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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보 Aug 06. 2021

너는 나의 봄 : 대사 편 1

분명 드라마 티저에서 로맨스 힐링 물이라고 소개했는데, 한 단어를 빠트린 것 같다. '스릴러'


드라마는 강다정(서현진 분)의 다정하지 않았던 유년시절에서부터 이야기를 풀어간다. 아무도 그를 무시하지 않는데 그렇다고 스스로 생각해 매일 술을 마시던 다정의 아버지는 술을 마시면 엄마 미란(오현경 분)을 때렸다. 눈에 멍이 든 미란에게 슈퍼마켓 사장이 건넨 달걀은 그녀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기 충분했지만, 결국 그 달걀을 받아와 아이들 반찬을 한다. 그렇게 소란한 밤마다 다정은 옆 집을 본다. 그녀의 이름처럼 다정한 이웃집 아저씨는 매일 맛있는 간식을 사서 퇴근한다. 이웃집 아이는 아빠를 두 팔 벌려 반기고, 그렇게 행복한 모습을 내내 지켜본다.


엄마가 말해주는 인어공주, 행복한 왕자, 백설공주에게 해피엔딩 같은 건 없었다. 다정은 그 나이 아이들이 그리는 왕자나 공부보다, 자신을 위해 울어준 검은 고양이를 더 기다렸다. 그런 다정의 유년기를 영도(김동욱 분)가 아무 감정 없이, 마치 책을 낭독하듯 한 목소리로 또박또박 '읽는다'. 톤 다운된 색감과 긴 비율의 프레임 속 다정의 모습은 어딘가 갇힌 듯 한 기분을 준다.


작가는 묻는다.

"당신의 일곱 살로부터 당신은 얼마나 멀리 도망쳐왔나요?"


그녀는 이제 타 호텔에서 눈여겨볼 정도로 능력 있는 호텔 컨시어지 매니저가 되었지만 아직 일곱 살, 그곳에서 달아나는 중이다. 어려서, 아무것도 몰라서 스펀지처럼 모든 걸 흡수해 버리던 일곱 살. 그래서 나도 모르게 생긴 상처, 트라우마, 콤플렉스를 안고 어른이 된 다정에게 (그리고 나에게) 이 드라마는 '일곱 살의 나'를 만나보라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하고 있다. 꽤나 긴장감 있는 텐션으로.



무척 신선한 구조다. 영상도 예쁘지만 연출이 드라마의 긴장감을 살린다. 연출은 #검색어를입력하세요www #더킹:영원의군주 를 연출하신 정지현 감독님이시고, 전작에서도 따뜻하게 상처 입은 어른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냈던 #풍선껌의 이미나 작가님의 극이다. 기대할 수밖에 없는 조화. 여름에도 어울릴 스릴러가 깔린 신박한 힐링 이야기. 정말 겨울이었던 '멸망'이 가니 '봄' 왔다.

미란은 스무 살, 일하던 가게 손님으로 온 윤찬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녀에게 처음으로 시를 읽어준 남자. 명문대를 나온 그와 결혼하는 건 동화 같은 일이었지만 성 밖을 나온 왕자는 너무나 나약했고 찾아오는 모든 불행을 미란의 탓으로 돌렸다. 그렇게 미란의 삶은 멍들어가고 있었다. 결국 다정과 태정을 데리고 왕자를 떠났다. (인물 소개 글 인용)


그랬기에 다정이 가져오는 동화 속 왕자, 공주을 미란은 부정적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자신의 그러함이 아이에게 어떻게 남았을지 당시엔 알지 못했고, 생각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조금씩 미안해진다. 마음껏 치대고 기댈 수 있는 엄마가 되어주지 못한 것 같아서.


미란이 그 집을 벗어나 어디론가 향하는 버스에 올라타면서부터 프레임은 조금씩 더 줄어든다. 좁아지는 화면 사이로 마지막엔 미란의 젖은 눈만 보이다 겨울밤으로 사라지듯 넘어간다. 마치 그 화면이 눈물을 흘리다 감기는 미란의 눈꺼풀처럼 보였다.

가족은 건드리지 말라는 다정의 멱살잡이에  ‘붉은여우 꼬리의 꽃’에 대해선 다 말하지 못 한 듯 싶다만, 다정의 유년시절이 현재까지 그녀에게 강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은 알 수 있었다. 나도 모르는 잠재된 기억들이 나의 한 부분이 된다. 그건 자연스러운 일일 수밖에 없다. 과거의 나를 전부 부정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오늘의 내가 내일의 나를 어떻게 만들지 몰라 숨만 쉬며 살 수도 없다.


