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수 없이 내 잘못이란 생각이 든다. 나는 실수투성이고, 이만치 살았어도 모르는 게 많고, 안목은 부족하니, 아무렴 내 탓이다. 하지만 대게 많은 일은 누구의 탓도 아니다. 그냥 일어난 일이다. happening. 하지만 우린 그런 일들을 전부 다 끌어안고 누구를 탓하고, 그럴 수 없어 나를 탓하고, 계속 그 일 속에 머문다.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이 말은 꽉 막힌 마음이 쉴 수 있는 한 줌의 숨이 되어 준다. 그런 위로다.
자신이 부족해서 쓰레기 자석이 된 것 같아, 그럼 그렇지 이번에도 그렇지 하며 자신을 상처 내는 다정에게, 이번에는 스스로가 아닌 다른 사람, 그녀를 속인 채준도 탓해 보았으면 싶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다정 안에 이 일이 남지 않도록. 그래서 ‘그저 일어난 일’이라고 말하는 영도의 위로는 다정을 닮은 나를 강릉 바다 백사장 위에, 저들과 함께 앉아 있는 기분을 들게 했다.
아직도 범인 찾기에서 채준을 용의자로 두고 있지만 바람이 있다면, 채준도 체이스도 범인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럼 슬프겠지만 울 수라도 있게, 이해하고 연민할 수 있게 말이다.
#너는나의봄 은 다친 마음을 어루만진다.
눈에 보이지 않아 소홀히 여길 수밖에 없는 마음속 외상을 돌본다.
다정의 이야기라고 단정 지을 수 없는 드라마 속 여러 사연들에 대한 영도의 내레이션은 마치 렌선 상담처럼 느껴진다는 ◡̈
사랑은 언제나 마냥 설레는, 좋은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안전거리가 없는 사람에게 갑자기 다가오는 큰 마음은 부담을 넘어 두려움이 된다. 특히 가영이 사는 세상은 서로 간의 거리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곳이었기에 그녀는 가면 위에 또 가면을 써서 억지로 안전거리를 만들어야만 했다. 그렇기에 진짜 나를 알면 실망하지 않을까, 다가오는 사랑이 두렵고 무섭기도 했다.
삶에 치이고 사랑에 치이면서 누군가를 향해 가슴 뛰는 일이 준다. 설사 그런 감정을 느껴도 반갑기보단 큰일 났단 생각이 먼저 든다. 내가 지금 사랑을 할 수 있는 상황일까? 영도 역시 사랑할 수 없는 수만 가지 이유를 떠올린다.
큰일 났다.
큰일이다. 한 사람의 인생이 걸어 들어오는 게 사랑이라면, 사랑은 언제나 큰 일이었다. 어쩌면 이 두려움은 설렘의 다른 모양일지도. 그러니 우리는 또 그렇게 사랑에 빠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가영언니 진심 좋아 ㅋㅋㅋㅋㅋㅋ 자기애가 섞인 자기 검열(?) ㅋㅋㅋㅋ인질 획득까지. 덕분에 영도야 말로 안될 이유를 찾고 있었다는 걸 증명시켜주심
다정은 영도가 정신과 의사니까 그에게 도플갱어에 대해 말하면 영도는 “그건 말도 안 됩니다”라고 말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다정이 하는 암호 같은 말을 알아들었다. 타인의 아픔을 빠르게 느끼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도 아픈 시간을 지나고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굳이 그렇게 말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평소에 나라면 하지 않을 것 같은, 다정한 말이 나올 때가 있다. 거짓인가? 가식인가? 혼란스러웠던 적이 있다. 하지만 날카롭고 뾰족한 내 생각을 굳이 지금 이 순간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말을 아끼고, 평소와 다른 문장을 찾아 말하는 건, 힘든 시간을 지나는 중에 나를 찾아온 당신을 위해서다. 그러니까, 힘내자는 말이고,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는 마음이었다.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는 영도와 자신을 일거수일투족 감시하는 엄마 ◡̈ 하지만 그 시선과 가까움이 기분 나쁘지 않다. 걱정하고 있다는 위안이 주는 안심이 드니까. 다정을 향한 마음을 장모님한테 먼저 고백했네 :) 미란과 영도의 티키타카가 참 좋네 ❤️
괜찮아져야지, 괜찮아야지.
주문처럼 외웠던 것 같다.
시간이 이만큼 흘렀는데 괜찮아야지, 남들에 비하면 이 정도는 별거 아닌데 괜찮아져야지… 나아지고 싶은 간절한 바람에 외우던 주문이었지만, 그 말이 괜찮아져야만 한다는 또 다른 부담으로 불안을 만들고 있었다는 건 나중에서야 알았다.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드라마에 나오는 주인공들처럼 일어난 일에 의연히 대처하거나 쿨하게 넘기고 싶었다. 그렇게 멋있고 싶었다. 하지만 요즘 드라마 속 주인공들은 예전만큼 단단하지 않다. 오히려 조금 물렀다. 실수도 잦고 옆을 꾹 누르면 푹 들어가 버린다. 자주 상처받고 많이 울더라. 하지만 그래서인가 주인공은 자기 주변에는 있는 따뜻한 위로자를 발견했고, 다정함 속에 천천히 자리를 털고 일어나 또 앞으로 나아갔다.
물러 터진 게 그렇게 흉해 보이지 않더라. 무른 상태의 과일은 대게 잘 익었을 때 그 모양을 띤다. 괜찮아지고 있는 중에 있으니, 이미 괜찮은 거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고마운 이런 이야기들을 들려줘서 고맙다. 내 주변 많은 사람들이 이 드라마를 꼭 보았음 싶다.
