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조(tvN 2021)
<빈센조>에 대한 리뷰다. 보통 드라마 3-4회까지 보고 성급한 리뷰를 써왔던 걸 보면 마지막 회를 앞두고 쓰는 <빈센조> 리뷰는 상당히 늦은 편이다. 지나치게 애정하여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거나, 리뷰를 써야 한다는 생각조차 못하게 빠져들면 있는 일이다. <빈센조>는 둘 다에 해당한다.
<빈센조> 1회 초반 20분은 우리에게 이 드라마의 주인공인 '빈센조 까사노'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알려 준다. 이탈리아 마피아 중 하나인 까사노 패밀리의 콘실리에리. 마피아의 변호사라고 불리는 직책이지만 보스가 총애하는 양아들로, 보스의 장례가 진행 중인 이때 직통 후계자의 견제를 받고 있는 존재다. 그런 위험한 상황에서도 그는 보스가 마지막으로 남긴 일을 무덤 하게 수행한다. 까사노 패밀리를 건드린 상대 마피아의 포도밭을 단숨에 불태운 것. 사람을 잔혹하게 죽이면서 피가 낭자한 그런 장면이 아니었음에도 그가 얼마나 차갑고 잔인한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 고통을 느낄 시간이 없는 단숨에 죽는 죽음 그에게 있어 적에게 베풀 수 있는 아주 자비로운 형벌이다. 포도밭을 불태운 건 시작일 뿐, 이후 남겨진 적에겐 지옥이 올 것이다. 그런 그가 중국 마피아가 숨겨 놓은 금을 찾기 위해 한국에 있는 금가 프라자로 오면서 냉냉한 그의 시간에 따뜻한 감정이 쌓인다. 처음에는 금을 찾기 위해 금가 프라자 사람들을 도왔다면, 이후 그들의 일이 자신의 일이 된다.
<빈센조>는 박재범 작가가 극본을 맡았다. 2010년에는 흔하지 않았던 추리물 <신의 퀴즈>를 그것도 시즌제로 성공시키면서 내 안에 '작가 박재범'은 믿고 보는 작가로 자리메김했다(가수와 동명이인인 것도 한 몫했지만). 그 뒤 박재범 작가는 <김 과장>과 <열혈 사제>를 통해서 사회비리를 특유의 유머와 재치를 녹여 풀어내는 드라마를 만들었다. 보통 사회 비리를 고발하는 드라마의 주인공은 악한 이와 다른 순수함과 정직함, 정의로움을 갖고 있다. 대비되는 인물들의 성격이 결국 선이 악을 이긴다는 믿음을 갖게 하며, 드라마가 전하는 메시지의 강한 축이 되었다.
하지만 박재범 작가의 등장인물들은 그렇게 정의롭지 않다. <김 과장>에서의 김 과장은 분식회계로 지방에서 이름 꽤나 알려진 인물로, 수사도 여러 번 받았으나 완벽한? 장부 조작으로 번번이 수사망을 피해 갔던 ,사실상 범죄자다. 물론 그가 나쁜 사람의 돈만 상대했다는 게 조금의 면제부가 될까? <열혈 사제> 속 김해일 신부도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신부님과 다르다. 꽤 폭력적이다. 알코올 의존증도 높다. 말은 또 얼마나 못되게 하는지.. 사제복이 그를 살렸?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박재범 작가는 <김 과장>과 <열혈 사제>를 거치면서 조금 더 악한 빌런과 그보다 더 악한 다크 히어로를 만들었다.
<김 과장>이 방송된 2017년보다 지금 사회가 더 악해졌다는 의미로 해석해도 되려나. 한국에는 마피아, 야쿠자, 삼합회, 카르텔 같은 거대 범죄 조직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착각일 뿐, 어딜 가나 '또라이'는 꼭 있다는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처럼, 탐욕이 지배하는 세상에는 '빌런 총량의 법칙'이 존재한다고 기획 의도에서 밝히고 있다. '법'위에 군림하며 '법 정신'을 거스르며 의기양양해하는 그들은 자신들을 건드릴 존재는 없다고 믿는다. 그런 '코리안 카르텔' 앞에 이탈리아 마피아 콘실리에리, 빈센조가 등장한다. 이 설정만으로도 이미 사이다다.
드라마는 내내 빈센조를 건드리는 바벨 그룹을 자근 자근 혼내주는 빈센조의 작은 승리들로 이어간다. 작은 승리라고 말했지만 그건 크게 이길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정도로 봐주는 빈센조의 여유이자 아량이다. 하지만 악은 자신의 끝을 모른다. 멈춰 설 줄 알면 악이 아닐지도. 끝까지 가는 그들을 결국 빈센조가 그의 방식대로 처리한다. 앞선 <김 과장>과 <열혈 사제>보단 꽤나 세다. 사람이 죽고 죽는다. 요즘 이런 식의 '자기 복수'를 이야기하는 드라마들이 몇 작품 더 방영 중에 있다. 사실 '자기 복수'는 또 다른 범죄이다. 그렇기에 이를 소재로 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이 많다. 그중 하나는 이 또한 또 다른 범죄란 사실의 인식과 누군가를 처벌한 권리도 권한도 내게 없다는 사실을 아는 것. 빈센조는 이 부분을 명확하게 한다.
