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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보 Sep 07. 2021

진심이 담긴 말한마디가보여준 힘

<유레이즈 미업> (2021, wavve)

지난주 예능을 보다 갑자기 눈물이 났다.  
집엔 엄마와 둘이 있었지만, 엄마는 부엌에서 홀로 분주했고 우는 걸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는데도 나는 갑자기 쏟아진 눈물에 허둥지둥 눈물을 닦았다. 하지만 이내 흐르는 눈물을 그냥 두었다. 조금 있어 프로그램 속 출연진들 모두 나처럼 울고 있었고, 그 안에서 들린 한마디 말에 나는 모처럼만에 울었다.


내가 본 예능은 <식스센스 2>라는 tvN 예능이다. 진짜 속에서 숨겨진 가짜를 찾아야 하는 출연진들이 그날 방문한 곳은 아트 테라피 상담소였다. 이런저런 활동의 끝에 전문가는 출연진들에게 지금 듣고 싶은 말을 물었고, 배우 오나라 씨가 “너 지금 잘하고 있어”라는 말이 듣고 싶다고 했다. 전문가는 오나리 씨를 앞에 세우고 아주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나라야 너 잘하고 있어!” 그 순간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사실 그전부터 울컥, 울컥하고 있었다. 울리기 위한 어떤 장치도 없었다. 오히려 상담 치료를 하고 있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우스운 상황이 더 많았다. 하지만 확신에 찬 목소리로 외치는 소리를 듣자 오나라 씨도, 나도 그만 눈물을 흘렸다. 이어 서로가 서로에게 듣고 싶었던 말을 소리 내 말해주었고 그렇게 그곳은 눈물바다가 됐다. 억지로 눈물을 참으려는 출연진들에게 전문가는 감정이란 흘러가는 거라며, “오늘은 눈물이 조금 오래 머무네”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그 말 덕분에 흐르는 눈물을 그냥 둘 수 있었다.


말 한마디였다. 잘하고 있다는 한 마디. 눈물이 조금 오래 머무르는 것일 뿐, 별 일 아니라는 위로가 담긴 그 한 마디에 놀랍게도 가슴에 응어리진 마음을 툭 하고 풀렸다.


용식(윤시윤 분)이를 불안 가운데서 구한 것도 사실은 오랜 전 받은 따뜻한 말에 있었다.
용식은 취업 준비가 길어지면서 불안증세가 생겼다. 그 중 하나는 핑크색에 의존하는 것이었는데, 그가 핑크색에 본격적으로 집착을 보인 건 두 번째 공무원 시험을 보던 날이었다. 태몽도 관을 쓰고 날던 용이었고, 학창 시절 내내 반장만 해오던 용식이 었지만 6년째 공무원 시험을 중이다. 사랑하던 여자도 더는 기다릴 수 없다며 그를 떠났고, 어머니께 제대로 된 용돈 한번 드리지 못하고 있는 서른한 살의 취준생에 세상은 다정하지 않았다. 잘 나가는 동창들은 그의 처지를 동정하거나, 한심하다고 무시했다.


용식은 합격에 대한 부담과 나아지지 않는 상황 속에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질 때면 과호흡이 왔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그는 핑크색 손수건을 꺼냈다. 핑크색을 보면 진정이 됐다. 그렇게 불안할 때마다 하나씩 사모은 핑크색 물건이 그의 가방 안은 물론이거니와 집안 전체를 핑크색으로 채우게 했다. 나중에서 알게 된 용식이의 핑크색 의존증은 그가 루다(하니 분)를 사고에서 구했을 때, 그녀 다신 다친 자신을 향해 연거푸 괜찮다고 말해주던 그녀의 목소리가, 심장소리가 그날 루다가 입고 있던 원피스의 핑크색으로 각인된 것이었다. 그러니까 용식이에게 핑크색은 ‘괜찮다’는 말의 다른 모양이었다. 꽉 막힌, 한심한 인생처럼 보이는 용식에게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니 그도 자신에게 그런 말을 해 줄 수 없었으리라. 듣고 싶은 말 대신 핑크색 손수건을 꽉 쥘 뿐. ‘힘내, 잘할 수 있어라’는 말을 듣는대도 자격이 필요한 것 같은 씁쓸한 시대를 보는 기분이 들었다.


