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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보 Jan 20. 2021

런 온 : 대사 편 3

단아의 인물 소개도를 보면 늘 내것이 많아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내가 못하는 건, 안 했을 때 밖에 없는데 자신 맘대로 안 되는 한 인물이 등장한다. 게다가 건방지게 뭘 자꾸 달라고 하는데, 자꾸 주게 된다. 그것도 시간을 내서.


라고 되어 있다. 어딘가 '내게 이렇게 대한 건 네가 처음이야'의 냄새가 풍긴다. 이런 건 어쩐지 현실 감각 나이스 한 단아와 어울리지 않는 전개인데. 부디 너무 유치하지 않게 전개되었으면 좋겠다.

그나저나 영화의 능글맞음은 저 세상 클래스인 듯. 단아 극혐 표정 �


이제까지 가난한 여주가 부잣집 남주 식구로부터 돈을 받는 장면을 드라마 상에서 허다하게 봤다. 하지만 그동안 여주에게 돈봉투가 주어진 게 남주의 가족이 처음이 아닐 거란 생각은 하지 못 했다.


그동안 돈 봉투 앞에 놓인 여주를 보면서 그냥 받지,라고 말했다. 김주원이 몸속에 들어갔을 때 길라임처럼. 받고 보란 듯이 흥청망청 써주길 내심 바랬던 건 잘못한 것도 없는데 돈봉투 앞에 죄인이 된 듯 앉아있던 여주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런 나의 생각은 내가 여주가 아니고, 어떻게 살아왔는지 모르니까 할 수 있던 흔한 드라마에 대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기선겸 씨는 돈이 많으니까 모르겠지만 난 어릴 때부터 많이 받았거든요.' 이 대사를 듣는데, 나는 미주를 여자 주인공이 아닌 내가 아는 한 사람인 듯 그동안과 다르게 다가왔다.


부모 없이 자란 미주에게 그동안 얼마나 많은 돈봉투가 이렇게 주어졌을까. 가난하고 힘없는 아이를 상대할 때는 진심보다 돈으로 해결하는데 쉽다는 안일하고 저급한, 선겸 아버지 같은 사람이 과연 없었을까. 이유 없는 도움을 경계하며 혼자 힘으로 해내려고 안간힘을 쓰는 미주를 생각하니 얼마나 많은 위선과 가식, 협박 앞에 마음이 다쳤을지 조금 그려졌다.


결국 미주는 그들의 화법대로 돈을 받는다. 대부분 그래도 괜찮았지만, 자신과 다를 바 없는 상황에서도 독야청청하시고, 자신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선겸을 보니 미주는 자신이 창피해졌다. 너무 맑은 선겸은 내가 가진 바닥을 비춘다. 왜 사람들이 선겸을 싫어하는지 알 것 같은 대목이다.


하지만 선겸은 미주를 미주가 자신을 생각하는 것처럼 보지 않았다. 그는 미주가 건넨 위로에 진심으로 위로받았다. 미주가 돈을 받았다고만 말하고, 돌려줬다고 말하지 않은 보좌관의 속내를 꿰뚫어 보좌관님이 더 악역이라고 말한 걸 보면, 선겸은 미주를 믿고 있다. 진심은 부딪히는 순간 알아차려질 수밖에 없으니까.


위 대사 덕분에 나는 익숙했던 사실에 다른 문이 있음을 생각해볼 수 있었다. 돈이 건네 지면 '받는다', '거절한다'로만 생각했는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음을. 돈 봉투를 받는 진부한 사건이 한 인물의 과거를 설명하는데 진부하지 않게 쓰일 수 있음을 느낀 장면이기도 했다.


