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밤, 심란한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영화 그림이 걸린 카페로 향했다. 분명 그녀가 보고 있는 건 그림이었지만 정말로 보고 있던 건 그 그림 뒤에 놓인 영화였다. 글은 글 쓴 이를 담고 있다. 그래서 좋아하는 저자의 문장은 지은이를 가려 놓아도 단번에 알아차린다. 그림은 잘 모르지만 비슷할 것 같다. 그림에도 그린 사람이 담긴다. 그러니 모네, 피카소가 살아 있어도 영화가 불려 올 수밖에 없다. 모네, 피카소 그림엔 영화가 없으니까. 그림을 보고 어떤 사람이 그렸을까 궁금했고, 그린 이를 보니 그랬구나 싶다가 이내 발걸음이 계속 그 그림 앞으로 향했고 이젠 그에게로 향했다. 단아의 모든 걸음걸이는 영화를 향한 단아의 고백이었을지도.
고백 후 입맞춤 뒤에 눈물 파티가 일어날 줄 상상도 못 했다. 아 ㅋㅋ 이런 전개 신박해
지금 이 순간 단아가 반한게 자신인지, 차갑게 변해버린 자신을 향한 승부욕인지 알 수 없어 우는 영화를 보면서 생각 없이 사는 줄만 알았는데, 이런 상황에도 맥을 정확히 짚는 영민한 친구였다니�
미주가 오지 말라고 하니까 정말로 따라가지 않았던 선겸이나, 논리적이지 않은 감정 충만한 상황을 분석해 놓자 수긍하는 단아라... 절친 맞구나. 내가 울길 바랬던 건 선겸이었는데 폭풍 눈물 흘리는 영화도 좋네. 심신 미약 상태도 나쁘지 않아 :)
사랑하면,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꼭 내가 아닌 것 같다. 평소에 나라면 개의치 않을 일들이 그 사람과 연관되면 다르다. 말 한마디에 서운해지고 표정 하나에도 마음이 다친다. 유치한 타입은 절대 아닌데 사랑에 빠지면 어린애가 된다. 앞, 뒤 생각하지 않는 용감함이 생기고 억지도 부리고. 이랬다 저랬다 하루에도 롤러코스터를 열두 번씩 탄다. 계속 적응이 안될 거라는 영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았다.
더불어 단아가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도. 다만 그녀가 그를 사랑하기엔 무시할 수 없는 현실적 제약이 있다. 영화가 그 부분까지 생각했는지는 몰라도 단아에게 답을 찾아보라는 질문에 단아가 까마득한 기분을 느낀 건, 그의 마음을 알 수 없어서와 마음먹으면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는 현실까지 두루 섞인 감정은 아닐까.
런온 1회에서 단아가 선겸과 폭력 사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단아는 결론까지 잘 냈다고 생각하는데 선겸은 아닌 듯했다. 자신이 무엇을 잘 못 했는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단아에게 실장은 "그냥 다른 거 아닐까요? 생각도 그걸 표현하는 방식도. 애초에 사람은 다 다르지 않습니까"라고 답했다. 그때도 귀찮은 건 질색이라고 했는데, 지금 단아는 아주 귀찮아졌다.
사람 마음 마음대로 안 되는 건, 어쩌면 애초에 우린 모두 다 다른 사람이라서가 아닐까. 내 마음처럼 저 사람도 이 정도의 간질거림에 만족했다면 단아가 이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을 텐데. 자신이 가진 많은 것을 내려놓을 각오 같은 거 할 필요가 없는데. 그런데 모두 다 다른 마음이고, 각자만의 언어가 있어서 우린 이처럼 고민을 하는 게 아닐까.
저 사람 마음은 어떨까, 나와 같을까 하는 고민은 그래서 나는 어떤 마음이고, 어떻게 해야 할까로 이어진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타인을 향한 이해는 결국 자신을 향한 이해에서 왔다. 인간의 진화를 살펴보면 불필요한 건 퇴보되어 사라진다. 그런데 이 귀찮은 일이 아직 우리에게 남아 있는 걸 보면, 필요한 일이라는 걸 증명하는 셈 같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할 수 있게 돕는 대화 상대가 있다는 건, 단아가 썩 좋은 사람이란 증거이기도 하고. 실장님의 반대 덕분에 영화에게 뛰어갈 동력을 얻는 듯하다. #나이스실장님 #연제욱 #정지현
내가 상당히 좋아하는 책 #우리들의파리가생각나요 는 (내겐) 화가 김환기와 아내 김향안의 러브스토리다.
"인생의 2장이 새로운 이름과 함께 시작되었다. 아내는 남편을 '그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들을 모아 만든 이름'으로 불렀고 실제로 남편의 남은 인생을 그가 꿈꾸던 좋은 것들로 채워주었다. 남편은 아내를 '한때는 자신의 것이었던 이름'으로 불렀다. 결혼 이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김환기에게 아내 김향안은 또 다른 자신이었다."
