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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보 Feb 16. 2021

런온 : 대사 편 7

매이 언니 너무 좋아 ㅠ

기선겸 신경 쓰여서 소파에 버려진 것처럼 있자 시장도 보고 요리 보조고 시켜준다고 불러일으킬 때, 어쩐지 두 사람의 첫 만남도 이러지 않았을까 상상됐다. 매이 언니 만나 바뀐 삶이라고 했으니까, 갖고 있던 무게를 털고 일어나 별거 아닌 일상을 살게 하는 매이 언니의 부르심 ◡̈


정말 사랑 앞엔 자주 찌질해지는 듯하다. 특히 용기 없는 날 보면... 그래서 사랑에 관한 명언 중 용기 있는 자로 시작하는 말이 있는 건가. 그래 고백해야 뭐든 시작이 되지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길을 찾아가는 이야기는 사랑 이야기만큼 자주 등장한다. 다만 주의 깊게 다뤄진다는 느낌은 적었다. 사랑이야기에 곁들이는 정도?


하지만 최근 본 #브람스를좋아하세요 나 #스타트업 에서 보여준 주인공의 모습은 달랐다. 오래 해온 일이더라도, 미련이 남았어도 새로운 시작이 있었다. 완전히 괜찮아져서, 훌훌 털어버리는 그런 쿨한 모습을 억지로 보여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완벽히 새로운 일에 성공한 모습도 보여주지 않았다. 그저 과거의 자신을 소중히 여기며 새롭게 시작한 일을 묵묵히 해나가는 모습을 통해 삶을 진지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래서 이 드라마에 나는 #청춘성장물 이라는 장르명을 붙여봤었다.


<런온>에서는 선겸의 성장이 담긴다. 이제껏 가족을 위해 노력한 선겸이 좋아하던 육상을 포기하면서 잠시 쉬는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자신과 같은 시간을 보내는 후배를 보며 그는 그동안 자신이 누려온 에이전시가 어떤 일을 했는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


그래도 선겸은 뛸 만큼 뛰었다. 만년 2등이었지만 앞으로 더 뛸 수 있는 시간이 사실 있다는 미련은 남아있지만 그것을 땔감으로 사용해보라는 미주의 말이 그에게 새로운 영역의 문을 열어주었다.


단아와의 대화 후 선겸은 도서관을 찾아 스포츠 관련 도서를 빌린다. 앞서 친구와의 대화에서 우식이 걷는 길에 모든 돌부리를 치워주고 싶다고 했다. 사실 그래서 나는 그가 단아한테 부탁할 줄 알았다. 우식이를 스폰해달라고. 난 정말 일차원적으로 의존적 인간인가 보다. 하지만 선겸은 그렇게 하는 대신 우식이를 그가 부상당하기 전보다 더 뛰어난 선수로 만들 생각을 했다. 이 일은 우식이를 책임지려는 마음이 아닌 선겸 본인이 원해서 하는 일로 다가왔다. 미주가 말한 '미련'이라는 '땔감'을 사용할 사용처를 찾은 듯 보였다. 아, 이렇게 쓸 수 있구나.


선수만 생각하는 기선겸을 단아는 좀 싫어해도 정말 좋은 에이전트, 스카우터가 될 거라고 한 이사님의 말이 마치 예언처럼 이뤄질 것 같다. 설레는 사랑이야기 속에 피어나는 청춘 성장이라. 이 또한 가슴이 두근두근해진다.

나는 선겸이 담백한 사람이라는 게 좋다. 꾸미지 않는 담백함은 억지로 나를 포장하려는 나를 부끄럽게 한다. 선겸의 고백은 사실 직구, 직진인데 강한 느낌이 없다. 혼자 많이 미주가 한 말을 되짚어 보지 않았나, 지난밤 선 겸이 어땠을지 그려졌다. 상대를 생각하지만 자신을 해치지 않는 선겸의 올바름이 묻어난 고백이다. 잔잔한 파도인데 마음에 있던 모든 단단한 바위가 한순간에 부서졌다.


