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6월이다. 정확히는 6월이었다. 2021년도 벌써 반년이 지났다는 생각에 놀랐는데, 이 글을 쓰는 사이 (또다시) 벌써 7월이 됐다. 코로나를 이유 삼는 게 이제는 핑계 같지만, 집순이도 느낄 정도로 활동에 제약과 부담이 가중되는 상황이 지속되다 보니 아무것도 못 한 채 시간을 보냈고, 그래서인지 시간이 더 빠르게 흐르는 듯 느껴진다. 그래서 5월 말, 북티크 온라인 독서 챌린지 모임을 신청했다. 생각보다 참여비가 컸고 아무래도 온라인보다 오프라인 모임이 더 좋을 것 같았지만, 고민을 길게 가져가지 않았다. 인터넷 상에 "고민은 배송만 늦출 뿐"이라는 떠도는 띵언을 생각하며, 이미 6월이 다가오는데 이거라도 해보자 싶어서 거침없이(?) 참여비를 송금했다.
독서모임에서 읽을 책은 자유 선택이었다. 평소 밀리의 서재를 이용하고 있어고 어떤 책을 읽을까 고민하며 플랫폼을 살펴보던 중 '밀리봐봐와 100인의 인생 책'이라는 코너에서 한 권의 책을 선택했다. 카페 메뉴 개발자 이세나 님이 꼽은 인생 책 "나이 들수록 인생이 점점 재밌어지네요"는 만 82세에 시니어들을 위한 스마트폰 게임을 만든 마짱 할머니의 인생철학이 담겨있는 아주 유쾌한 책이다. 이 책에 대해 이세나 님은 '경험이 쌓일수록 할 수 있는 것도 많아질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일깨워줬다'라는 한 줄 추천사를 남겼다.
마짱 할머니가 스마트폰 게임을 만든 건 은퇴 후 나이가 많이 드신 어머를 간호를 하게 되면서, 활동적인 그녀가 하루 종일 집에만 있게 될게 두려웠던 나머지 컴퓨터를 배우게 되면 서다. 고작 컴퓨터라고 생각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나의 엄마만 봐도 아직도 스마트폰 사용이 서툴고, 다양한 기능이 추가되어 텔레비전 리모컨 사용법을 매번 헷갈려해서 때마다 내가 해결사로 나서야 한다. 육십이 넘어 새로운 무언가를 배우고 시작한다는 건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마짱은 천천히 컴퓨터를 배웠고 이를 통해 다양한 사람과 교제할 수 있게 되면서 시니어들을 위한 스마트 폰 게임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녀가 새롭게 사긴 친구들의 도움과 응원으로 그녀는 코딩을 배웠고, 구글 번역기를 통해 구글 본사에 앱 신청을 해서 마침내 어플을 발매한다. 나는 시작을 겁내지 않는 마짱이 정말 멋졌고, 그 열정이 부러웠으며, 심각하게 생각하는 버릇을 가진 내게 마짱이 보인 유쾌한 시선은 참으로 반짝였다. 이런 게 연륜이구나.
하지만 마짱의 이야기를 함께 읽은 어느 친구(정확히는 8살가량 어린 후배)는 마짱을 보며 그녀의 도전이 대단하게 보이긴 하지만, 그녀가 한 말 중 실패해도 크게 잃는 게 없으니 우선 시작을 해보라는 말엔 동의할 수 없다는 꽤나 단호한 반응 보였다. 그는 경우에 따라 돈은 잃지 않을 순 있어도 들어간 시간은 회복할 수 없지 않냐고 말했다.