#코멘트길이는_애정하는마음과비례하는듯 #읽어주시는노고에감사드립니다 ◡̈


미주가 먼저다. 선겸이 그리 아버지한테 사랑을 빙자한 모욕을 당하던 날, 그녀는 그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저 같이 오분자기를 먹었다. 묻지 않은 건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음 때문이 아니라, 말하지 않는 속사정을 불쑥 비집고 들어와 헤집는 그 뭐 같은 기분을 그녀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겸이 라운지에서 그녀가 돈 많은 친구의 멸시를 굴하지 않고 받아치는 과정을 정말로 듣지 못했는지 모른다. 그가 듣지 못 했다니까 믿을 뿐이다. 하지만 그것마저 고맙다. 들었던 듣지 못했던, 미주를 배려함이며 들었던 듣지 못했던 아무튼 그마저도 티 내지 않고, 아무것도 묻지 않으니까. 선을 지키는 선겸의 단정함이 위로가 된 순간이다.


그리고 그 순간 고마움을 애써 지나치지 않고 말로 표현하는 주인공들이 좋다. 이렇게 쿨하고 솔직 담백할 수만 있다면, 내 내장지방 전부를 줄 텐데 ◡̈ #좋은거래라고생각한

이 뒤에 소주 한잔 반 마신 선겸은 또 취해 아무 말이나 하지만, 차라리 아무 말이나 좀 하는 게 낫네. 선겸이 하는 말은 타인의 심정, 상태를 확인하는 것 아니면 자책, 자포자기하는 것 밖에 없으니까.


실패도 결과로 가는 과정 중 하나다. 모두 좋은 결과, 이왕이면 100점을 향해 가지 꼴찌 될 생각으로 시작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하지만 완벽한 마무리가 있는 결말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가령 자격증 합격을 위해 1년을 준비했는데 떨어졌다면 실패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다음 년도에 붙었다면 1년 전 실패는 성공의 과정일 뿐이다.


아니다. 드라마 허쉬에서는 실패 또한 성공한 자의 실패만 인정받는다고 했다. 미주의 말을 다시 꼼꼼히 살펴본다. 실패도 '성공'으로 가는 과정이 아니라 실패도 '결과'로 가는 과정이라고 했다.


죽어 무덤에 묻히기 전까지 결과를 알 수 없는 게 인생이다. 그리고 죽음 앞에서 그 어떤 결과도 사실 의미가 없다. 그러니 아무래도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 그게 설령 실패라 할지라도, 모든 순간 정직과 성실히 임해왔다면 결과에 대한 판단은 죽음 이후로 미루는 건 어떨까. 연초부터 너무 무거운 이야기인가...

선수들 간의 폭행사건을 피해자의 진술이 아닌 인터뷰 형식으로 들으니 훨씬 더 객관적이어서, 투명해서 마음이 쓰렸다. 한국 언론은 조용히 2등을 유지하던, 실력 좋은 선수가 돌연 연습경기에서 달리지 않은 채 자신이 한 폭행을 폭로하는지, 그 이유를 묻지 않았다.


팩트는 맞지 않냐고 되물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기자의 역할은 사실 전달자가 아니다. 팩트는 체크되어야 했다. 하지만 그러기에 육상계 기강이, 권위가 선겸의 아버지가 귀찮고 두렵고 그랬을지 모른다. 육상이 그렇게 인기 있는 종목도 아니고.


결국 외신기자들에 의해 선겸이 그렇게 행동한 이유가 밝혀졌다. 그걸 미주는 돈도 받지 않고 나서서 번역해 사이트란 사이트에 올린다. 심지어 게임 친구들까지 동원해 소식을 나르게 한다. 그제야 인터넷 상에서 퍼진 번역문을 앞다퉈 신문은 퍼다 나른다. 이후 후속 취재는 있을까. 갑자기 허쉬란 드라마가 연결되어 다른 분위기로 진지해졌네..


