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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보 Jan 20. 2021

런 온 : 대사 편 4

내가 많이 쓰는 표현 중 '그냥'이 있다. (요즘은 '아무튼'인 것 같지만) 좋아한다. '그냥'이라는 부사를. 모든 것에 대답이 되어주는 신비한 단어다.

대답하기 귀찮을 때 주로 사용하지만, 그런 틈 사이로 진심을 숨길 때도 적절히 사용한다. 귀찮은 듯하면서. 그건 어쩌면 말로 다 설명하기엔 벅차니까 그런 거라 생각했는데, 그냥... 내 마음이 상대에게 부담이 되지 않았음 하는 마음이었겠구나. 미주 대사에 이 부사를 그간 왜 선호해왔는지 알게 되었다.

'그냥' 무심한 듯 사려 깊은, 츤데레 부사였네.

미주와 함께 살게 되면서 보니 그녀는 낮과 밤이 바뀌어 있었다. 자야 하는 낮에 스케줄이 생기면 하루를 꼴딱 세야 했다. 밥은 대충 야채 주스나 시리얼로 때우고 생명 유지는 각종 영양제로 대체했다.


귀여워. 잔소리인 줄 알았지만 사실 걱정이었고. 함께 지내면서 생긴 걱정을 저렇게 예쁘게 전하는 법은, 기선수 어디서 배운 건지. 함부로 방에 들어가지 않고 주인님(?) 허락을 구하던 그 멍뭉미까지 포함해서 전 국민 필수과목으로 수강시켜야 할 듯.

선겸이 시골 학교 육상부를 위해 자신이 존경하던 코치님을 모시러 갔다. 자리는 선겸이 깔았을지 모르지만 그곳에서 재주를 부리고 선생님을 시골 학교까지 나올 수 있게 자리를 만든 건 미주다. 눈짓 두어 번에 서로의 말을 읽는 선겸과 미주를 보면 괜히 뿌듯했다.


그리고 두 사람의 호흡은 술에 취해있어도 이렇게나 좋다. 쿵! 하니 짝! 하듯, 미주 마음에 답하는 선겸. 춥지 않은 계절감에 어디선가 귀뚜라미와 개구리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정겨운 시골 풍경에서의 고백이라. 주책없이 설레고 말았다.

치운 기억만 없는 게 아니라, 선겸이의 대답은 아예 못 들은 건가... 미주가 이렇게 안 쓰러울수가... 서운해하는 선겸은 또 어찌 저리 귀여운지.

기억을 못 하는 미주에게 선겸은 어젯밤 자신이 했던 감사 인사를 다시 한번 한다. 무뚝뚝해 보이지만 선겸은 결코 표현에 인색하지 않다. 본받을 점이 참 많은 그다. 인사를 받은 미주는 코치님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무래도 미주는 내내 코치님이 마음에 걸렸던 것 같다. 미주를 통해 코치님 마음이 어떠했을까, 그분이 홀로 보내온 시간은 또 어땠을까 생각해보게 된 선겸의 표정은 조금 놀란 듯했고, 이내 깊어진 듯 보였다. 

미주 직업은 번역가다. 가끔 통역도 하지만 대게는 같은 장면을 여러 번 반복해 보면서 가장 매끄러운 문장을 만드는 일을 한다. 같은 장면이지만 여러 번 보다 보면 스쳐 지나갔을 땐 보이지 않았던 많은 이야기가 숨겨져 있음을 본다. 인물에 대해 여러 번 생각하게 되면 서다. 그래서 미주는 선겸의 노력을 알아차렸고 코치님의 외로움을 보았다. 그런 시선을 가진 미주를 통해 선겸이 세상을 배워나간다는 건 참 감사한 일이라 생각한다.


단아 언니, 자기 사람 칼 같이 지키는가 너무 좋아. 정말 재벌이라 다행이야. 아님 망나니.. (입조심) 뭐든 다 잘했겠지 암요 언니인데요 �

예전에 눈썹 미는 칼 뚜껑을 열다가 손가락을 심하게 베인적 있다. 그 뒤로는 뚜껑 말고 접이식 제품을 사용 중이다. 한동안은 눈썹 미는 칼만 봐도 소름이 돋았다.


아픔은 방어를 형성하게 한다. 선겸도 그동안 '이용'당하면서 제 나름의 방어막을 만들었다. 포기, 이용당하게 자신을 내버려둠으로 말이다.


하지만 눈썹 미는 칼에도 뚜껑 말고 접이식이 있듯 '이용'도 다른 모양이 있었다. 영화가 부정적인 의도로 생각해온 ‘이용’을 밝게 드러내자 투명해졌고, 애정 표현의 하나가 되었다. 밝고 당차고 당당하고 주눅 들지 않고 태양 같은 친구다. 덕분에 선겸은 이제껏 자신이 당한 '이용'에 대해 다른 면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자전거를 타면서 영화가 등장할 때 깔리는 청량한 음악에 사실 웃었다. 보통 저런 음악은 사랑하는 사람을 우연히 만났을 때 멋지게 등장하는 주인공에게 깔아주는 게 아닌가 해서였는데 아 두 사람 :) 그렇게 다정한 우정이 되겠구나 ㅎㅎ 그러고 보면 영화는 모든 순간 자신이 주인공인 사람이구나도 싶네. 그의 밝고 당당함이 멋졌다 �


미주를 통해 세상의 다른 면을 보고, 소통하는 언어를 배운다면 영화를 통해서는 자신을 사랑하며 중요시 여기는 것을 배웠으면 좋겠다. 다만 그 과정이 애쓰는 노력이 아니라 닮고 싶은 마음의 자연스러움이길 바라면서 말이다. 