영도의 말이 따끔한 건 전부 다 맞는 말이어서. 그럼 불행을 극복하는 법을 알려줄 수 있겠는가? 대책 없는 분석만큼 잔인한 것도 없으니까. 아마 알려준다 해도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건 결국 내 몫이겠지만, 휘몰아치는 다정의 시간에 그녀의 속이 문드러지는 게 아닌 굳어지는 게 아닌 마침내 과거의 자신을 안아주는 모습을 기다리게 됐다. 이 드라마는 그런 마음으로 나를 보게 한다.

그래서 손을 들고 이 드라마를 추천합니다� 여러분 동네방네 소문내 주세요.


조심스레 추측하자면, 영도의 인터뷰는 작가가 이 드라마에서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아닐 듯싶다.


 “그 배고팠던, 수치심을 느꼈던, 서러웠던 일곱 살의 아이는 우리가 멀쩡한 어른처럼 보이게 하려고 그림자에 숨어 있을 뿐 우리가 약해지는 어느 날, 다시 우리의 귓가에 속삭이는 것은 아닐까.

"다 너를 비웃을 거야." "너만 결국 갖지 못할걸." "네가 사실 쓸모없다는 걸 들키고 말 거야."

여기 저마다의 일곱 살을 품은 채 살아가고 있는, 많은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이 드라마는 묻게 될 것이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해줄 것이다.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그 과거를 지금의 우리가 다르게 대할 수는 있을 거라고. “

                                                                                          -드라마 기획 의도 중에서-

그래서 살인자처럼 보이는 채준이 오히려 살인자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추측을 한다. 그리고 영도의 인터뷰를 보고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하얀 가운을 입고 있었는데.


인터뷰 영상 때 흐르던 배경 음악 그대로 화면은 '강력 3팀 고진복 형사' 명패로 넘어간다. 왜? 굳이? 그리고 화면은 포커스 아웃되면서 영도가 보고 있는 사건 기록 이름으로 향한다. '2018년 풍지 9동 고시촌 뒷.... 이정범 살인사건' 범인 찾기 시작!

다정의 화면은 자주, 이렇게 벽을 마주하듯 연출된다. 분명 저 공간엔 두 사람이 함께 있는데 말하는 화자만 비추고, 듣는 이가 있을 법한 곳엔 벽을 놓았다. 채준과의 대화 장면도 비슷한 연출이었고, 갑갑한 그 느낌을 1화 초반에 나온 다정의 유년 시절에서도 받았다. 회상 장면을 위한 연출이었다면 색감을 바꾼 것만으로도 충분했을 텐데, 감독은 잘 사용하지 않는 긴 비율의 화면을 사용함으로 답답한 기분을 들게 했다.


물론 이건 지극히 사적인 감상이지만, 그녀는 '쓰레기 자석'이라 불릴 정도로 좋지 않은 연애만 했다. 자신을 내내 쓰레기통에 집어넣는 기분을 느끼게 하던 연애. 사랑을 했다고 생각하지만 벽과 마주 보는 듯한 기분을 갖게 했던 관계들. 그런 기분이 들 때마다 들리는 어린 시절 소란했던 밤의 소리와 그럴 때마다 보이던 어린 시절의 자신. 이게 아닌 것 같다고 느꼈을지 모른다.


하지만 다정은 다시 그 자리로 되돌아간다. 도망치려고 발버둥 치며 멀리 달려왔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다시 일곱 살, 그때로 돌아가버린다. 영도의 말처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는 배우지 못했으니까.


어딘가 갇혀 있다는 느낌은 아마도 벗어나지도 이겨내지도 못하는 다정의 과거가 아니었을까. 내가 느낀 그 답답함은 그녀가 느끼고 있는 감정이 아니었을까. 내게도 있을 그 쓰레기통과 자꾸만 돌아가게 되는 어느 시절에 대한 감정은 아닐까.

정신과 의사는 모두 이럴까? 그 사람이 가진 몇 가지 단서를 보고 완전히 꿰뚫는 게 가능한 걸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그렇다면 영도네 진료 예약하고 싶음) 드라마적 서사를 부여하자면 영도의 눈에 다정은 처음부터 눈에 띄었던 게 아닐까 싶다. 다정은 모르지만 방어 기제가 몸에 배어있는 그녀를 처음 보았을 때도 불안해 보였는데, 몇 번 더 보고 나니 그녀 주변 상황도 위험해 보여 계속, 시선이 그러다 마음까지 갔던 게 아닐까.


4회에 나온 영도의 모습은 확실히 다정에게 마음이 있는 듯 보인다. 그런데 나는 왜 그 모습이 설레기보다 불안하지. 아니 설레는 건 맞는데 불안하기도 했다. 가영과 결혼한 것도 불안해 보이던 그녀를 혼자 보내면 죽을 것 같아서, 곁에 있어주기로 했던 거니까. 인물 소개에 나와 있는 영도는 아픈 형을 위해 헌신하던 어린아이였기에, 아픈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자신의 전부를 내어주어야 한다며 자신을 아끼지 못하는 사랑을 하는 건 아닌가 싶어서.


