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 필 무렵> KBS2
서른여섯 먹은 딸을 엄마는 아직도 아가라고 부른다. 아마 내가 육십을 먹어도, 아이를 여럿 낳아도 엄마 눈에 평생 아가일 테다. 그게 엄마라고, 엄마는 말했다.
예전에 엄마는 내가 당신 속을 상하게 하면 "네가 결혼해서 애를 낳아봐야 엄마 마음을 알지"라고 말했었다. 엄마 마음이 얼마나 속상한지 생각해보라는 의미로 한 말이겠다. 하지만 나를 낳고 키우면서 속상하기만 한건 아니었는데 행복했던 순간에는 엄마가 되어 이 기쁨을 느껴보라 말해주지 않았다는 걸 깨달은 뒤 이 말의 사용을 피하셨다. 그로부터 조금 시간이 지난 작년 연말, 엄마의 다짐을 무너트리게 한 일이 있었다.
단순한 몸살인 줄 알았는데 대상포진이 재발했다. 숨을 쉬면 움직여지는 작은 몸짓에도 온몸이 찢기는 듯한 통증이 왔다. 누워 있지도 그렇다고 앉아 있지도 못 하는 나를 보며 엄마는 "네가 자식을 낳아봐야 엄마 마음을 알지" 그 말을 하고야 마셨다. 내 손을 잡은 엄마의 거친 손과 슬픈 목소리에서 나를 지켜봄이 얼마나 힘든지 느껴졌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됨과 동시에 역설적이게도 앞으로 나는 절대로 엄마 마음을 다 알 수 없을 것이란 확신 또한 들었다.
안 그래도 나는 종종 엄마에게 말했었다. 나는 엄마가 되어도 엄마가 내게 준 것만큼 내 아이를 사랑할 자신이 없다고. 엄마가 내게 보여준 사랑이 너무나 크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이 사랑을 엄마가 되었다는 환경적 변화만으로 자연스럽게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내리사랑이라며 흘러 내려가며 더 커지는 사랑이니 나도 분명 잘 키울 수 있을 거라 말해주셨다.
'엄마가 되어도 엄마는 못 따라간다.'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KBS2, 2019)에서 동백(공효진 분) 이도 나와 생각을 했다.
동백이가 연쇄살인범에 의해 죽을 위험에 놓이자 그녀의 엄마 정숙(이정은 분)은 딸을 지키기 위해 뭐든 한다. 사실 어린 시절 정숙은 딸을 고아원에 버렸다. 하지만 그건 밥 한 끼 제대로 먹일 수 없던 형편 때문이었다. 그래 놓고 항상 멀지 않은 곳에서 지켜보던 엄마였다. 동백이 어렵게 아들을 낳고 키우면서 조금씩 홀로 자신을 키웠을 엄마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엄마를 따라가지 못한다던 동백이의 고백은 곧 나의 고백이기도 했다.
엄마는 내게 아이를 낳아도 잘 키울 거라고 했지만, 태생이 이기적인 내가 아이를 잘 키운다면 그건 온전히 엄마가 내게 준 사랑으로 인함이다. 아이를 키우는 힘마저도 나는 엄마로부터 받은 셈이다. 그렇게 자식을 낳아 기르며 경험케 되는 일을 통해 '엄마'라는 자리를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나의 엄마, 서른여섯 해 나를 길러온 현숙 씨 마음을 아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말장난 같지만 엄마가 되어도 엄마, 그러니까 나를 키운 엄마 마음은 전부 알 수 없다. 그저 이런 마음이셨겠구나 헤아리며 사는 수밖에.
그럼에도 엄마는 나와 언니를 낳은 일이 당신 생에 가장 잘한 일이라고 한다. 이 마음을 내가 따라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언젠가 홀로 남아 비어진 엄마 자리를 보며 마음이 덜 아프고 싶은 못난 딸은 오늘도 엄마에게 잘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그러니 내 곁에 조금 더 오래 계시라고, 이 험한 세상 좀 더 함께 있어 달라는 이기적인 투정을 부리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