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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보 Apr 29. 2021

런 온: 대사 편 10

그가 자신을 떠났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단아는 미주를 찾아갔다. 그녀와 주고받은 대화 가운데 처음으로 영화, 그가 느꼈을 감정을 헤아려 볼 수 있었다. 일의 목적을 이루는데 직선 코스를 선호하는 단아였다. 그녀는 미술관을 갖기 위해 영화 그림이 필요했고 당연히 그가 자신을 위해 그림을 그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돈이면 웬만한 건 다 됐으니까.


하지만 영화는 그녀 인생에 오랜만에 찾아온, 마음대로 되지 않는 존재였다. 매번 그를 잡기 위해 실장을 보냈는데 그가 무섭다며 울기까지 했다. 하는 수 없이 단아는 시간을 내서 그를 보러 갔고, 잡으러 온 자신을 혹여나 무서워할까 미주까지 납치해 그가 있는 먼 곳까지 왔다. 나는 단아가 영화의 언어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라 보였다. 그렇게 단아가 달리던 트랙에 직선 말고 둥근 영화 전용 트랙이 생겼다. 어떤 마음은 효율적으로 보이지 않는 둥근 트랙으로 달려야 안전히 도착할 수 있다.


무엇보다 아무리 멀어도 단아가 있는 곳으로 올 거라는 영화를 보니 둥근 트랙이 직선 코스보다 그렇게 길지 않게 느껴졌다. 게다가 시간이 이들을 도우니 이러한 설레는 순간을 잊지 않고 서로를 향해 뛴다면 마침내 가까워질 것이다.


영화는 자기 안에 있는 것으로 그림을 그린다. 눈에 보이는 것을 그리는 게 아닌 마음에 담긴 것을 그려왔다. 그랬기에 솔직한 그의 그림에 단아가 끌렸던 게 아닐까. 반면 단아는 마음을 숨기며 살았다. 눈에 보이지 않고 꺼내 가질 수도 없는 무용한 것이라 치부했다. 그녀의 트랙에 놓인 장애물을 뛰어넘기에도 벅찼으니까.


하지만 마음은 숨겨도 숨겨지지 않는다. 그녀도 모르게 그녀의 발걸음을 옮겼다. 아픈 동생이 신경 쓰여 말은 밉게 했지만 태웅이를 보러 먼 미국까지 갔고 영화를 잡으러 이 먼 곳까지 왔다. 무용하다 무시해온 마음이 그녀를 움직여왔다. 다행인 건 그녀의 마음을 받는 사람들은 그녀의 마음이 어디에 쓰이는지 안다는 것이다. 영화야, 그의 이름이 불려진 순간 꿈이 생겼다. 마음을 다 꺼내도 계속 그녀로 채워져 영원히 그녀를 그리는 꿈. 꿈은 이뤄지지 않는 거라 했지만 꿈도 마음처럼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다. 이 마음들은 이제 어디로 향할까. 마음과 꿈을 이야기하지만 두 사람의 눈이 쓸쓸하고 슬퍼서 먹먹해졌다.

그림을 그려보라며 영화를 사무실로 불렀을 때, 널 못 본 시간이 아까웠다고 했다. 그러니 흐르는 시간을 붙잡아 두려 하지 말고 그때처럼 그냥 영화를 붙잡지라고 생각했는데. 마지막 회에 서로에게 숨긴 속마음이 나왔다. 동상이몽. 끝을 생각하며 시작한 단아와 알면서도 꿈을 꾸는 영화. 서서히 멀어지는 중일까?


“난 알거든요. 걔가 나 사랑하는 거 그래서 도망치는 걸.” 이런 마음이라면 서서히 가까워지는 중이다. 두 사람 다 사랑하는 마음이니, 그 마음이 이길 테니까.

“런 온은 사는 세계가 달랐던 주인공들이 만나 서로를 통해 성장하고, 혹은 자신을 가뒀던 틀을 깨고, 영향을 주며, 서로를 사랑해 나가는 이야기다.” - 드라마 <런 온> 풀버전 기획의도 중


드라마 <런 온>은 칭찬할게 무수히 많은 드라마다. 그중 하나는 주인공들의 직업이 단순 배경이 아닌 그 사람을 이해하는 장치로 마지막까지 착실히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선겸이 처음 아버지의 뜻과 반대로 뛰었을 때 두 귀를 가득 울리는 자신의 심장 소리를 들었다. 그 순간, 세계는 아버지가 아닌 그로만 채워졌다. 분명 혼자였지만 외롭지 않은 순간이었던 것 같다. 벅찬 그 순간을 잊지 못해 그는 달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미주는 그의 조언을 듣고 아침형 인간이 되기 위해 모닝 조깅을 시작했을 뿐인데, 달리면서 알게 되었다. 심장 소리가 귀에 들리고 숨이 벅찬, 살아있음. 달리기는 동안 미주는 선겸을 이해해갔다. 뒤에 둔 건 생각하지 않고 앞으로 뛴다던 그를. 미주만 있으면 더할 나이 없다던 그를.


