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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보 Sep 30. 2021

좋아하는 마음에 찾아오는 굴곡

<알고 있지만,> (2021, jtbc)

나비는 파리에 있는 예술 대학교로 교환학생을 신청했다. 하지만 많은 학교 중 그 학교를 선택했는지 묻는 교수와 조교의 질문에 답하진 못 했다. 파리, 예술의 도시라는 게 선택의 이유가 될 수 있지만, 그건 파리를 선택하는 일반적 이유 중에 하나일 뿐 '나비', 자신이 그곳을 선택한 이유는 아니었다. 질문을 한 이들 자신에게 원하는 대답이 그런 피상적인 답이 아님을 알기에 나비는 말 끝을 흐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그들의 물음은 나비의 고민이 되었다. 왜 교환학생을 그것도 파리로 가려하는 걸까?


좋아하는 건 진작에 찾았다고 생각했다. 많고 많은 과 중 조소과를 선택한 건 좋아하기 마음 때문이었다. 조소과를 선택했을 때 확신, 작업을 하면서 느꼈던 즐거움이 마치 어제 일 같은데, 나비는 한번 실수하면 되돌릴 수 없는 조소 작업 과정에 점점 부담이 생기고 있었다. 아니, 그런 조소 작업의 과정이 매력적으로 느꼈던 적도 있었던 것 같은데 … 사실 이 일을 좋아하는 게 아니었나? 뜨거웠던 마음은 어디로 간 거지? 하나의 물음표가 연거푸 다른 물음표가 되며 나비에게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불안을 주었다.



좋았던 마음이 왜 변할까? 싫었던 게 좋아지는 건 삶에 놓인 부정적인 반응을 줄이는 일이니 반갑게 맞을 수 있지만, 좋았던 마음이 변하는 건 배신자가 된 기분이다. 좋다고, 좋아한다고 크게 외치며 많은 시간을, 큰 마음을 쏟으며 사랑했는데 이제와 싫다고 어떻게 인정할 수 있겠는가. 좋아하는 마음이 변할 수 있는 건가? 애당초 좋아한 적이 없던 건 아닌가? 하지만 변하지 않는 건 없다. 그래서 세상이 '변하지 않는 것'에 가치를 두는 건지도 모른다.


좋았던 마음이 차갑게 식는 이유가 싫어져서만은 아닌 것 같다. 너무 열심을 기울이는 바람에 찾아온 스쳐 지나가는 번아웃일 수도 있다. 작년에 코로나로 인해 시작된 집콕 생활 동안 정말이지 밥 먹는 시간만 빼고 드라마를 보고, 대사 손글씨 작업을 했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났을 무렵 나는 계정을 닫을까 하는 고민이 들 정도로 작업하는 시간이 즐겁지 않았다. 좋아서 시작했던 일이 부담이 되었다. 지쳤던 것이다. 무리한 작업으로 손목과 허리에 통증이 생겼고 안구건조증이 심해져 별도의 처방이 필요할 정도였다. 좋아하는 마음이 크면 커서 괴로울 수 있고, 좋아하는 마음에 취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를 수도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몸이 아파서 어쩔 수 없이 쉬어야 하는 시간을 통해 드라마로 손글씨를 쓰는 일을 왜 시작했는지, 하면서 언제 즐거웠는지 생각해볼 수 있었다. 나는 좋은 문장이 준 순간을 기억하고 싶었고, 이를 나누는 과정에서 쌓이는 시선을 보는 게 좋았다. 이 순간을 오래 즐기기 위해서는 건강한 몸과 마음이 필요했다. 이제는 그때처럼 좋아하는 마음만 믿고 무식하게 행동하지 않는다.


나비에게도 자신의 마음을 확인하는 계기가 생긴다. 갤러리 전에 출품하기로 한 작품이 불의 사고로 망가지고 만 것이다. 한 번의 실수로 되돌릴 수 없는, 조소 작업에 갖고 있는 그녀의 불안이 현실이 되었다. 실의에 빠졌고 포기하려 했지만, 재언의 도움으로 다시 시작한다. 재언의 도움이 있었다고 하지만 그대로 포기할 수  없던 게 그녀의 진짜 마음이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망칠까 두려웠던 부담이 사라지자 자유로운 마음으로 작업에 몰두할 수 있었고, 더 나은 형태로 완성하는 경험을 하기에 이른다. 처음보다 더 커진 작품에 달린 날개에서 그녀가 가졌던 부담을 이겨냈단 생각이 들었다. 그 부담은 곧 조소를 향해 가졌던 좋아하는 마음이었으리라.



좋아하는 마음, 그 자체가 때론 짐이 되기도 한다. 그 마음이 너무 커서 무겁고, 열심을 기울임이 지침을 가져기도 했으리라. 그리고 우린 이 낯선 감정을 알기 편한 '싫어짐'으로 해석해 버렸을지도. 그래서 왜 이 일을 선택했는지, 좋아하는 마음에도 질문을 해줄 필요가 있다. 그녀가 처음 조소를 시작하며 느꼈던 설렘을 알고 있었기에, 이번 작업을 하면서 다시 느낀 그 감정을 통해 아직도 좋아하고 있다는 자신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었을 테다. 나 역시 번아웃을 통해 그 정도로 즐겁게 몰두해본 일이 없었다는 사실을, 이 작업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깨달은 것처럼 말이다.


설사 변한다 해도 배신자가 되는 건 아니다.

“사람의 마음은 하나가 아니고 그래서 이런 마음도 있고 저런 마음도 있다고요. 저는 그동안 제 생각이나 마음이 바뀔 때 왜인지 그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저 자신이 조그 싫었거든요. 자꾸만 지금은 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지 설명해야 하는 때가 많았고 그래서 불안했었고요. 마음은 변할 수 있는 거고 계속 흘러가는 거구나 한 뒤로는 많이 해소되었습니다.” <소설보다 가을 2021> 편에 실린 이주란 작가의 인터뷰를 보는데 이보다 변하는 마음에 대해, 이보다 더 잘 말할 자신이 없어 그대로 옮겨왔다.


그래서 세상은 ‘변치 않는 것’들에 가치를 두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좋아하는 마음으로 쏟은 열정의 시간이 또 다른 길로 인도할 거라고, 더 잘 맞는 걸 찾게 되는 디벨롭의 과정이란 생각을 한다. 다만, 변덕이 아닌 변화가 되기 위해선 '내가 조금 더 좋아하는 것’에 대한 질문이 필요한 것 같다. 이런 변화나 고민은 특정 사람에게만 찾아오는 것이 아니고, 홍역처럼 한번 앓고 나면 다시 걸리지 않는 게 아니니까. 남들이 말하는 일반적인 이유 말고, 나만의 이유를 찾는다면 몇 번의 고비와 무감해지는 시절 속에서도 혼자 길을 잃은 두려움에 갇히지 않게 해 줄 거라 믿는다. 발 밑이 그리 어둡지만 않는다면 우린 또 길을 찾을 것이고. 그러니 좋아하는 마음에 찾아오는 굴곡을 우린 조금 더 기쁘게 맞이해도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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