이 책을 선겸이 미주에게 없는 것 말고, 있는 거 부르라며 자신의 이름을 주던 장면이 아닌, 단아에게 눈앞에 있는 걸 잡으라고 말한 영화 대사에 생각났는지 모르겠다. 아마 선겸의 눈빛에 치여서 생각을 못 했나 보다. 아무튼 단아는 영화를 찾아갔다. 그동안 그를 못 봤던 게 아깝게 느껴지자, 10분 늦는 것도 싫었다. 하지만 그를 발견해 놓고서도 거리를 두었다. 모든 말이 고백인 상황에서도 단아는 '네가 찾는 답이 뭔지 확실하지 않다'라고 말했다.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몇 발자국의 거리가 단아에겐 불안이었고, 불확실함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그 사이를 영화가 천천히 걸어와 두 팔로 꽉 안았다. 눈앞에 있는 걸 잡으라는 말이 자신을 잡고 놓지 말라는 의미이기도 했지만, 불안해하는 단아를 흔들림 없이 잡아주겠다는 다짐으로 들렸다.
두 사람 사이에 조금의 거리도 이제 없다. 마침내 달려서 그 앞에 도착한 모습이 화가 김환기 모든 서포터를 해주었던 그의 아내 김향안을 떠올렸나 보다. 마침내 #런온
단아가 영화를 사적으로 만날까, 공적으로 만날까 고민하는 장면에서 실장는 단아에게 ‘우리 모두 같은 마음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해를 배운다고.
나는 그래도 선겸애비가 선겸이를 사랑한다고 믿었다. 방식이 조금 잘못되고 표현이 미숙한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미주를 반대해도 이런 모습은 상상하지 않았다. 런온 속 모든 주인공은 심지어 한국말이 서툴러서 그렇지, 태웅이까지 모두 말이 예쁘다. 하지만 단 한 사람 선겸애비만은 다르다. 그의 말에선 4선 의원의 품격 같은 건 느껴지지 않는다. 말씀을 막 편하게 한다. 하지만 국민 앞에선 우아하다. 몸짓, 말씨 모두.
그래서 선겸애비에 대한 일말의 기대를 놓았다. 런온 속 주인공들의 말이 예쁜건 상대를 향한 마음에서다. 선 긋는다는 말을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아 다른 표현을 쓰고, 김칫국 마신다고 말한 뒤 마음 쓰여 사과하고. 미주에게 자신의 이름을 주고, 다투는 와중에도 존대하라며 품격을 지키게 했던 모든 순간은 자신의 체면이 아닌 상대를 존중함에 나온 말 모양이었기에 선겸애비에 대해선 그 어떤 희망도 찾아볼 수 없었다.
생각해봤다. 지금 이 상황에서 약자는 누구일까. 정말 대권 후보가 자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건가?
본인의 욕심으로 딸은 입스가 오고 추문이 붙고 아내는 배우라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선겸의 인생까지 생각하면 한 사람의 이기심으로 다른 가족 모두 훌륭하게 쌓아온 그들의 인생에 흠짓이 났다.
가정 하나 제대로 가꾸지 못하는데 정말로 대권을 꿈꾸는 게 진심인지, 그래도 되는 건지 물어보고 싶다. 런 온 등장인물들은 모두 어떤 상환에서도, 설령 그게 고백 후 입 맞춘 다음이라도 상황 파악 냉철하게 하는데 선겸애비만은 그렇지 않다. 갑자기 경이로운 소문의 신명휘가 생각나는 게 선겸애비 나올 때마다 드라마 장르가 바뀌는 기분..
다음 주에 정말 모든 발암이 한 번에 터지고 끝낼 것 같은데 정말 런온답게 쿨하고 깔끔했으면 좋겠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보다 미주가 받을 감정을 먼저 생각했던 선겸이처럼, 두렵고 무섭고 상처 받은 상황에서도 미주는 선겸에게 감정노동시키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미주는 선겸애비의 잘못으로 그에게 상처 주지 않으려 한다. 언제나 런온 인물들은 선겸애비만 빼면 잘못은 잘못한 사람에게 가서 따져 물었던 것처럼.
선겸도 마음만 먹으면 넘어갈 수 있는 미주네 담벼락을 넘지 않고 그 앞에서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어쩌면 두 사람은 마음에도 없는 괜한 말로 서로를 상처 주는 그런 실수는 하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미주는 결국 실수한다. 그와 헤어지려는 실수. 그녀는 선겸을 놓치는 걸 후회할 실수라고 생각하면서도 이를 선택한다. 자신을 지킬 생각으로.
