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겸이 일취월장 �
중간중간 설렘 지수 급 상승 �
솔직히 쓰라는 말에 아침에 써 놓은 어제 일기 마지막에 문장이 하나 추가됐다. '무서웠다.'
선겸은 유명한 아버지 때문에 행동을 조심해야 했다. 안 그래도 배려하는 선겸은 많은 걸 참아왔는데 "사람들 보는데"라는 말 앞에 멈춰서는 극장에서의 선겸과 선겸 어머니를 보면서 가족의 감정이 갇혀 살아왔단 생각이 굳게 들었다.
일기는 누군가에게 안 보여주고 혼자 쓰는 거라는 지극히 평범한 사실마저도, 남들의 시선 속에 살아온 선겸에게 낯설었을지 모른다. 아무도 볼 수 없는 공간이 생기자 선겸이 조심스럽게 꺼내 놓은 건 '감정'이었다. 그리고 그 감정은 미주가 아파서 두려웠다는, 사랑의 다른 감정으로 전해졌다.
미주랑 있으면 오글거리는 말도 아무렇지 않게 하고, 놀라는 표정도, 안쓰러운 멍뭉미도 발산한다. 미주가 편한가 보다.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 다양한 감정을 그에게 보인다면 그녀가 그의 일기장인 셈일지도.
미안한 말이지만, 선겸이 한 번은 울었으면 좋겠다. 그것마저 미주 앞에서 펑펑 쏟아내고 선겸이 정말 괜찮아지면 좋겠다.
“한두 가지 정도로 이유를 댈 수 있는 건 간단히 설명해주고 끝내지만, 말로 전부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마음이 클 때는 ‘그냥’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던 것 같다. 두 글자 안에 백 가지의 마음이 함축되어 있어야 쓸 수 있을 만큼 ‘그냥’은 꽤 까다로운 단어였다.” #그냥좋으니까좋아 #조유미
미주는 ‘그냥’이란 단어에 담긴 배려를 생각하게 해 줬고 조유미 작가의 글에선 함축된 마음을 느끼게 해 줬다. 나도 언제부턴가 의미를 설명하기 힘들 때 ‘그냥’이란 부사어를 자주 꺼냈다. 이런 이유들로 내가 이 단어를 애정 했구나.
그냥 있죠 옆에.
이 말 왜 이렇게 좋은지. ‘그냥’이라는 단어는 선겸을 닮은 듯하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구나, 이 까다로운 부사어를. 속상할 때 생각해주는 잔소리도 고맙지만, ‘그냥’이 담긴 동조도 사랑스럽네. 하지 말라고 하기보단 이왕 할 거면 속 버리지 말고 너무 다치지 않게, ‘그냥’ 있어주는 거. 선겸표 위로 좋네.
통번역사의 일이 지금까진 꽤나 낭만적으로 보였는데 이런 고충이 있구나, 있겠지.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이 있는 나라인데. 말이 말로 끝나지 않는다는 걸 살아봄으로 알고 있는 미주인데.
하기 싫으면 하지 말라는 말, 미주가 선겸에게 해준 말이다. 물론 남의 인생이니까 쉽고 편하게 그렇게 함부로 말한 건 아니다. 그랬더면 선겸이 이렇게 마음에 품고 있을 리 없었겠지.
다만 가끔 너무 진지한 위로는 하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부담일 테니 선겸은 책임감으로 무거운 미주 마음을 살짝 달래주는 정도로 말을 남긴다. 그 끝자락에 실린 미소에 나는 선겸이 그럴 나이가 아님에도 대견하게 느껴졌고, 욱하긴 하지만 자기 해야 할 일을 버려두고 가지 않는 미주도 대견하게 느껴지고. 두 사람 참 안 닮은 것 같은데 닮았어. 좋은 영향으로 :) 그리고 함께 이름이 올라가는 영화는 평생 추억이 되겠지. 좋네 좋아 �
#갑자기동백이생각나고 ◡̈
대화 가운데 잠시 침묵이 흐른다. 그 순간 선겸의 표정은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 같았는데 이내 짧은 한숨을 쉬고 미주를 바라본다. 지치거나 허탈한 한숨이 아니라 뭔가를 다짐한 듯한 한숨. 내게서 떠나가도 난 괜찮아, 괜찮을 거야 라는 느낌의 체념이 섞인 한숨.
