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의 감정 노동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tnN

by 양보

내가 서른을 훌쩍 넘어서도 부모님 집에 얹혀살 거라고, 스무 살 무렵의 나는 상상조차 하지 못 했다. 몇 해 전 독립을 하기 위해 집을 알아보다 조용히 마음을 접었다. 현실을 직면하고 나니 부모님께 잘하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럼에도 넉넉히 생활비를 드린다거나 관리비를 내는 능력 좋은 딸이 되진 못 했다. 몸으로 갚자는 생각으로 청소, 빨래 온갖 집안일을 하고 있지만, 오랜 세월 살림을 해 온 엄마 눈에 찰리가 없다.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해야 한다는 조언이 잔소리로 들릴 때가 있고, 돕는 마음이 생색내는 마음으로 변하는 날에는 못된 말로 엄마 마음을 상하게 했다. 안 그래도 작은 집인데 커져버린 몸과 그보다 더 커버린 자아가 이 모양, 저 모양으로 계속 부모님과 부딪힘을 만들었다. 왜 때가 되면 출가를 하는 게 효도라고 하는지 어른들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후 나는 내가 얹혀사는 신분임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 중이다. 하숙집 아주머니께 짜증이 난다고 신경질을 부리지 않으니까. 부모와 자식 사이를 하숙집 아줌마와 하숙생으로 비유하는 건 너무 매정한 거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철 없이 구는 건 졸업해야 하는 나이임을 부정할 수도 없다.


2020년 드라마 중 단 한 작품의 드라마만 추천할 수 있다면 단연코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tvn,2020)를 선택할 것이다. 가족에 대해 많은 느낌표를 던진 이 드라마에는 나처럼 철 없이 구는 막내 놈(김지우 역, 신재하 분)이 나온다. 부모님께 마음이 상한 지우는 한 동안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평소보다 일찍 출근하고, 늦게 들어옴으로 일부로 엄마를 피했다. 아들 방 문 앞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는 엄마를 보며 우리 엄마도 저러셨을까 하는 생각이 드니, 나도 별반 다를 것 없으면서도 드라마 속 막내 놈한테 화가 났다.


막내는 결국 첫 째 누나에게 불러가 혼이 난다. 독립은 안 하고 엄마가 차려주는 밥, 치워주는 방, 빨아주는 옷을 입고 편한 대로 살면서 엄마에게 네 기분과 눈치까지 살피게 해야겠냐는 은주(추자현 분) 누나의 말에 자유로울 수 있는 자식이 과연 있을까. 내게도 뼈 아픈 일침이 되었다.


이 드라마는 가족이라는 타이틀을 맹신한 나머지 서로가 서로에게 타인보다 못하게 굴 때가 많다고 이야기한다. 가족이라도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에게 하숙생이라는 설정을 부과했다. 남보다 못 한 사이가 되지 않으려고. 무엇보다 우리 엄마는 나를 그 정도로 철없게 키우지 않았다고 믿는다.


할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 부모님을 육체적, 경제적 노동에서 해방시켜드리고 싶다. 그럴 수 없음이 죄송하고 그래서 가능한 감정 노동만큼이라도 그만 하실 수 있게 섬세한 노력을 기울이는 중이다. 이를테면 방문을 닫을 때 바람결에 쿵하고 큰소리로 닫히지 않도록. 우리 사이에 불필요한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조심조심 방 문을 닫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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