한 상상일지 모른다. 하지만 만약 그들이 집으로 돌아갔다면 그들 중 한 명이라도 복면이 아닌 그녀처럼 마스크를 쓰고 거리에 나와 건강한 목소리를 내는 자리에 섰으면 좋겠다는 더 순진한 상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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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천우희 분)는 자신이 쓴 드라마에 달린 악플 때문에 마음이 상했다. 그러자 범수(안재홍 분)는 외로워서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다는 사실이 감사하지 않냐고 말한다. 상한 마음을 엉뚱한 곳에 풀 수 있고, 누군가를 공격하는 무기로 사용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훨씬 많다. 이렇게 세상은 조금 더 착한 사람이 노력하며 살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것이 막상 손해 같지만 나쁜 사람에게 세상을 넘겨줄 수 없으니, 이런 행동은 지구를 지키는 위대한 일이라면서.
시위 영상 속 여성의 행동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녀를 통해 우리는 옳고 선한 마음이 얼마나 강한지 느꼈다. 그리고 이 마음을 잃지 않고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나쁜 사람들에게 넘겨주지 않는 방법이 된다는 걸 배웠다. 물론 범수 씨 말처럼 손해 보는 것 같아도 이 영상을 내게 보여준 이도 그랬고, 나를 통해 이 영상을 접한 다른 사람도 비슷한 마음을 느꼈다는 사실을 염두해 볼 때 여성의 행동은 실로 엄청난 영향력을 세상에 끼친 셈이다.
평범한 내 일상에도 화를 낼 것인가 숨을 고르며 반응할 것인가 선택의 순간은 찾아온다. 그럴 때마다 나는 후자를 선택하기 위해 애쓴다. 그야말로 애쓰는 노력이다. 어느 날에는 이런 노력을 하는 내가 바보 같이 느껴지고 또 어떤 날에는 가식적이라는 양심이 주는 가책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받은 만큼 돌려 주려 할수록 내 마음만 힘들었고, 그렇게 해서 얻은 결과로 즐거운 만족감이 없었던 과거를 기억났다. 그렇기에 본래 선하지 못한 사람이지만 같이 모질어지거나 악해지지 않으려 애쓰는 것이다.
애쓰는 노력으로 오늘도 나는 지킬만한 것 중에서 선한 마음을 지키려 한다. 지구는 이런 우리의 작은 노력들이 모여 지켜지고 있는 게 아닐까. 나의 히어로 동료들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