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겠다는 말의 의미는

<그냥 사랑하는 사이> JTBC

by 양보

기억하겠다고 적었다.

4월 16일이 되면 피드에 하나, 둘 올라오는 게시글 안에는 노란 리본과 함께 기억하겠다고 적혀있었다. 그래서 나도 그렇게 적었지만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무엇을, 왜 기억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부끄럽게도. 그 의미에 대해서는 어느 드라마를 통해 깨닫게 되었다.


유진(강한나 분)은 청유 건설의 막내딸이다. 오랫동안 부족함 없이 지내왔고 당당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건축사로 자랐다. 하지만 그녀에게 잊을 수 없는 과거가 하나 있다. 정확히는 잊으려 애쓴 과거다.


청유 건설은 무리한 스케줄과 외주화, 다단계 하도급으로 부실 건물을 짓는, 건설업계에서도 악명 높은 회사였다. 하지만 그들은 건설업의 관행이라며 자신들의 행동을 반성하지 않았고 결국 무리하게 지어진 쇼핑몰이 완공식 날 무너지는 사건이 일어난다. 그 날 많은 사람이 죽고 다쳤다. 누군가의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린 비극 앞에 청유 건설은 반성은커녕 모든 책임을 당시 설계에 참여한 건축사무소에 전과한다. 그 건축사무소는 한나가 사랑하는 주원(이기주 분)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곳이었다.


그 사건 이후 한나는 주원을 잃는다. 그녀는 그 시기에 힘들어하는 주원을 위로해주기보다 집안 문제라며 어른들이 해결하게 방관했고, 트라우마는 빨리 잊는 게 좋다며 그를 보지 않았다. 어쩌면 그녀는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책임 앞에 두려워 도망친 건지도 모른다.


그렇게 13년이 흘러 청유 건설 대외협력팀 팀장이 된 한나는 사고 현장에 건물을 짓겠다는 당사의 계획에 따라 그곳에 추모비를 세우는 일을 맡는다. 회사에게 있어 추모비란 그들의 과오를 떠올리게 하는 부정적인 꼬리표였다. 하지만 건설을 반대하는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뭐라도 해야 했다. 형식적으로 어딘가에 배치되길 원했던 회사와 달리 사고 희생자 가족이기도 한 강두(이준호 분)와 문수(원진아 분)는 의미를 담은 추모비를 건설하려고 한다. 추모비 설립을 두고 부딪히는 갈등 속에 유진은 알게 된다. 붕괴 사고는 13년 전의 일이 아니라 지금도 진행 중인 사고라는 사실을. 그 날 사고로 가족, 친구,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들은 여전히 그 비극 속에 살고 있다. 자신은 잊고 살아온 과거가 누군가에게는 현재였다.


무엇보다 13년 동안 청유는 변한 게 하나도 없었다. 여전히 불법을 행하고 부실한 건물을 짓고 있었다. 또 누군가의 목숨과 안정된 삶을 위협하고 있었다. 결국 그녀는 자신의 오빠를 해임시키고 청유 건설의 대표가 된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건설업의 오랜 관행인 외주화와 다단계 하도급을 일절 하지 않겠다고 결정한다. 이는 13년 전 참사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청유의 의지라고 밝혔다. 그렇게 과거를 잊지 않은 그녀는 마침내 책임을 지는 자리로 나아간다.


드라마이기에 가장 극적인 변화를 보인 건 주인공인 강두라고 하겠지만 내게는 유진이었다. 특히 마지막 회에 등장한 청유 건설의 의지는 드라마에서라도 바꾸고 싶었던 현실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와 동시에 '기억함'의 이유와 목적을 분명히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말. 이보다 더 기억하는 행위의 필요성을 설명한 문장이 있을까.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고 말씀하신 신채호 선생의 명언도 덧붙이며 나는 기억함의 이유와 목적을 되새긴다.


같은 아픔이 일어나지 않도록 기억하는 것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역할이자 책임이다. 가능한 책임을 다해 역할을 수행할 것이지만 그보다 이런 의미로 기억해야 하는 일이 더는 생기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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