통번역 사인 미주에게 선겸의 언어는 2시간짜리 외화 영화보다 어렵다. 그건 아마도 그녀가 문장을 직역하는 게 아닌 말하는 이의 목적, 의도 때로는 화자의 성향까지 파악해서 전달하는 직업을 갖고 있기 때문이겠다. 그렇게 선겸을 이해하기 위해 그의 언어를 공부한다. 말과 말 사이의 다리를 만들어 ‘런 온’, 그에게로 달려가는 미주를 선겸은 느리지만 정직한 걸음으로 마중 나온다. 아직 완벽하게 그녀의 말을 다 이해하지 못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선겸은 성실히 노력함으로 그녀에게 화답한다. 서로의 언어를 익혀나가며 알아가는 과정이 너무나 설렌다 ◡̈

선겸애비... 정말로 선겸을 조금이라도 생각하는 마음이 있는 걸까...


젊은 세대 민심을 잡기 위해 '자만추'같은 신조어도 공부하고, 인터넷도 하면서 왜 가족 마음 잡기 위한 노력은 하지 않는 걸까. 가족은 당연히 내 편이라고 생각하는 건 사실 큰 함정인데... 당연한 것 중에 사실 당연한 건 없다는 걸 알지 못 함에서 생긴 함정. #런온의유일한빌런


덕분에 우리 선겸이가 하고 싶은 게 생겼네요. 가자 미주 네로 

옷 챙기러 간 집에 어쩐 일로 선겸애비가 있어서 선겸 속을 다 뒤집어 놨다. 차라리 아무도 없어 외로운 집이 나았을지도. 택시를 타고 가다 집 근처에서 미주를 보고 서둘러 내린다. 그리고 달려와 그녀와 나란히 발을 맞춘다. 일부로 발을 바꿔서까지 그녀와 함께 걷는다. 다시 한번 <런 온>이라는 드라마의 제목이 떠오른다. 전에 없던 능글미를 장착하고 자신은 '우리 집'가는 길이라고 소개한다. 우리 집이라니, 엄밀히 말하면 미주네 집인데.


'함께'라는 말을 거리두기를 했던 작년에 유독 많이 썼다. 사실 우린 함께 있지 못했다. 선 겸이 말한 '우리'집이 미주의 집인 것처럼. 하지만 '함께'라는 말과 '우리'라는 말은 그렇게 선을 그어 사용할 말은 아니라는 걸 느꼈다. 멀리 있을수록, 어쩌면 나와 너일수록 우리는, 우리라 말하며 감정과 대상을 함께 한다. 참 신비한 단어다. 두 사람의 선이 조금씩 허물어 가는 기분 좋음을 느끼게 해주는 장면이었고.

 드라마에 애정을 쏟아붓게 된 건 아무렴 대사다. 내 취향은 단연코 대사다. 티키타카도 좋고 극의 분위기도 좋다. 이만해도 이미 취향저격인데, 이 드라마는 단어 선정마저 신중하다. 뒤에 나오는 선겸과 미주의 첫 다툼 ◡̈ 장면에서는 '권리'라는 단어를 가지고 부정적인 느낌이 든다며 다른 표현이 없겠냐고 직접적으로 말할 정도다.


그리고 이 대사에서 '땔감'이라는, 이 표현에 나는 반했다. 당신의 동기는 무엇인가요. 무엇을 근원으로 열심을 내나요. 이런 질문을 '땔감'이라 표현했다. 익숙한 개념을 다른 말로 표현하는 건 쉽지 않다. 유연한 사고와 창의력, 창조력을 가진 작가를 보면 욕심나게 부럽다. 그리고 이렇게 다른 표현은 뻔한 생각마저 달리할 수 있게 만든다. 그래서 요즘 이런 시선을 가진 작가의 책들을 찾아 읽는 듯하다.(사실 대게 모든 작가님들이 갖고 있는 능력이겠지만 ◡̈ )


나의 땔감은 미주 쪽에 가깝다. 데드라인의 압박, 책임감, 부담 등. 부정적인 땔감은 상상해보건대 태우지 말아야 할 물건을 태웠을 때 나는 좋지 못한 냄새가 날 것 같다. 이런 것을 땔감으로 하면 과정이 힘들다는 의미다.


