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출간하기 위해 글을 모으다 알았다. 내 글에는 유독 엄마가 등장하는 이야기가 많다. 지난번 브런치 북에도 엄마가 자주 등장했다. 아마도 엄마와 보내는 시간이 많이 때문일 것이다.
아빠와 나는 추억이 많지 않다.
중학생이 되었을 때 집안 사정이 급속도로 안 좋아졌고 아빠는 일을 찾아 지방으로 내려가셨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지방에서 일을 하며 주말마다 집에 오신다.
언젠가 엄마가 주말에 한 끼라도 네 식구가 함께 모여 먹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주말 저녁 약속을 비우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식구가 함께 저녁을 먹는다는 건 드라마처럼 화목한 일은 아니다. 자식이 자라온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지 못 한 아빠는 서른이 다 돼가는 딸의 시간을 따라잡지 못했다. 당신의 딸은 독립심 강한 사람으로 자랐는데 아빠의 눈엔 아직 중학생 어린 딸이었다. 내가 하는 일들을 불안하게만 보았고 잔소리가 넘쳐나는 저녁 식사는 다툼으로 끝나는 일이 많았다. 다행히도 갈등과 다툼의 해를 몇 년 지나면서 나는 아빠를, 아빠는 우리를 알아갔다. 밥을 먹고 함께 거실에서 과일을 먹으며 수다도 떨고, 조금씩 평화로운 주말 저녁을 만들어 갔다.
그렇게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알게 된 게 하나 있다면 아빠는 드라마를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주말 연속극은 물론 퇴근하고 기숙사에 가면 시작하는 일일드라마도 챙겨 보시는 듯했다. 반면 엄마는 예능 파다. 요즘에는 임영웅 씨를 덕질 중이며, 요트를 타고 바다를 나가는 예능과 다른 집 아이들이 자라는 걸 보면서 손주 보고 싶은 마음을 달래고 계신다.
딸이 드라마를 챙겨보며 이로 무언가 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면 엄마는 내게 아빠를 닮았다고 한다. 나는 아빠랑 식성과 체형(뼈대)이 닮았다. 그리고 드라마를 보는 것 까지 닮았다. 그렇다면 DNA 중에 ‘드라마’도 있는 걸까.
웨이브와 티빙을 정기 결제 한 뒤로 아빠와 리모컨을 두고 다투는 일은 없어졌지만 한 공간에서 텔레비전을 보는 시간도 사라졌다. 아빠는 못내 변해버린 상황이 아쉬운지 가끔 방에 들려 침대에 누워 아이패드를 붙잡고 있는 나를 보며 똑바로 앉아서 보라거나, 눈 나빠진다는 잔소리를 하고 나가신다. SNS에서는 모르는 사람들과 잘도 드라마를 소재로 이야기를 하면서 아빠와는 그러지 않았다. 미안한 마음과 어딘가 모르게 죄책감이 들었다.
요즘에는 다시 드라마 시간에 맞춰 거실로 나간다. 매번 그렇진 않고 거실에서도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기 보단 핸드폰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그곳에 앉아 자연스럽게 오가는 대화에 참여한다. 거창한 건 아니지만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도 효도라는 마음으로 그곳에 머문다.
나도 나중에 아빠만큼 나이가 들면 주말 연속극을 챙겨볼까? 아무럼 드라마 DNA가 어디 가진 않겠지.
거실에서 나누는 가족의 대화는 자주 삼천포로 빠지고 그보다 더 많이 투닥거림으로 바뀌지만, 나중에 내가 주말 연속극을 보게 되는 나이가 되면 이런 시간이 아빠와의 추억으로 떠오를 것 같다. 갑자기 조금 슬퍼지네. 이번 주는 조금 더 오래 거실에 앉아 있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