사실 이 뒤에 이어진 계속 좋아할 거라는 대답도, 그 뒤 서로 보며 수줍고 부끄럽게 웃던 모습도 다 좋았는데... 담아낼 수가 없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감성도 그랬는데, 그러니 여러분 영상 꼭 보세요. 아직도 런온 안 보시는 분 계시면 이 장면 주면서 영업하시고요. 모두의 영업을 응원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리말 놓기로 한 거야? 그럴까? 아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선 제대로 긋는 선 겸이 그래 놓고 미주 걱정하는 거 보는데 아웃사이더인 줄(아... 아웃사이더... 아시나? ◡̈ ) 이제 만나고 싶을 때 집 그냥 놀이터를 찾아가면 되고, 핑계는 보고 싶다는 게 되는 그런 사이가 되었네

단아는 마음이 심란할 때, 답답할 때면 단골 술집을 찾았다. 그곳은 어제 자로 태웅이가 알아버렸지만, 아무튼 단아만의 공간이었다. 그녀는 그곳에서 술을 마시긴 했지만 그 보단 책을 읽었다. 자신의 책장엔 꽂아 놓을 수 없다는, 그곳에서 읽는 책은 남들에겐 감추고 싶은 단아였던 것 같다. 사실 그녀는 몸이 약하다. 그리고 그녀의 세계에서는 어떤 종류의 약함도 있어선 안됐다. 친구가 필요한 날에도 혼자서 책을 읽은 건, 책은 많은 이야기를 들어주지만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단아가 미주를 찾아간다. 자신이 약한 모습을 보여도 동정하지 않을, 약점으로 삼지 않을, 가진 것 없고 뒷배도 없는데도 무릎도 꿇지 않는 미주를 찾아간다. 역시나 단아는 미주에게 아낌없이 직설적 조언을 아끼지 않았고, 단아가 부담스럽지 않게 적절히 무시하며 선겸과 카톡하는, 동상이몽 장면이 재미있었다. 검블유에서 타미와 차현이 어쩌다 같이 술을 먹고, 타미 집에서 자던 장면이 생각났다.


"힘들었다 성취감에 짜릿했다, 이런 게 다 삶이겠지. 맞아 삶은 징그럽게 성실하고 게으른 난 뭘 어떻게 할 수가 없죠."

이런 케미도 언제든 환영 ◡̈


미주를 번역가로 만든 문장이 있다.

'우리가 넘어지는 건 일어나는 걸 배우기 위함이다.' #배트맨비긴즈

넘어져 있는 우식에게 선겸이 손을 내밀었다. 오늘은 우선 일어나는 것부터 해보자고.


우식이 선겸을 보자마자 도망친 건 그에게 자신이 숨긴 마음이 들킬 것 같아서였다. 꽁꽁 숨긴 마음이 들키면 그동안 애써서 해맑고 괜찮게 살아왔던걸 다신 할 수 없을 것 같으니까.


하지만 선겸이 그런 걸 할 필요 없게 만들어주었다. 억지로 숨기는 거 말고 밝히 드러내어 너의 땔감으로 삼으라고, 자신을 믿지 못하겠으면 너를 믿어주는 나를 먼저 믿어 그 자리에서 일어나라는 선겸의 손이 정말이지 믿음직스러웠다.


그가 누군가의 아들이라서 상품성 있는 연관 검색어를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언제가 그랬듯 정직하게 말하고 생각하는 재미없고 불편한 사람이라서, 한 없이 믿음이 가고야 말았다. 앞으로 두 사람이 함께 달릴 그 트랙이 미주와 이어진 다리만큼 아름다울게 분명하니까.


일기에 대한 좋아하는 표현 중 하나는 드라마 <#날씨가좋으면찾아가겠어요 >에 나온 "오늘의 부피"다. 은섭은 굿나잇 서점을 차린 뒤 매일 비공개 글을 올렸다. 일상 틈틈이 아이린, 그녀에 대한 생각이 담기던 그 글은 연애편지나 다름없었다. 붙이지 못했지만.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북 현리로 내려온다. 그 날부터 은섭이의 "오늘의 부피"는 이전과 다른 무게를 갖는다.