반면 미주가 말한 빛나는 순간들에 대한 미련, 미련을 값지게 쓰는 경우에는 자작나무가 타듯 좋은 소리와 향이 날 듯 싶다.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도 즐거웠으면 한다. 대부분 과정은 버티거니 치이거나 구르거나 다치는 경우가 흔하니까. 그리고 나는 미련에 대해 안 좋은 기억뿐이었는데 값진 땔감이 될 수 있구나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니까 선겸씨 잘해봐요. 나도 좋은 영향 좀 받게. 이렇게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는걸, 그래서 더 나은 사람이 되게 하는 걸, 나는 사랑이라 부른다.

선겸이 문 앞에서 '빼곰'하는 거 진심 귀엽다. 그리고 미주랑 놀고 싶어서, 놀아준다고 해서 이 집에 온 건데 다시금 혼자된다는 사실에 선겸의 시무룩도 미안한데 너무 귀엽다. 미주를 보면 놀리고 싶어 하는 단아 심정이 이해 안 되는 것도 아니네.


그리고 이런 상황에 저런 표현도 참 귀엽다. 선겸의 버려진 강아지 같은 표정에 미주는 따끔했고, 왜 따끔했는지 모르지만 혹시 말이 뾰족하게 한 거 아니냐고 묻는 표현이 참 귀엽다.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기도 하고, 극단적이지만 칼부림이 나기도 한다. 하지만 미주처럼 말한다면 싸울 틈이 없다. 물론 선겸은 시무룩하게 나가버렸지만 :)


말 예쁘게 하는 사람 보면 반하는데, 미주의 어휘력에 새삼 반한다. 그녀가 번역하는(물론 극 중에서 한 거지만) 영화까지 보고 싶을 정도로.


런 온, 같은 한국말을 쓰면서도 소통이 어려운 시대, 서로 다른 세계에 살던 사람들이 각자의 언어로 소통하고 관계를 맺으며, 사랑을 향해 '런 온'하는 로맨스 드라마라는 드라마 설명이 아주 찰떡이다. 두 사람만의 언어로 다리를 만들어 서로에게 다가가고 있는 중. 그리고 나도 런 온을 향해 달려가는 중

보는 내내 슬펐네. 그렇게 좋은 집이 있으면서도 갈 데가 없다니. 집 앞에 저렇게 버려진 선겸강아지가 있음 주워와서 다음 날 사 표 내고 집에만 있을 것 같아. 그래서 내가 강아지도, 고양이도 못 키워................. (정신 차려)


집은 아무래도 다투기도 하고 그러다 다시 밥상 앞에 모여 앉아 반찬 집어주고 그런 공기가 돌아야 집이지. 그래서 잠시 미주의 집이 그에게 돌아갈 곳으로써의 집이 되었지만 그곳이 온전히 자신의 공간이라 생각하지 않은 선겸은 떠날 생각을 한다. 미주랑 동거인이 집을 비운 다고 하니까. 그럴 거면서 왜 '우리'집이라고 한 거니. 휴.. 갈 길 먼 우리 선겸이. 그래도 영화가 친구 해줘서 다행이다. 선겸 인생에 다행히 많아 다행이고 우리 집도 있고....


#그럼우리집으로와_2PM_우리집 #준호랑같이와 #다시시작되는주접본능


흡사 부부싸움 �


드라마에서 이런 상황 본 적 있다. 누구와 함께 살아보지 않았던 주인공이 밤새 언락이 안되고, 그렇게 걱정하게 하고 돌아와서 '제가 이제껏 누구랑 살아본 적이 없어서'라고 말하면 상대역은 그 사람이 안쓰러워 말을 잇지 못했다. 그래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었구나, 무슨 드라마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그의 과거를 이해하는 장면으로 쓰였던 기억만이 어렴풋이 난다.


하지만 미주의 대답은 역시나 날카롭다. 선 겸이 미주가 집을 비운다고 말하자 떠날 마음을 가졌던 건 이 곳이 자신이 잠시 거하는 곳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선겸은 정말로 연락해야 함을 인식하지 못했던 거지만 그 속에 미주가 말한 생각이 아예 없던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그냥 이해하면 미주가 아닌 것도 같다. 감정을 뒤에 남겨 놓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딱! 말하는 미주, 하 나도 그녀처럼 할 말을 딱! 하고 할 말만 할 수 있었으면..(언니 제 국어 선생님이 되어주세요)


다투는 상황에서도 선 겸은 공격하려 했던 거 아니라며, 날 세우지 말라고 말하고, '권리'라는 부정적인 느낌의 단어 말고 다른 말은 없을지 라고 말한다. 열 받는 순간 내 앞에 사람이 선겸처럼 말하면 답답할 것 같은데 반면 화가 삭힐 것도 같다. 이런 상황에서도 앞사람의 감정을 배려하다니.


무튼 결국 미주는 말하기 싫었던, 그러니까 자존심 때문에 감추고 싶던 말까지 하게 된다. 사실 이건 고백이나 다름없는데 선겸이 알아듣질 못하고 따라오지 말라니까 정말로 안 따라가는 선겸을 보면서, 미주를 응원하게 되네. 우리 미주 화이팅.


#기선수_이럴때_미주따라가라고_달리기한다아니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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