나도 그 친구와 같은 생각을 했던 때가 있다. 도전을 아니 새로운 시작을 주저했던 건 실패했을 때 느끼는 비참한 기분 때문이었다. 누가 소 띠 아니랄까 봐 모든 걸 되새김질하는 나는 실패의 과정도 곱씹었고 그럴수록 가장 아까운 건 시간이었다. 그 시간에 다른 걸 했다면?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다지만 시간은 없어지는 성질의 것이었다. 사라지는 시간을 생각하자 나는 더욱 안정지향 중심의 사람이 됐다. 하지만 인생은 익숙한 문제만 출제하거나, 높은 확률로 이길 게임만 걸어오지 않았다. 결국 나는 선택해야 했고 나의 선택은 자주 어리석었으며, 안전한 길을 지향하던 성격은 무언가를 함에 있어 남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쏟아부어야만 했다. 그럼에도 실패로 끝났을 때 이 모든 과정도 실패가 되었다. 그렇게 또, 잃어버린 시간이 되었다.
"프로그래밍을 시작했다고 해도 결국 앱을 완성하지 못할 수도 있고, 완성했다 해도 애플의 승인 심사에서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스스로 프로그래밍을 하고 앱을 만드는 경험을 하며 즐기고 공부한 것은 결코 손해가 되지는 않습니다. 그걸 두고 '앱을 만들고 싶었는데 실패했다. 좌절했다'라고 해석해버리면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와카미야 마사코, 『나이 들수록 인생이 점점 재밌어지네요』 )
올해 초 책을 출간했다. 드라마 대사를 소재로 한 에세이다. 인스타그램과 브런치에 적어 둔 글이 있었다고 하지만 책으로 묶으려니 손봐야 할게 많았다. 그렇게 6개월을 메어달려 간신히 책의 형태를 갖췄다. 그러는 사이에도 여러 번 그만둘까 고민했다. 잘 안될 것 같았다. 그렇게 엎치락뒤치락하는 끝에 원고가 완성됐다. 자가출판 사이트에 출간 승인을 요청하기에 앞서 나는 세 곳의 출판사에 투고 메일을 보냈다. 나에 대한 설명으로 자주 사용하는 표현이 있다면 '돌다리도 두들겨보고도 안 건너는 사람'인데, 안 될 걸 알면서도 투고 메일을 보냈다. 평소라면 안 할 행동이었는데, 어쩐지 투고 메일을 보내야 할 것만 같았다.
그리고 얼마 뒤 회신 메일 알람을 받을 때까지 우습게도 기대하는 마음에 설레었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부정적인 메시지가 담긴 메일을 눈으로 확인하고 나니, 이런 결과를 예상하긴 했음에도 조금 실망했고, 설레어했던 내가 우스웠다. 한동안 엄청 우울해하겠지, 스스로를 실패자라고 생각하겠지. 그럴 줄 알았는데 다행히 그렇게까지 나를 몰아가진 않았다. 그건 메일에 회신을 주신 출판사 담당자분들의 성숙함 덕분이었다. 메일 내용을 한 줄로 정리하자면 ‘당신은 우리와 함께 갈 수 없습니다’였지만, 나의 글이 어떠한지에 대한 ‘평가’는 없었다. 당사의 출판 방향과 결이 다르다며, 좋은 기회가 내게 오길 바랬다. 에둘러 거절함이다. 하지만 그런 회신 중에 한 곳에선 조금 더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에서 결이 다른지 짤막한 설명을 덧붙여주었다. 투고 메일을 보내준 나에 대한 존중이 전해졌다.
그 메일을 나는 ‘중요 메일’로 분류해 보관 중이다. 분명히 거절이고, 투고에 실패한 증거(?) 물이지만, 출간의 방향성이나 글을 쓸 때 가져야 할 발란스 등 생각해볼 점이 많았다. 만약 내가 실패를 예상하고 투고 메일을 보내지 않았다면 나는 어떤 부분을 보완해야 할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출간된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지 못했(당연한 결과)지만, 책을 출간했기에 내 글을 좋아해 주고 계셨던 숨은 분들과도 소통할 수 있었고, 다음을 어떻게 준비하면 좋은지 방향을 찾을 수 있었다. 재미있게 읽었다는 분들 중 그래서 다음 책은 언제나 오냐고 물어보신 분들이 왕왕 있었다. 당시에는 두 번째 책은 없다며 손사래를 쳤는데, 내년 즘에 손글씨도 넣고 더 많은 꼭지를 담아 개정증보판을 내고 싶어 졌다. 허비될 시간이라고 생각해서 글을 모으지 않았다면, 출간하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보다 더 갇힌 시선 속에 살고 있었을지 모른다(어쩌면 글을 쓰지 않았을 수도 있고).
