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공짜는 없다

<낭만 닥터 김사부 시즌2> SBS

by 양보

회사 가는 길목에 로또 명당 가게가 있다. 금요일 퇴근 시간이 되면 그곳에 긴 줄이 생긴다. 이 이야기를 했더니 아빠는 내게 오천 원을 주면서 로또를 한번 사 오라고 했다.


금요일 퇴근길, 길게 늘어선 줄 끝에 섰다. 생각보다 빠르게 줄어든 탓에 부랴부랴 돈을 꺼내 아주머니께 건넸다. 시선도 마주치지 않은 채 기계적으로 손을 움직이시던 아주머니가 불쑥 여러 개의 숫자가 적힌 종이 한 장을 내 앞으로 밀어냈다. 이런 프로페셔널이 기다림의 시간을 줄여 준 것이구나. 감탄을 하며 번호가 적힌 종이를 신줏단지 모시듯 고이 지갑 안에 넣었다.


토요일 밤 거실에는 긴장감이 맴돌았다. 아빠와 나는 간절한 마음으로 번호를 맞춰 보았다. 역시나 결과는 전부 불일치. 그럴 줄 알았다. 왜냐하면 나는 인증된 똥 손이기 때문이다.


어릴 적 내가 다닌 유치원은 크고 작은 행사가 있을 때마다 보물 찾기를 했다. 다 크고 나서 생각해보니 24색 색연필이나 수채화 물감 같은 보물급 종이도 있었지만 모두가 발견의 기쁨을 느낄 수 있도록 연필 한 자루, 공 책 한 권 등 소소한 품목이 담긴 종이도 넉넉히 숨겨져 있었다. 그런 배려에도 불구하고 나는 기가 막히게 하나, 두 개 있다는 꽝 종이를 찾아내곤 했다. 그리고 그 아이는 자라서 공연장 행사나 돌잔치, 하다 못해 회사 송년회에서도 꽝을 뽑았다. 아니면 꽝을 대신해 존재하는 우스운, 가져가는 것 자체가 짐이 되는 상품의 주인공이 되었다.


하지만 로또 번호는 기계가 골라 준거지 내가 운이 없기 때문이 아니지 않은가! 강력히 주장하려 했지만 다음 주 금손으로 불리는 언니가 천 원 투자로 오천 원을 만들어 오면서 그 자리가 명당자리임을 아니 내가 똥 손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금손과 함께 자랐기 때문에 그렇지 못 한 내 운빨을 원망하며 살 수도 있었지만 오히려 나는 쉽게 들어오는 게 없는 삶임을 빨리 인정할 수 있었다. 운은 따르지 않아도 뿌린 건 대부분 열매 맺는 정직한 삶이었기에 매사 성실하려 노력했다. 그러면 가끔 노력과 노력이 만나 기대했던 것보다 조금 큰, 기분 좋은 수준의 행운이 찾아왔다. 하지만 나 역시 한낱 인간인지라 바람 앞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유혹적인 제안에 솔깃하게 된다.


비슷한 상황이 돌담 병원 식구들에게도 찾아왔다. 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 간호사, 행정 직원에게 엄청난 조건의 스카우트 제안이 들어왔다. 하지만 몰래, 뒤에서 은밀하게 이뤄진 스카우트의 진짜 목적은 김사부(한석규 분)가 있는 돌담 병원을 흔들기 위한 도윤완(최진호 분)의 계략이었다. 헤드헌터로부터 제안을 받고 이직을 고민하는 주영미 간호사(윤보라 분)에게 엄현정 간호사(정지안 분)는 인생 모토로 삼고 있던, ‘인생에 무료 업그레이드는 없다! 세게 받은 것은 그만큼의 값을 치른다’는 수간호사(진경 분)의 말을 일러 준다.


살아보니 벼락같은 행운보다 보너스처럼 느껴지는 정도의 행운이 내게 맞았다. 필요 이상의 호의나 예상보다 크고 부담스러운 제안은 대부분 끝이 안 좋았다. 드라마에서도 헤드헌터가 제안한 병원들은 근무 환경이 열악해 직원이 자주 바뀌거나 부정한 방법으로 운영되는 병원들이었다.


똥 손 덕분에 욕심보다 자족하는 법을 배우고 성실한 삶의 자세를 갖춰 가고 있는 중이다(완벽히 가졌다고 쓰진 못 하겠다). 이런 귀한 삶의 태도를 만들어준 게 똥 손이다. 공짜 없는 세상임을 생각해보면 똥 손이야 말로 실은 엄청난 복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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