지금 읽고 있는 책 제목 <#밤은이야기하기좋은시간이니까요 >

역시 드라마에 나온 문장이다. 이도우 작가의 산문집에는 그가 쓴 책들의 뒷 이야기가 담겨있다. 이 책에서 또 한 번 "오늘의 부피"에 관한 글들을 읽었다.


"우리가 그해 즐겨 들었던 015B 음반엔 [5월 12일]이란 노래도 있었다. '그 시절엔 우린 몰랐었지. 이렇게 그리운 기억 가질 줄.' 같은 노랫말이 흘러나오던. 그러게, 그땐 정말 몰랐었다. 시간이 흘러 또 다른 5월 12일의 부피가 쌓이는 어느 날, 세상에 태어난 내 아이와 만나게 되리라는 것도."


지금까지 미주에게 일기란 자기반성을 하게 하는 고해성사에 가까웠다. 그래서 자신이 선겸에게 전한 문장에 이렇게 사과를 한 건가, 사실 나는 이런 글쓰기 과정을 좋아한다. 하지만 내가 은섭을 통해 일기 쓰는 일이 얼마나 낭만적인 일인이 알게 된 것처럼 선겸과 함께한 매일이 기록될 미주의 일기는 한 편의 연애물이 될 것이다. 미안함만 남지 않고 고마움과 사랑이 남을 것이다. 그리고 선겸의 일기장은 얼마만큼 자랐나 벽에 그어 놓던  흔적이 되겠지.


분주한 하루를 마무리하는 두 사람의 밤 산책이 "오늘의 부피"를 늘린다. 역시 글 쓰는 일은 낭만적이야. 두 사람의 대화는 참 너무나 낭만적이야.


중의적 표현 ◡̈ 그림을 그리는 영화의 시선으로만 볼 수 있는 세계를 미주는 미주가 이해할 수 있는 선으로 대화를 시작한다.


거리두기가 숙제였다는 건, 그려야 할 그림과의 거리를 말하는 거였지만 영화 특유의 친화력을 염두하게 된다. 그 상황이 싫어서 망친 건 그림이지만 결과적으로 단아와의 관계도 망친 것 같다고 말하는 영화의 말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설명하면서 동시에 단아에 대한 그의 감정도 풀어냈다. 이런 중의적 표현이 말로 상황 정리하는 연출임에도 지루하지 않게 만든다.


미주는 통번역 가다. 말을 다루다 보니 아무래도 직접적 표현을 한다면 그림을 그리는 영화는 간접적, 은유적에 강하다. 다른 직업군을 만나면 눈이 반짝여지는 건 나와 같은 세상을 살면서도 보는 시선이 다르기에 해석도 다르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서로를 알아간다는 건 상대를 알아가는 방법 중 참으로 매력적인 방법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나에 대해 이야기하다 사랑하는 이에게로 닿는, 일련의 모든 과정이 아름답다.


이런 성숙하고 친밀한 대화를 언제쯤 할 수 있는 인간이 될지� 우선 주제 파악부터 잘해봐야지.

단아 한방 제대로 맞음....

이렇게 하라고 미주가 말한 것 같지 않지만 결과적으로 영화의 반응에 단아의 고민 시작. 무시보단 고민이라는 점에서 본격적인 단아의 달리기가 시작되었다고 생각한 장면 ◡̈

#고민_나도하고싶다 #내일뭐먹지그런고민말고

중고거래에 비유했지만 우식이에게 필요도 없는 걸 안고 있지 말라고 말한 것 같다. 혹여 제주도에서 있었던 일로 마음이 아직 무겁지 않을까, 그 일은 이제 우식이에게 필요 없는 일이고, 감정이라고 둘러 전한 위로가 아니었을까 했다.

미주는 선겸에게도 ‘땔감’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런 거 의식하지 않고 살 수도 있지만 운동선수는 목표를 두는 사람들이니까, 선겸에게도 우식이에게 ‘필요한’ 좋은 목표가 동기로 있음 해서 꺼낸 대화가 아니었을까.