그리고 어떤 일은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 했다고 해서 실패라고 말 할 수 없는 일도 있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tvN, 2021)에는 18주 차에 조기 양막 파수로 더 이상 임신 유지가 어려운 산모가 나온다. 희망이 없다며 아이를 포기하려는 의사의 말에 산모는 담당의를 양석형 교수(김대명 분)로 변경하며 아이를 지켜달라고 청한다. 그리고 양석형은 산모와 함께 24주까지 아이를 지켜낸다. 아이를 살릴 수 있는 가능성은 매우 낮았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낮은 확률을 선택할 수 있냐고 물었던 전공의 추민하 선생에게 양석형 교수는 무섭지만 그것까지 생각하면 한 걸음도 못 나간다고 했다. 그저 최선의 선택을 내리는 것뿐이라고.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이는 생명을 얻지 못하고 엄마 곁을 떠났다. 그럼 산모와 양석형 교수에게 그 한 달은 실패의 시간이었을까? 산모와 양석형 교수는 진정 실패한 것일까? 아니다. 아니었다. 건강을 회복한 산모가 퇴원을 하면서 양석형 교수에게 남긴 편지에는 일말의 원망도 없었다. 그 한 달이란 시간이 있어 아이 심장 소리도 듣고 태동도 처음 느껴볼 수 있었다며 그 짧은 몇 주의 시간들이 산모와 남편에게 소중한 시간이었음을 고백한다. 아이가 떠나간 건 너무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의미 없는 시간이 아니었다. 그리고 무엇이 성공인지, 실패인지 명확히 구분 지을 수 없는 일들도 많다. 그러니 지금 당장 실패와 성공으로 구분 짓는 않아도 되지 않을까?
물론 나는 속물이라 실패보단 성공하길 원한다. 세상은 성공한 사람들에게 좀 더 친절하니까. 하지만 내 인생은 성공의 빈도보다 실패의 빈도가 더 많을 것이 자명하다. 다만 실패 속에 손해라고 생각했던 시간은 다음으로 건너갈 수 있게 하나의 돌계단이 되었고, 실패할 때마다 하나씩 생겨나는 돌계단들로 나는 어떤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어쩌면 넘어질까 두려워 제자리에 서있기만 했던, 그러니까 아무것도 남겨주는 것 없이 흘려보낸 시간이야말로 터무니없이 아까운, 실패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자, 그러면 나의 6월 독서 챌린지는 어떻게 되었을까? 결론적부터 말하면 미션 통과다. 성공이라고 하지 않은 건 한 달 중 4일을 빼먹었기 때문이다. 과거였으면 어떻게 서든 한 달간 집착적으로 올 출석하여 미션을 성공시켰겠지만 독서 챌린지의 목적은 한 달 동안 책을 조금 더 곁에 두기 위한 것이었으니 그 부분에서는 성공한 셈이다. 오히려 원칙적인 성공에 집착하지 않음으로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여러 책을 다양하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하여 나의 실패도 실패의 모양이 되지 않았다.
"뭔가를 시작할 때 굳이 나중에 '써먹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인생은 길고, 계속 이어집니다. 단기적으로 보고 실패했다, 좌절했다 판단하는 것은 너무 성급하고,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이 나이가 되어서야 깨달았습니다. 실패는 없다. 실패 같은 것은 하지 않는다. 무엇이든 시작만 해도 '성공'인 것입니다." ( 와카미야 마사코, 『나이 들수록 인생이 점점 재밌어지네요』 )
마짱 할머니도 나와 비슷한 생각이다. 그렇다면 이제 나는 스스로에게 씌운 실패자라는 오명을 벗겨 줘야 하겠지. 그리고 실패와 성공이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 조금 더 자유로이 여러 일들을 시작하고 번번이 쌓이는 실패 속에 성공을 향한 돌계단을 하나씩 더 만들어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