이 날 미주의 달라기는 도망치 위해서. 무언가 빼앗으려 하는 것도 아닌 묻어두었던 지난날의 자신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경기였단 생각이 들었다. 결승선에서 미주를 기다린 선겸은 누군가가 돌아올 곳이 되었다. 그가 그렇게 그리워하던 ‘집’이 되어 미주를 맞았다. 상처와 외로움으로 가득 찬 두 사람의 과거가 끝나는 결승점에서 새롭게 시작될 두 사람의 달리기는 설레고 다정하며 따뜻할 것이다. 무척 다행이고 위안이 되었다.

내가 드라마 <런 온>에서 사랑했던 장면은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앉아 무언가를 먹을 때였다. 차나 한잔 하는, 그마저도 시켜 놓고 입 한번 안 대고 카페를 나서는 숱한 드라마들 속에서 <런 온>은 유독 밥을 먹는 장면이 많았다.


원래도 낯을 가려 가까운 사람이 아니면 밥은 피하는 쪽이었지만 일 년동안 거리 두는 생활 속에 밥을 먹는 사람은 그야말로 가까운, 일상을 함께하는 사람들이었다. 따뜻한 음식이 몸 안에 들어가면 여유로워지고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 자연스러운 진심이 나온다. 그렇게 식탁 앞에서 주고받는 대화가 많았던 두 사람은 오늘도 서로에 대해 알아간다.


9초. 영일이에게 9초는 승부도 결과도 아닌 후배들 앞에서 뛰는 책임이었다. 만년 2등이었던 선겸에겐 함박웃음을 짓게 하는 꿈 꾸는 순간이었고. 조금씩 달랐지만 뛰는 이들 모두에게 함부로 입에 올릴 수 없는 마의 숫자였다. 하지만 이제 선겸에게 9초는 미주를 떠올리게 한다. 닿을 수 없는 이상 속에 있는 시간이 아니라 이렇게 마주 보며 밥을 먹고 나에 대해, 너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이 되었다. 그 순간 당신이 있어 행복하다는 선겸의 미소에 나도 개설렜네 :)


같이 숨 쉬고 밥을 먹고 그렇게 서로의 삶으로 들어가는, 그 자연스러운 일상이 그립다. 봄이 오듯 그렇게 우리의 9초 대도 다시 돌아오길 ◡̈

드라마를 보는 나는 가끔 드라마 속 장면이 연상되는 순간이 있다. 사람을 보며 어떤 인물을 떠올리기도 하고. 미주는 선겸을 보고 ‘제리 맥과이어’를 떠올렸다. 그리고 선겸은 미주의 말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제리 맥과이어’를 봤다. 영화에 관심이 없고, 심지어 영화는 재미까지 없었지만 선겸은 영화보다 그 영화를 말하던 미주를 생각하며 영화를 봤다. 그녀는 나에 대해, 내가 하는 일을 이렇게 보고 있구나. 마치 단아가 그림 뒤 영화를 발견하듯.


선겸은 그렇게 미주의 언어로 세상과 이전에 나눠보지 못 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에이전트로 일하면서 ‘제리 맥과이어’는 얼마나 자주 떠오를 것 인가 ◡̈ 점점 선겸이 인생에서 자기 부분을 챙겨나간다. 기특해 미주엄마 마음 알 듯 � 시간이 흘러 지금 이 순간 본 드라마를 다시 보게 된다면 나는 인스타에서 나눈 당신과의 기억이 떠오를 것 같다. 서로의 언어로 장면이 남긴 다른 부분을 발견하고 함께 즐거워했던 시간들로.


단아는 좋아하는 게 생기면 빼앗길까 두려웠다. 축구도 그렇고 미술관도 그렇고, 좋아하는 마음이 들키면 꼭 단아의 삶에서 사라졌다. 뭐든 다 할 수 있고 가질 수 있는 줄 알았는데, 단아의 삶도 아버지의 들러리였던 선겸과 다르지 않다. 그래도 슬프진 않았다. 그녀가 못 하는 건 그녀가 하지 않았을 때뿐이었다고 말할 정도로 뭐든 해낼 자신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영화는 다르다.


