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의 화신> SBS
어릴 때부터 엄마가 내게 가장 많이 한 말은 "할 수 있다!"였다. 이 말을 들으면 기억 하나가 떠오른다.
지금도 그럴지 모르지만 내가 초등학교를 다녔을 때는 국어시간에 시를 외워오라는 숙제가 있었다. 두 편의 동시를 외워야 했던 날, 생각처럼 암기가 안 되던 나는 조급한 마음에 울음이 터졌다. 그렇게 주저앉아서 안 된다, 못 하겠다 하며 울고만 있으니까 방에 있던 언니가 나와 내 국어 책을 가져갔다. 그 날은 언니도 숙제로 시를 외우고 있었다. 내게서 빼앗아간 국어 책을 쓱 보던 언니는 자신이 외워야 하는 시 두 편과 내가 외워야 하는 동시 두 편을 연달아 또박또박 외웠다. 그 모습에 나는 더 큰소리로 울고 말았다.
그런 일은 이후로도 종종 있었고 엄마는 그때마다 내게 "할 수 있어. 너도 할 수 있어!" 확신에 찬 말을 해주셨다. 그리고 그 문장을 집 냉장고에 붙여놓고 내가 못하겠다고 땡강 부릴 때마다 큰 소리로 읽게 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랑 같은 학교를 다닌 언니는 내가 외워야 하는 시를 이미 외웠을 것이다. 국어 선생님이 같았으니까. 하지만 그런 사실을 몰랐던 꼬맹이는 서러웠다. 언니는 똑똑한 사람만 나간다는 수학 경시 대회를 나갔고 엄마도 언니만 불러 집안일을 맡겼으니까. 고작 한 살 차이였지만 내 눈에 언니는 모든 완벽하게 해내는 사람이었다.
서로가 가진 달란트가 다르다는 걸 깨달은 뒤 한결 가벼워지긴 했으나, 여전히 완벽을 요구하는 일 앞에 위축된다. 지금 회사에서 하는 일 중에는 요구하는 서식에 맞춰 정확하게 기재해야 하는 문서 작업이 있다. 입사 초반에는 불안한 마음에 주말에 회사에 나가 처리한 문서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한 일도 여러 번 있었다. 누군가 내게 괜찮은 제안을 해도 겁을 내고 경계를 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다. 잘할 수 있을까? 괜히 한다고 해서 일을 그르칠 바에 차라리 안 하는 게 낫다 생각하며 고사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표나리(공효진 분)도 나와 비슷한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아나운서가 되고 싶지만 꽤 오랫동안 기상캐스터로 일하면서, 할 수 있다는 마음보단 할 수 없다는 마음이 커졌다. 사람들도 그녀가 아나운서가 될 수 있을 거란 가능성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어렵사리 아나운서 시험을 보고 온 날 표나리는 불안한 마음으로 결과가 어떨지 화신(조정석 분)에게 물었다. 내가 될까? 하는 질문에 그는 인생에 붙여야 하는 건 물음표가 아니라 느낌표라고 답했다. 될까? 가 아니라 된다! 확신에 찬 느낌표.
사람들에게 인생에 후회되는 순간을 물으면 실패한 순간보다 시도해보지 못한 순간을 꼽는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도 되는데 후회는 잘 됐을지 모른다는 가능성의 미련만 남긴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살면서 단 한순간도 완벽했던 적이 없는데 나는 왜 실수를 두려워하는 것 일가. 반복된 실수와 이를 보완해 나가는 노력으로 점점 더 나아진 삶을 만들어 온 자신을 어째서 신뢰하지 못하는 것일까. 그놈의 불신과 두려움 때문에 잔뜩 쌓인 후회를 볼 때면 속이 쓰린다.
지금도 엄마는 내가 무슨 일을 한다는 계획을 말하면 다른 말보다 "넌 할 수 있어. 할 수 있다! 해봐"라고 한다. 예전에는 오글거려하지 못했는데 요새는 엄마를 따라 "할 수 있다!" 소리를 통해 입 밖으로 내놓는다. 불안한 마음, 삶에 붙인 수많은 물음표를 하나씩 지우고 그 자리에 느낌표를 붙여 밖으로 내놓는다. 그럼 정말 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든다.
어쩌면 산다는 건 인생에 가득 붙은 물음표를 하나씩 느낌표로 바꿔 나가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불안한 마음이 들 땐 마법의 주문을 외쳐보자. "할 수 있다! 나는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