완벽한 유년시절이 어디 있을까. 모든 과거가 꽃 밭일 순 없지만 돌멩이 속에 떨어진 씨앗도 꽃으로 피어나기도 하니, 이들의 불안한 지난 시간이 서로를 만나 어떤 꽃을 피울지. 두 사람의 봄을 기다리게 된다.


누군가 다가올 때 겁을 먹는 건 내가 사랑에 빠질까 두렵기 때문이라는, 4회에 나오는 영도의 말에 당장이지 구구 빌딩 어디 있는지, 주영도 정신건강의학 연락처 어디 있지 하고 찾았다는 거죠(안 될 이유를 찾기로는 가경 못지않은 저입니다).


하지만 그 말을 그대로 돌려받은 영도. 가경은 그가 자신을 사랑해서가 아닌 걱정해서 결혼했다는 걸 안다. 그래서 괜찮아지자 그에게 이혼을 청했고 아마도 영도는 주저 없이 그 이혼을 받아들였다. 그러고 나서도 이따금 이렇게 영도를 찾아와 상담인지, 빈정인지, 괴롭힘인지 모를 자기 이야기를 한 가득 쏟고 간다.


불안해 보이는 가경이지만 어느 면에선 지금까지 나온 인물들, 다정, 영도, 채준에 비하면 제일 건강한 듯 보였다. 자신의 아픔을 알고 인정하고 믿고 이야기할 사람이 있고, 심각해지기 전에 찾아와 말하는 가경이 사실은 가장 건강한 게 아닐까.


서현진 배우의 작품을 좋아하는 건, 그러니까 믿고 보는 건 그녀가 연기하는 캐릭터들엔 언제나 내가 있기 때문이다. ‘사랑의 온도’에서는 나이와 사랑하는 감정 사이에 고민하는 내가, ‘뷰티 인사이드’에는 내 속에 너무 많은 나 자신을 숨기고 싶은 내가, ‘너는 나의 봄’에서는 행복해지고 싶지만 아직은 이게 나인, 내가 있다. 날 좋아한다니, 뭐라도 해줘야 할 것 같은 그 마음과 달라지고 싶지만 그럴 테지만 아직은 이게 나라고 말하는 다정이 앞에 나는 또 한 참을 서 있었네.


그녀가 작품을 잘 선택하는 건지, 아니 그녀가 각 캐릭터 속에 있는 ‘(저마다의) 나’를 잘 꺼내 연기하는 까닭인지 둘 다-겠지만. 사랑이 왜 무서운 건지, 설렘조차 시작하지 못하는 이유가 아직은 내가 상처투성이라서라는 걸, 나는 강다정을 통해 또 들키고 만 것 같다�


이미나 작가님의 대본은 침착하게 사람을 뒤흔드는(?) 힘이 있는데 그 잔잔함마저 연기하고 있는 서현진 배우 때문에 이 드라마의 모든 대사를 옮겨적고 있는 듯하다. 미치도록 휘둘리면서.

'좋아’, ‘괜찮아’, ‘나쁘지 않아’ 무의식으로 하던 대답에 이런 진심이 숨겨져 있었구나.
회를 거듭해 갈수록 느끼는 건 이 드라마도 대사가 참 따뜻하다는 사실이다. 나도 미처 다 헤아리지 못하는 내 마음이 '그럴 수도 있구나' 생각해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방이 한 뼘 넓어진 기분이 든다. 
그리고 당신의 마음도 그러했던 거구나. 마음이 여러모로 몽글해진다. 내 이야기가 아님에도 듣기만 해도 위안이 된다. 

말로 표현해야만 알 수 있지만, 어떤 말도 꺼낼 수 없고 물을 수 없는 상황이 있다. 
그런 상황에서 '말'은 어쩌면 '대화'는 또 다른 상처가 될 수 있겠다. 차라리 따뜻한 밥 한 끼가 좋다.

당신 곁에 있어주겠다는 그 마음을 국밥 한 그릇에 담아 몸과 마음을 데울 수 있게. 

말은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하는데 나는 침묵도 그렇다고 본다. 말은 혼자서 서말을 꿸 수 있지만 침묵은 혼자 할 수 없으니 조금 더 어렵다. 그래서 아무 말 없이 함께 있어도 어색하지 않은 낯선 사람들 틈에서 침묵을 누릴 때가 있고, 그래서 침묵을 공유할 수 있는 이를 만나면 급격히 사랑에 빠진다.


말 많고 눈물 많은 다정의 삶에 침묵을 공유할 수 있는 영도는 마음을 줄 수밖에 없지 않을 사람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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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이 어린 시절 참고 살았던 미란은 그 집을 나설 때 다신 참지 않기로 했을지도. 난 좋아 이런 미란 씨� 어떤 강점은 큰 아픔이 만들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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