우식이도 육상 기대주답게 앞만 보며 뛰었다. 그런데 뒤를 보니 많은 후배가 자신을 목표로 뛰고 있었다. 선겸의 달라기에 우식이가 있었듯, 이제 우식이도 그런 사람이 되었다. 더 커진 부담일지 모르지만 성실하고 우직한 우식이는 그렇기에 새롭게 뛸 수 있을 것 같다. 이전 기량보다 더 좋아진 기량으로.

 한마디는 천냥 빚만 아니라 사람의 인생을 변화시킬  있다. 역시나.

나도 미주의 과거가 궁금했다. 정확히는 그녀가 가진 사연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그녀처럼 당당하고 배려하는 자세로 살 수 있는지, 어떻게 살아왔기에 이런 마인드를 가질 수 있었는지 궁금했다. 미주의 과거를 묻는 단아도 나와 같이 마음이지 않았을까. 많이 갖고 있어 보이지만 언제든 빼앗길 수 있는 단아는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은 상태이기도 했으니까.


없어도 움츠러들지 않는 방법을 안다면 빼앗길 때마다 마음 다치고, 좌절하지 않을 수 있겠다. 그녀는 태생이 공격수인데 지켜야 하는 수비수로 사는 게 버거워 보인다. 단아도 선겸과 은비 못지않게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고 사는 사람이었으니까. 술도 밤늦게 나가 몰래 마셔, 진짜 읽고 싶은 책도 약점이 될까 다른 곳에 둬. 나이스 해 보여서 몰랐는데 단아도 자신의 인생 같은 건 없어 보인다. 그런 단아에게 미주가 한 말, 이 악물고 살지 말라는 말. 미주 눈에 단아가 그렇게 보였나 보다. 어쩌면 매이 언니를 만나기 전 미주의 모습이었을지도 모르고.


구구절절 사연을 읊어대지 않아도 미주가 어떻게 살고 어떻게 자랐는지 충분히 전해졌다. 단아를 향한 우정까지도. 버티지 않고 만족하며 사는 것, 그것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대화였다.

이런 대화를 나누고 들어가는 기선겸이 걷는 골목엔 낡은 비디오 가게 간판 아래 운영 중인 네일숍이 스친다. 비디오, 잊혀 사라져 버린 존재.


이 대사를 듣고 한 주간 계속 '잊힘'과 '기억됨'이 생각났다. 그러다 떠오른 드라마 <도깨비-쓸쓸하고 찬란하神>. 도깨비 김신은 도깨비, 김신이 '무(無)'로 돌아갔다. 아무도 없는 황량한 사막을 종일 걷고 걷는, 무의 세계. 그곳에서 나온 김신에게 나중에 은탁이 물었다. '무(無)' 돌아간다는 건 무슨 의미냐고. 김신은 잊히는 것이라 말했다.


사실 그곳에서 김신이 나올 수 있었던 은탁이 그와 한 약속 때문이다. 비록 은탁이 그와의 약속을 기억하고 첫눈 오는 날 촛불은 분 건 아니었지만, 그 약속 덕에 은탁이 그를 기억하지 못함에도 김신이 이 세계로 돌아올 수 있었다. 만약 이런 약속을 하지 않았다면 은탁의 기억 속에서 잊힌 김신은 영영 무의 세계에 갇혀 사라져 버렸을 것이다.


잊힌다는 건 결국 사라진다는 의미다. 필요하지 않아서, 자주 찾지 않아서 사라진다. 직업도 운동 종목도. 누군가를 향한 고마운 마음, 미안한 마음도 당연시하다 보면 사라지지 않을까. 은탁과 김신의 약속이 서로에게 다시 돌아오게 한 것처럼, 미주와 선겸의 잊히지 않겠다, 사라지지 않겠다고 한 약속이 서로에게 다시 돌아오게 할 거라고 믿는다.


"고맙습니다. 그대는 내 인생에서 잠시나마 내가 참으로 그 누군가에게 무엇이 된 듯한 느낌이 들게 해 주었습니다." #누군가에게잊혀지지않는무엇이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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