#드라마를_다큐처럼보고있는중입니다



후배를 위해서 한 일이지만 이로 선겸이 얻을 건 없었다. 선겸이 잃을 것만 있었을 뿐. 앞선 대사에 이런 코멘트를 적었다. 누군가를 위한 일이 정말 그 사람을 위한 일이 되려면 좋음을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지만 반대로 나를 위한다면서 누군가 희생하거나 피해를 입는 것 또한 받는 사람의 입장에선 반갑지 않다. 나는 참는 게 익숙해서 괜찮아 라고 말하지만 그런 게 괜찮을 리 없다. 후배도 그런 줄 알았으나, 그런 아픔을 아는 선겸 눈에 괜찮지 않았던 것처럼. 미주 눈에 선겸이 괜찮지 않았던 것처럼.


미주가 후배를 도운 건 선겸을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바라는 모습대로 도운건 아니다. 후배가 운동을 그만둘 것을 알았지만 선겸을 위해 거르지 않고 통역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선겸에서 말하지 않았다. 속인 게 아니다. 진짜로 선겸에게 필요한 것, 당신을 걱정하고 있는 이 마음들을 전하기 위한 과정이었을 뿐.


덕분에 선겸은 태어나 처음으로 위로를 받았다. 그가 이건 위로라고 알아서 다행이다.

여주들끼리 친해지면 재미나겠다 싶은 드라마가 있다. 가령 검블유의 타미와 차현. 친해질 건 아는데 알면서도 응원하게 되는 우정이 있지. 세상 세련되고 당당한 그녀들에게 없는 거 하나 꼽으라면 우정인 경우가 많아서. 사랑도 좋고 성공도 좋은데 친구 하나 없으면 인생 참 외로워 보이니까.


이 둘도 어쩐지 친해질 거라고 생각은 했다만, 단아가 이렇게 직진할 거라곤 생각 못 했네요. 얼핏 보면 단아가 어디 아파 보이는데, 그래서 뭔가 재고 따지고 하기보다 좋은 건 표현하고 갖고 싶은 건 가져야 하는 건가 싶기도. 정말 이 집 티키타카 장난 없어 좋아. 아주 찰져. 찹쌀떡처럼. 역시 대사 맛집. 떡집.

미주가 졌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자극하는 단아는 고단수고 진심으로 넘어간 미주는 귀엽고. 가운데 선겸은 소듕하지


#그래서_저_커피집_도대체_어딘가요 #꿀달달한_꿀맛집인듯

한국 드라마의 8할은 로맨스다. 주인공이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통해 대리 설렘을 느끼게 하고 '사랑'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하지만 가끔은 그것 말고 다른 메시지가 담겨있음을 느낀다. 검블유를 보면서는 일에 관한 자세에 대해 생각해봤고 런 온에서는 감정 표출의 방향성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생각의 시작은 단아였다. 그녀는 선겸의 아버지가 그를 통제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했다. 자신이 하지 않을 일일 뿐만 아니라 원하지 않았던 개입에 의해 망처진 상황을 수습해야 함에 화가 났다. 그럼 대개 자신보다 약한 사람이나 만만해 보이는 사람에게 화를 쏟는다. 이런 경우 기선겸이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는 단아 회사의 관리 선수이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단아는 선겸의 아버지가 다가 오는 것을 보고 화를 내야 할 사람이 온다고 말했다. 그리고 모두가 어려워하는 4선 의원에게 단 한 번도 지지 않고, 하고자 하는 말을 다 쏟아 놓는다.


단아만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미주는 단아보다 한 수 위였다. 미주는 선겸에게 선비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독야청청한 그가 모범적이나 그래서 그렇지 못 한 이들에겐 미움을 받는 모습을 보며 놀리려는 듯 붙인 별명이다. 실제로도 사람들은 선겸을 어렵고 불편해했다. 그는 돈과 권력 나름의 명예도 있으면서 자랑하지 않았다. 휘둘리지 않았고 불의한 것에 목소리를 냈다. 투명한 거울 앞에선 기분은 사실 그렇게 좋지 않다. 내가 모르던 결점까지 드러내기에.