#그런데_영도샘_혼잣말_좀_크게해주실래요_다정이못듣잖아요
체이슨을 나쁜 놈으로 주시하고 있는데, 같은 얼굴이란 이유로 그런 시선을 내내 받아온 그는 어떤 심정이었을지 … 체이슨의 대사는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던 마음이라 놀랐고 미안했고 그래서 당혹감도 들었다.
8회까지 보니 어쩌면 채준도 체이슨도 범인이 아닐 수 있는 가능성이 보인다. 너무 바라던 가능성인데 그렇다면 두 사람은 정말이지 너무나도 안타깝다. 내내 타인에게 휘둘러 온 삶. 자신의 불안정한 상태를 끝없이 경계하고, 스스로를 안아주지 못했을 그 시간이 안쓰러워진다. 그래서 서둘러 사과한 다정에게 고마웠다. 다정의 그 다정함이 체이슨을 이안이 되게 하는 첫 시작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기획의도에 적힌 작가의 글 중 마음에 계속 남는 문장이 있다.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그 과거를 지금의 우리가 다르게 대할 수는 있을 거라고.”
여기서 말하는 ‘과거’를 지금까지 나의, 개인의 과거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타인의, 상대의, 당신의 과거를 대하는 나의 자세도 그럴 수 있다고, 윤박 님이 연기하시는 두 사람을 통해 말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3회까지 다정이 말을 하면 상대방 얼굴이 아닌 벽이 담겼다. 그러니까 화면 안에는 말하는 다정이나, 말을 듣는 다정만 보였다. 주로 채준과의 대화 장면이 그랬다. 반면 영도와는 투샷이 많았다. 아니면 대화할 때 서로 얼굴이 번갈아 가며 비췄다. 그리고 4회부터는 나란히 걷는 장면이 늘었다. 아직은 서로를 보며 걷진 않지만 그래도 말하면 바로 옆에서 들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발을 맞추며 걷고 있다.
뜨겁다고 말하는 다정에게 따뜻한 건 몸에 좋다고 말한 것 같아 영도는 마음이 쓰였다고 말했지만, 다정은 영도의 진심을 알았다. 그날 밤도 영도는 사이드미러 같았다.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었고, 다정은 영도와 나눈 대화에 충분히 위로를, 안심을 받았다. 그러니 영도의 걱정은 노파심이다. 자신을 걱정해하는 말임을 다정은 알았으니까. 두 사람의 발이 속도를 맞춰 걷듯, 이제 다정도 영도처럼 말하지 않아도 알게 돼 가는 게 아닐까.
오지랖 같아, 내가 마음 쓰는 게 상대에게 부담이 되진 않을까 말을 아끼고 행동을 조심했던 때가 있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하지만 진심을 아는 이들이기에 조심함을 줄여도 되겠단 생각이 들었다. 우린 같이 발을 맞춰 걷고 있으니까.
눈이 내리는 걸 보자 영도는 다정에게로 향한다. 이미 그의 마음은 PD친구의 주책으로 전파를 탔고, 이를 놓칠 일 없는 다정의 엄마에 의해 단톡방에 묶였다. 혼자 간질간질하다 훅 설렌 것일 수도 있다. 다정의 마음이 영도와 같다는 보장 같은 건 없었다. 하지만 핑계 삼을만한 게 눈이라면, 미친 척 마음을 전해봐도 좋을 날이었다.
차도가 공사로 막히자 내려 뛰어갔다. 자신의 심장이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는지, 그런 걸 계산할 틈도 없이. 늦은 봄에 내리는 이 미친 눈을 핑계 삼아야 했으니, 그치기 전에 다정을 만나야 했으니까. 역시 이래서 사랑은 미친 짓이라고 하나보다.
“그냥 신나서 신나게 했던걸 이젠 미친 짓이라고 부르고 그냥 좋아해서 좋아했던걸 이제는 호구 짓이라고 부르고.” 그렇게 사는 게 어른이 된 거라니. 두 사람이 나눈 이 대화가 이런저런 드라마, 책 등에서 만난 문장마다 겹쳐 보였다. 일곱 빛깔 루저가 되는 게 어른이 되는 건지 알았다면,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하진 않았을 테다.
나는 월요팅! 화 요팅! 을 외치며 주말만 바라보며 존버 하다 주말엔 시체처럼 누워있는 흔해빠진 직장인이 되었다. 잘 모르는 사람은 이런 나를 보며 어른이라고도 생각한다. 미친 짓 하나 제대로 못 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바보 같다, 호구 짓이라 여기는 걸 보면 … 어른이 된 게 맞네. 미친 짓 하러 가고 싶다 ◡̈
<너는 나의 봄>을 보면 '그 말이 이런 뜻이었구나' 하는 순간이 있다.
가령 밥 먹고 가자는 말에는 '많이 걱정했다. 네가 괜찮아서 다행이다', '내가 곁에 있어주겠다'는 마음이. 누가 다가오면 갑자기 그 사람이 불편해진다는 말은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할까 봐 너무 무섭다는' 뜻이. 잘 지내냐고 묻는 질문에 '좋아', '괜찮아', '나쁘지 않아'라는 대답의 각 의미가 무엇인지.
그리고 괜찮다고 말해달라는 건 사실 괜찮지 않아서라는 걸. 잘잘못을 따질 일이 아닌 일에 내내 안쓰러운 마음을 붙잡고 있는 사람에게,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선을 넘는 말에 다친 사람에게, 당신이 잘못한 게 아니라는 진실한 위로와 몇 번에 몇 번이라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신뢰할 만한 사람의 믿음이 필요한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 정도면 <너는 나의 봄>은 위로에 관한 101가지 종합사전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