빈센조는 그의 방식대로 사람을 처리할 때도 나름의 원칙이 있다. 그리고 그렇게 사람을 보낸 기억은 잊히지 않고 그의 삶에 남는다. 매일 악몽을 꾼다. 바랄 수 있다면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화석 같은 삶으로 남은 생을 보내고 싶다 바랄 정도다. 그리고 빈센조의 악의 방식을 함께 하고 있는 차영도 사람이 죽을 때마다 놀라고, 괴로워한다. 반복된다고 그 슬픔이, 공포가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자신이 왜 이 일을 하는지 목적을 확인하다. 사람을 죽이고 나서 술을 마시고 춤을 추는 빌런, 장준우와 최명희와 다르다. 그들은 사람을 죽이는 게 일을 정리하는 방법 중 가장 쉬운 방법으로 생각한다. 빈센조도 그런 장준으를 보며 실패를 분석하지 않는 악은 친절하다고 말했듯, 빌런이 성질만 고하다. 머리를 쓰지 않는다. 그래서 생각이란 걸 하지 못해 자기 늪에 빠진 건지도. 빈센조와 차영은 자신들이 악의 방법으로 심판하는 일을 정의롭다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악이기 때문에 악을 잘 아니까, 그들을 상대하는 것뿐이라고 말한다. 차영도 자신이 정의로운 게 아니라 그저 화가 많은 사람일 뿐이라고 스스로에 대해 말한다. 오히려 빈센조와 연합하며 부패한 다른 검사들과 자신은 다르다고 말한 정 검사가 결정적인 순간에 바벨 그룹으로 넘어간 걸 보면, 자기 확신이 얼마나 위험지 알 수 있다. 물론 빈센조와 차영의 방법도 옳은 건 아니다. 하지만 작가는 깊이 박힌 악을 축출하기 위해서 때로는 이런 변칙적이고 독한 방법도 필요함을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설령 이것이 실현 불가능하다 할지라도. 그렇기에 빈센조와 차영, 장준우와 최명희 모두 '악의 방식'을 사용하지만, 자신을 경계하며, 일의 목적과 의미를 되짚어보는 빈센조와 차영은 점점 선을 모르고 사람의 생명과 지켜야 할 가치의 준엄함을 상실해가는 장준우와 최명희와 다른 길을 걸을 수 있게 된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빈센조의 '악의 방식'은 약한 사람들을 대하는데도 다르다. 피해자들을 도움을 받아야 하는 수동적인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모든 상황을 다 해결하고 변화된 결과를 선물처럼 주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이 싸움의 실질적인 주체는 빈센조가 아닌 피해자들이다. 빈센조는 그들이 제대로 된 싸움을 싸울 수 있게 기울어진 운동장을 수평으로 맞춰주고, 적을 이기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바벨 화학 피해자들을 바벨 화학 창고를 불태우는 일에 참여시키고, 금가 프라자 식구들을 바벨을 응징할 때마다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함께 싸우도록 한다. 그런 작은 승리는 이기는 습관을 만들고, 세상에 필요한 '오지랖'을 배우게 했다. 나 하나 먹고살기 바쁘다고 무관심했던, 나랑 무슨 상관이냐 여겼던 세상 일들이 내 일처럼 느껴지고, 뭐가 잘못 되었는지 알게 되는 '건강한 오지랖'으로 빈센조가 말해 온 분노와 실천을 이룬다. 어쩌면 '정의로움'이란 크고 대단한 무엇이 아닐지 모른다. 나는 그런 대단한 일을 할 사람은 못 되고, 그럴 능력도 없지만 편의점으로 도망 온 아이를 위해 경찰에 신고하고 따뜻한 옷을 챙겨준다거나, 구급차가 빠르게 갈 수 있게 차를 옆 차선으로 옮긴다거나,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사람에게 시선을 맞춘다거나 하는 세상을 향한 '오지랖'은 가능하겠다.
이렇듯 드라마 <빈센조>는 빈센조라는 인물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악을 처단하는 통쾌한 이야기 속에 이를 보고 있을 시청자를 향한 메시지도 단단히 구축해갔다. '자기 복수'의 늪에 빠지지 않고, 어떤 마음과 자세를 추구하며 살아야 하는지를 '악의 방식'으로 이야기한다는 점이 신선하다. 분명 히어로를 보고 있는데, 연약한 내가 아무 쓸모없이 느껴지지 않는다. 내내 유쾌하고 통쾌하다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스토리를 담아내는 연출과 배우들의 조화는 매회 감탄를 만든다. 잘생긴 송중기는 이 드라마에선 그저 덤일 뿐이다.
대사를 쓰면서 발견한 반응인데 1회를 보고 예상과 다른 분위기?에 포기 선언을 한 분들이 많은 듯하다. 하나 거기서 포기하면 좀 아쉽다. 억울할 수도 있다. 이 멋진 드라마를 못 보는건 손해니까. 좀 어색하거나 과하다 느껴지는 부분을 10초씩 살짝 뛰어넘어 조금만 더 가면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빈센조>를 만날 수 있으니까 부디 <빈센조> 미친 매력을 안 보는 일은 없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