이런 상황 속에 발기부전까지 온 용식이는 치료를 위해 비뇨기과를 찾고, 그곳에서 첫사랑이었던 루다를 만난다. 낮아진 자존감을 비뇨기적 문제로 위트 있게 풀어낸 <유 레이즈 미 업>은 용식이의 상태를 행사용 풍선 인형에 빗대거나 동네 강아지가 처한 상황과 비교하는 등 다양한 연출적 장치를 통해 <유 레이즈 미 업>만의 유쾌하고 발랄한 분위기를 만든다.


루다는 용식을 치료하기 위해 비뇨기적 치료와 함께 핑크색 의존을 줄이는 훈련을 병행하며 그가 갖고 있는 실질적인 문제에 접근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루다는 자신이 잊고 지낸 진심 어린 말이 주는 위로를 느낀다.


돈과 명예, 외모까지 준수한 남자 친구 지혁(이기웅 분) 연애하는 동안 내내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신경전을 벌이던 루다는 지혁보다 더 나은 남자가 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다시 만난 용식을 돕기로 한 것이다. 잘못된 시작이었지만 용식과 함께하면서 그가 갖고 있는 선한 마음, 상대를 배려하는 자세, 인연을 소중히 대하는 태도에 따뜻한 무언가를 느낀다. 세상은 용식을 아무것도 가지지 못 한 실패자로 보았지만, 용식이는 잃어버려선 안 되는 사람의 기본 됨을 잃지 않고 있었다.


루다는 용식이 보여준 진심을 통해, 진심을 담은 말 한마디가 갖는 힘이 얼마나 큰지 다시 깨닫는다. 그리고 루다도 진심 어린 응원을 건넨다. 자신을 믿어주는 말들이 용식이 안에 쌓이면서 그는 타인의 시선에 무너지지 않고, 다정한 말을 자신에게도 건넬 수 있을 만큼 조금씩 회복된다. 6회에서 용식이 스스로 방 문을 열고 나와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은 그래서 뭉클했다. 용식의 변화가 바라던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고, 소위 말해 잘 나가게 돼서 생긴 게 아니라 그의 안에 심긴 다정한 말들을 더 이상 무시하지 않고 소중히 길러낸, 용식이 안에서의 변화였기에. 




섬세하지 않은 세상은 편의를 위해 큰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그 안에 모두를 넣는다. 그리고 그 안에 들어온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누어 함부로 재단한다. 하지만 우린 모두 다르다. 그러니 일반적인 기준에 자신을 가두지 않고 30점짜리 인생으로 본다 해도 자신만은 자기를 사랑하기로 선택한 용식이의 변화는 시선이 발끝으로 향하는 시기를 보내는 이들에게 충분히 용기를 주었으리라. 


생각해보면 용식이를 인생의 끝자락으로 몬 것도 사람들의 무심한 한 마디였고, 그를 옥상 난간에서 내려오게 한 것도 루다가 건넨 "너도 할 수 있어", 그 한 마디였다. 항상 밝은 모습만 봐서 몰랐는데, 빛나 보이는 연예인들도 '잘하고 있다'는 말이 필요했듯, 사실 우리 모두 이런 다정한 말들이 필요하다. 


 <유 레이즈 미 업>은 오늘도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며 그리고 이렇게 또 긴 글을 쓰고 있는 내게 얼마만큼의 진심을 담아 소통하고 있는지, 세상이 말하는 일반적인 기준으로 미리 선을 긋고 있진 않은지 그리고 나는 나에게도 다정한지 물어왔다. 물론 오늘도 나는 쥐구멍으로 숨고 싶은 무능한 자신에게 좌절했고, 남과 비교하다 나를 깍아내리는 말도 했지만, 그래도 퇴근길엔 "내일 조금 더 잘해보자"는 다정한 말을 건넸다. 100점 만점의 인생은 아니지만, 그 사실이 내 인생을 사랑하지 못하게 할 이유가 되지 않다. 나도 그렇고 당신도 그렇고. 그러니 오늘 잠들기 전 자신에게 다정한 말로 인사해주었으면 좋겠다. “오늘도 수고 많았어요. 충분히 잘 해내고 있어요.” 그렇게 맞이할 내일도 부디, 다정한 시선으로 마음을 지키길. 자신에게도 그렇고 다른 사람에게도 말이다.



<유 레이즈 미 업>은 총 8부작으로 
채널 wavve에서 시청이 가능하다. 

제작사 스튜디오 S 연출 김장한 극본 모지혜
출연 윤시윤, 하니, 박기웅, 김설진, 최대훈, 길해연 등

본 원고는 wavve 리뷰단 활동이 일환으로 '웨이브(wavve)'로부터 소정의 원고를 받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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