그 없이 살았던 시절에는 모를 감정이었다. 하지만 더없이 자유롭고, 티 없이 맑은 그가 이제 없다면 두려움보다 슬픔이다. 없는 시간을 만들어서 그를 보러 갔고 그의 존재가 담긴 그림으로 위로받았으니까. 처음에는 그를 향한 마음이 들키면 빼앗기지 않을까 두려웠다. 안 그래도 위로 올라가야 하는데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영화는 솔직히 단아의 약점이 될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 후반으로 넘어가면서 진짜로 단아가 두려워하는 건 그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자유롭게 자기 안에 담긴 걸, 어느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그려내던 영화가 꿈으로 삼는 단아는 사람들의 시선 속에 갇혀 산다. 그를 사랑하는 자신이 그의 한계가 될까 봐 두려워지지 않았을까. 그를 알아갈수록 자신은 그의 목표를 이뤄주는 여기까지 맞다는 생각이 든다. 빼앗기면 살다가 한 두 번 마주칠 수라도 있는데 그를 잃게 되면, 사랑했던 그 모습을 잃어버리게 한다면 무너지는 슬픔일 것이다. 그래서 단아가 영화와 계속 거리를 두고, 더 다가가지 않았던 것 같다. 이런저런 생각 속에서도 눈은 계속 영화를 향해있으면서... 이별을 준비하는 단아가 너무도 외로워 보였다.


“생각이 너무 많아서 혼자서 이별을 만든 거죠. 헤어진 다음 날에야 알았죠.”


단아의 제안을 받고 그림을 그리던 영화는 그림만 받으면 된다는 단아의 태도에 뿔이 난 적이 있었다. 그림을 주기 전까진 자기 것이라고 했는데 마지막 회 대사를 옮기며 알았다. 그건 단순히 소유자가 누구냐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영역에 관한 일이라는 것을. 단아는 영화의 그림을 보자 미소를 가득 머금고 행복해한다. 어느 순간부터 단아가 갖고 싶던 건 그의 그림이 아닌 마음이었을지 모르겠다.


다만 이 마음이 단골 바에 놓인 그녀의 책장 속 책들처럼 다른 사람이 볼 수 없는 곳에 갇혀있지 않길.

'이제 정말 시간이 없어. 더 위로 올라가야 해서'


단아의 대사에 #상속자들 속 원이 오빠가 생각났다. 수십 번 본 상속자들은 볼 때마다 각기 다른 인물에게 빠져들게 했다. 상당수는 김탄에게 그다음은 영도에게 하지만 마지막은 언제나 원이 오빠였다.

동생의 사랑은 응원해주었지만 원이 오빠는 더 위로 올라가야 하는 시기에 사랑하던 여자와 헤어졌다. 아마 마지막 밤일 거라 생각돼 던 날 원이가 물었다.


"내가 만약 탄이 처럼 했으면 우리 이렇게 안됐을까? "

"오빠는 못 그래. 오빠는 세상 가장 높은 곳을 꿈꾸지만 탄이는 은상이가 자기 세상이길 꿈꾸니까. 방해 안 할게. 손 흔들어줄게 오빠는 올라가."


그리고 그녀가 가진 일종의 소원권을 잘 헤어지는데 쓴다. 최대한 덤덤하게 헤어지려는 현주의 목소리에 울컥 한 건 나였고, 소리 내어 운건 원이 오빠였다.


"우린 늘 가까이 마주 앉아 있었어도 까마득히 먼 사람들이었어요. 몰랐던 거 아니니까 미안해하지 말아요" 라니. 그렇게서 얻은 높은 곳은 정말로 행복할까?


나는 영화가 현주처럼 알고 있던 시작이었다고 해서 그 결과를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는 게 좋았다. 설사 엔딩이 그러할지라도 꿈이라도 꿔보는 편이 영화답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가 학생이라 그럴지 모르겠지만.


상속자들 마지막 회에 탄이는 형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형은 오르고 싶은 곳에 올랐고 더 단단해졌으며 밤에 울었다. 형의 유배지는 형이 평생 살아온 이 집이 아닐까."


단아를 라푼젤에 비유했었다. 평생 외로웠던 원이처럼 단아가 그곳에 갇혀 홀로 외롭지 않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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