13회로 이어진 장면에서 미주가 한 실수가 무엇인지 나온다. 하지만 이 장면까지만 보면 나는 다투는 상황과 어쩌면 헤어질 수 있는 상황에서도 함부로 행동하지 않으려는 서로 간의 노력이 마음을 더 먹먹하게 했다. 정말 이런 이별이 있을 수 있을까
나도 관계에 문제가 생기면 자연히 멀어짐으로 관계를 끊는 쪽의 사람이다. 내가 상처 받으면서까지 지킬 관계는 없다고 생각해서, 는 아니었다. 그렇게 지혜롭진 못 했다. 그저 상처 받고 상처 받은 뒤 나가떨어지는 쪽이었다. 하지만 모든 그렇게 끝을 내는 것만은 답이 아니었음을 조금 알아가는 중이다.
매이 언니와 이야기를 나누던 장면에서 미주가 왜 선겸에게 헤어지자 말하려 했는지 알 수 있었지만, 이 대사를 들을 땐 필요 유무를 잘 택하며 살아온 미주가 먼저 떠올랐다. 매이 언니를 만나 괜찮아졌지만 그녀는 아직도 발 밑이 불안하고 존재가 흐릿해지는 순간이 있다. 그러니 자신을 흐릿하게 만드는 그를 가지려 하기보단 자신을 지키는 게 먼저라 판단했던 게 아닐까. 이제껏 헤어짐에 머뭇거림이 없이 도망쳤는데, 그에 대해서는 확신이 들지 않는다. 그를 잃고 자신도 잃을까 미주가 불안한 듯싶다. 그렇게 예의 있고 선 잘 지키던 미주가 선겸의 입을 빌러 헤어짐을 말하게 하는 비겁함을 취하게 된걸 보니.
오래 쌓아온 관계나 깊은 믿음을 준 사람과의 문제에서는 끊는 것보단 약간의 시간, 적당한 거리가 도움이 됐다. 천천히 멀어지기 위한 거리, 시간이 아닌 다시금 가까워지기 위해 너와 나를 보호할 감정에 관한 안전한 거리를 통해 우리의 시간을 소중히 이어가는 방법을 찾을 수 있었다. 그래서 이런 상황에서 미주 말을 끊지 않고 들어주는 선겸이 고마웠고, 격한 감정에 자신도 상대도 잘못해서 선을 넘지 않도록 예의를 찾는 것도 좋았다. 안다, 굉장히 이성적인 상황이고 진정 이런 상황이 두 주인공 외모만큼이나 비현실적이라는 걸.
마음만 먹으면 넘어설 수 있는 미주 네 집 대문이지만 두 사람은 이를 사이에 두고 이야기한다. 그 덕에 나를 지키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말로 상대를 상처 주거나, 후회할 행동을 하지 않을 수 있던 게 아닌가. 품격이 다른 런온의 클라쓰다. 이러한 지킴 덕분에 두 사람의 화해가 나는 무리되지 않고 그리움으로만 채워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기은비 프로 대사에서 생각난 인물은 #태양의후예 윤명주+서대영 커플이다. 서대영은 항상 도망을 갔고 명주는 그게 어디라도 잡으러 갔다. “내 모든 도망은 다 백 마디의 말이었”다던 서대영 대사는 기은비 커플에게도 어쩐지 잘 어울린다.
선겸은 미주가 웃어줄 때에나 자신이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말이 사랑이 전부다, 사랑만이 자신을 만들어 준다는 의미로 들리진 않았다. 그 보단 미주가 사랑해주는 자신이 이제야 사람답게 느껴졌고, 선겸도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하는 듯 들렸다.
반면 은비와 나눈 미주의 말을 곱씹어 보면 일을 할 때, 번역가로서 오미주일 때만 사람으로 인정을 받았다고 느껴졌다. 선겸과 있으면 좋지만 자꾸 부족하고 엉성한 모습만 보이는 게 쓸모없는 사람 같고. 선겸을 사랑하는 자신은 오미주가 아니라고 생각에서 겁을 내는 게 아닐까.
하지만 그렇다고 일이 나를 존재하게 하고 살아있게 하는 건 더욱 아니다. 사랑은 사람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일은 사람을 완벽한 존재로 만드는 듯 보인다 해도 차라리 믿을만한 선겸과 불안정한 인간으로 사는 게 더 멋진 일이라는 걸, 미주는 은비와의 대화에서 느꼈을 것이다.
도망치는 모든 순간이 네게 건넨 ‘말’이었다면 더욱이 두 사람의 대화는 여전히 멈추지 않고 이어지고 있는 ‘런온’의 상태라는 거니까. 멈추지 않는 두 사람의 이야기가 다시 만나는 순간을 기다리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