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처음이라> tvN
얼마 전 동갑내기 친구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제 내 주변에 결혼하는 이는 더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친구가 결혼을 한다니... 나는 뭐 하고 있나 현타가 왔다. 별생각 없이 살다 가끔 이렇게 나이에 치이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놈의 나이가 뭐라고. 이런 상황에서 나는 번번이 흔들렸고 더 크게 위축됐다.
나보다 먼저 이 나이를 지나간 사람들이 남긴 발자취는 평균값이 되어 ‘남들처럼’이라는 기준을 만들었다. 그러면서 생긴 '나이 값'을 나는 또 성실히 지키려 했다. 규율과 규칙에 자동 반응하는 본성이 쉬지 않은 덕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나이 값'의 표준에서 점점 멀어졌다. 열심히 살아온 내 시간은 이 나이에 미혼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무의미해졌다. 속은 상하지만 그렇다고 사회가 정한 틀에서 벗어날 정도 간이 크지도 못 한 사람이다.
또다시 나이에 맞게 보이려고 옷을 고르고 행동을 조심하고, 기분이 나빠도 참고 어른인 척 굴면서 사회가 암묵적으로 인정한 '나이 값'을 지키려 했다. 그리고 본능에 가까운 감정에까지 나이의 잣대를 기울인 건 나만이 아니었다.
지호(정소민 역) 역시 자신의 감정에 나이를 소환한다.
그녀는 오랫동안 함께 일한 조감독이 자신을 좋아하는 줄 알았다. 오랜 썸을 청산하고 이제야 연애를 하나, 오늘이 고백하는 날인가 기대했는데 그에게 여자 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스무 살도 아니고 서른인데, 이 나이 되도록 남자 호의 하나 구분 못하고 설레었던 자신이 한심해 죽을 지경이다.
설레는 감정마저 나이의 제한을 두는 지호를 보며 세희(이민기 분)는 인간에게 닥친 재앙 하나를 알려준다. 인간에게는 고양이에게 없는 신피질이 있다. 신피질은 나이와 같이 시간의 개념을 담당하는 부위다. 이를 가진 인간은 스무 살, 서른 살, 마흔처럼 시간을 분초로 나눠서 자신을 가두고 나이라는 약점을 공략해 돈과 감정을 소비하게 만든다고 했다. 반면 신피질이 없는 고양이에게는 서른도, 마흔도 똑같은 오늘일 뿐이다.
이후 두 사람은 사랑 없는 결혼 계약을 한다. 드라마에서 계약 결혼의 장치가 늘 그랬듯 두 사람도 서로 사랑하게 된다. 그러면서 세상이 기대하는 '그 나이에, 이정도 되는 상황'의 압박에서 벗어나길 바랬지만 막상 결혼을 하니 또 다른 '남들처럼'의 기준이 기다리고 있었다. 결국 두 사람은 여러 시행착오 끝에 자신들만의 기준을 찾는다. 이들의 결혼생활 대전제는 하나다. '우리의 사랑을 최우선으로 할 것'.
나는 이들이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꼼꼼히 보며 배운 게 있다.
신피질이 주장하는 나이에 맞는 평범이란 일종의 통계 값일 뿐, 반드시 적용되어야 하는 원칙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나이’가 제안하는 가이드라인은 결코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해 있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만의’ 사랑을, 인생을 최우선으로 두어야 한다. 다만 나는 고양이가 아니기 때문에 자주 신피질의 재앙을 받을 것이다. 그저 그런 날에도 '나다움'은 잃지 말자고 다짐한다.
어차피 모두 처음 사는 생인데 정답이 어디 있을까. 지호가 해변가에서 한 대사처럼 어제를 살았다고 오늘을 다 아는 것은 아닐 테니 그저 내가 생각하는 어른스러움, 나이 값을 찾아가는 노력으로 신피질과 적당한 협상을 맺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