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임을 증명하는 일

<더 킹: 영원의 군주> SBS

by 양보

드라마 <더 킹: 영원의 군주> (SBS, 2020)는 평행세계를 소재로 한다.


0과 1의 사이를 지나 맞닿아 있는 평행세계. 태을(김고은 분)은 대한민국의 평행 세계인 대한제국의 황제, 이곤(이민호 분)을 따라 그의 세계로 간다. 반나절 정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자 그녀는 부산에서 서울로 이동하며 자신이 살고 있는 대한민국 그곳과 매우 닮은 대한제국을 누빈다.


그곳을 돌아다는 동안 그녀는 단 한 번도 대한제국 사람이 맞는지 신원을 확인받지 않는다. 어디든 갈 수 있었으나 누구나 만날 수는 없었다. 대한제국에서 그녀가 오래 살았던 집은 태권도장이 아닌 한의원이 운영 중이었고, 그녀가 일하는 경찰서도 같은 위치에 있었지만 그녀의 흔적만 그곳에 없었다. 자신이 알고 있고, 실제로도 닮은 평행세계 속 사람들은 그녀를 알지 못했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낯섦, 외로움은 거기서 왔다.


2020년이 시작되고 네 달만에 친구들을 만났다. 입과 코를 가리고 있어 서로의 눈 밖에 볼 수 없었으나 그들에게 내가 누구인지 설명하는 노력은 필요하지 않았다. 주제가 널을 뛰는 형편없는 대화였음에도 오래 알고 지낸 사이가 주는 편안함, 그 이상의 신뢰 속에서 웃고 떠드는 사이 고민이 해결되고 생각은 정리되고 있었다.


태을은 대한제국을 돌아다니는 동안 지금의 자신처럼 홀로 대한민국을 돌아다녔을 이곤을 떠올렸다. 내가 나인 걸 증명할 수 없는 세계에 왔던 그. 그는 얼마나 외로웠을까. 저녁이 되어 다시 만난 이곤을 보며 아마도 태을은 안심했을 테다. 그건 그를 사랑해서라기보다 내가 알고, 나를 아는 관계 속에서 오는 안심이었을 것이다. 이로서 알게 되었다. 내가 나인 것을 증명하는 건 신분증이 아니라 관계라는 사실을.


얼굴의 절반을 가리고 눈동자 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마스크를 쓰게 된 순간부터 나는 어쩌면 우리는 조금 더 외로워지지 않았을까. 나를 아는 이가 주는 안심을 누리지 못 한 채 시간이 계속 흐르고 있다. 그래도 손을 뻗으면 잡히는 휴대폰으로 서로의 안부를 묻고 일상을 나눔으로 마음의 거리를 좁힐 수 있다. 전화조차 걸 수 없던 저 두 사람보단 나은 상황이다.


살갑게 먼저 연락을 하는 편은 아니었으나 이번 일을 통해 자주 안부를 묻고 있다. 그리고 나눈 이야기를 기억해두었다 때에 맞춰 또다시 안부를 묻는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잊히지 않고 여전히 서로의 삶 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안심을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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