상대가 싫어하는 걸 하지 않는 게 사랑이라던 이기주 작가님의 말처럼 대화 가운데 언어를 고민하고 오해를 줄이려는 미주는 나름 자신의 마음을 보인 듯한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에도 선 겸은 그녀를 향해 걸어오고 있다. 가끔 내 감정이 넘쳐 눈 앞을 가릴 때가 있다.
나는 이처럼 그대가 좋은데 그댄 아니라 하는 것 같아 조바심도 나고 불안하기도 한 미주지만 나는 그래도 말 맵시를 고르고, 어긋날 수 있는 감정을 바로 잡으로 다시 호텔 방에서 나와 용기를 보인 미주가 참 멋있었다. 두 사람의 사랑이 보기만 해도 가슴 따뜻하게 입고리 올라가게 그렇게 만드는 이유이지 않을까.
미주의 모든 말도, 선겸의 모든 말도 고백이다. 당신이 좋다는 말이지만 서로 다른 언어를 쓸 뿐.
단아가 이렇게 착한 사람인데, 사람들이 그걸 몰라줘 �
#아직까지동상이몽 #지구지키미서단아 #북금곰후원문의는그린피스로
"나는 네가 네 눈치를 좀 봤으면 좋겠는데."
이 말을 선겸이 했다는 사실에 놀랐다. 녀석아 너야말로 가족 눈치 말고 네 눈치를 좀 보면 안 되겠냐고 혼잣말을 했다. 하지만 10화 마지막 장면을 보고 나니 아마 이날 선겸은 우식에게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눈치를 보지 않았을까?
충고와 위로는 상대를 위해 하는 말이지만 어떤 말은 그대로 내게 돌아온다. 함께 뛰던 동료였고, 선겸은 우식을 위한 마음으로, 우식은 선겸을 위한 마음으로, 두 사람 다 운동을 그만 둘 각오로 한 행동이니, 나도 몰랐는데 네 고민이 내 고민이었나 보다. 우식을 통해 선겸도 자신의 고민이 객관화되지 않았을까. 나를 찾아가고 있는 시간을 선겸이 조금이라도 먼저 시작했으니까.
위로보다 충고와 조언이 먼저 나오는 참 도움 안 되는 사람이다. 그래서 고민을 말하기도 듣기도 좀 꺼려한다. 하지만 그냥 나누는 것만으로도 슬픔은 반이 되고 기쁨은 배가 된다고 했다. 그런 말은 괜히 살아있어 대를 이어 전해 내려오는게 아니다. 그러니 혼자 있지 말고 말을 해야겠다. 시간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는 일이 눈으로 보인다면 그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일 테니.
이야기를 나누는 이 장면이 그래서인가, 선겸과 우식이 함께 뛰어 서로를 오가는 길이 만들어지는 듯이 보였다.
못났다 못났어. 두 사람 다 못났다. 그런데 너무 귀엽게 못났다. 영화는 그냥 단아랑 그림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뿐이다. 하지만 '이야기를 한다'는 건 곧 그 사람에 대해 알아가는 일이다. 의뢰받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 의뢰인의 취향을 아는 건 필요한 일이지만 영화에겐 그 이상으로 중요해졌다. 잘하고 싶었으니까. 준 기대를 실망시키고 싶지도 않고 그만큼 단아가 좋으니까.
어둠 속에서도 영화의 그림만은 빛난다고 했다. 그림을 보는 안목 좋은 단아에게 영화는 발굴해서 키우고 싶은 작가이기도 했지만 알고 싶은 사람도 됐다.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그림을 그리는 작가라면 단아 속에 있는 어둠에도 빛을 비춰주지 않을까. 물론 이건 내 망상에 가까운 해석이겠지만.
하지만 지금 단아는 비즈니스를 하고 있고 영화는 사랑을 시작했다. 단아는 잘 감출 수 있는 사람이고 영화는 감추는걸 제일 못 하는 사람이다. 이 집도 옆 집만큼 정 반대의 사람들이라 같은 언어를 쓰면서도 못 알아듣고 있다. 한 판 하고 돌아 나오는 장면인데 나는 왠지 사랑의 스타트 선에서 출발한 것처럼 보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