하지만 그건 선겸의 잘못이 아니다. 부족한 내 문제다. 그러니 그에게 화를 낼 것도, 그를 미워할 일도 아니다. 이에 대해 미주는 앞서 선겸에게 사람들이 '단단하지 못해' 그런 거라고 말했다. 그렇기에 미주에게 선겸의 흉을 보는 단아를 그녀는 가만 넘어가지 않는다. 또 순순히 받아들이는 단아를 보면서 역시나 두 사람이 닮았고, 비슷한 태도를 반복해서 보여주는 건 작가의 평소 생각이자 시청자에게 하고 싶은 말인 게 아닌가 생각했다.


아니면 지금 내가 고민하고 있는 부분일지도 :) 아무튼 검블유에서 차현 님이 '기분이 태도가 되면 안 되지'라고 말한 것만큼 삶에서 살아내고 싶은 태도다.


실력 좋고, 장래 유망한 이제 스무 살 밖에 안된 어린 선수가 그간 폭행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외신에 전했다. 그 뒤 사건은 일파만파 커져 국내 여론이 들끓었다. 그런데도 연맹은 여전히 사건의 분위기를 모른다. 인심 쓰는 척 기선수에게 6개월 활동 정지를 주며 복귀할 기회를 주었다고 말하고, 폭행당한 어린 선수는 내부고발자가 낙인찍었다.


아이가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 말해야 할 곳에 먼저 말하지 못하고, 낯설고 모르는 사람에게 가서 하소연을 한 건데 역할을 다 하지 못 한 자신들의 책임은 쏙 빼놓고 사건의 당사자들에게만 책임을 묻는다.


결국 귀한 선수 둘을 잃었다. 미래까지 생각하면 능력 있는 지도자까지도 잃은 셈이다. 어두운 회의실에서 자기들끼리 앉아 이야기하는 모습이 한없이 답답했다. 그런데 저런 분위기 속에 살아오던 기선 겸은 오죽했으랴.


다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행동하는 걸 보니 기선수가 이제 더는 참고만 있는 것 같지 않아서 그건 좀 속 후련했네. 하 준영이 다음으로 응원하고 싶은 남주야.

'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은 건물로서의 집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편안하고 따뜻한 대화가 있고, 자유와 구속이 적당히 조화된 가정으로서의 집이었다.' #모래알만한진실이라도 #박완서


이 문장을 읽는데 선겸이 생각났다. 4선 국회의원의 아들, 칸의 여인을 엄마로 둔, 세계 랭킹 1위의 골프 여제가 누나인 기선겸인데, 그를 수식하는 모든 말은 가족인데 박완서 작가에 따르면 기선겸은 집도 가족도 없다. 매일 혼자 밥을 먹었다. 그게 당연하고 익숙했다. 식구의 식이 밥을 뜻하는 걸 떠올리면 정말이지 선겸은 혼자다.


혼자 밥을 먹을 땐 모른다. 이게 맛있는 음식인지, 내가 지금 밥을 먹고 있는건지. 그래서 빨리 먹고 과하게 먹고 그런다고 한다. 나쁜 식습관 중 하나를 착실히 따르게 된다.


그러다 누군가 밥을 같이 먹게 되면 알게 된다. 상대의 웃음이, 말소리가 반찬이 되어 식은 밥에 물을 말아먹어도 맛있다는 걸. 빈 공기가 따뜻하게 채워질 때 그 느낌이, 내가 외로운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다. 기선수가 이제야 알았다. 본인이 외로운 사람이었다는 걸, 그리고 수많은 사랑 중에 자신을 향한 사랑이 자신 포함 단 한 사람도 없었다는 걸.


그래서 미주네 집으로 간다. 처음으로 술을 먹고 기분이 나아진 건 술이 아니라 다음 날 미주 집에서 다 같이 갈비탕을 먹었기 때문이었을지 모르니까. 행복해지고 싶어, 자신을 사랑하고 싶을 때 어디론가 향할 곳이 생긴 기선겸은 행복에 한 발자국 가까이 다가간 거라는 걸, 그는 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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