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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보 Nov 03. 2021

내일의 몫

평균 수명을 감안하면 이런 생각이 버릇없다고 느껴지지만, 요즘 들어 오래 산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매일 아침 익숙하게 마스크와 손 세정제를 챙기며, 하루에도 여러 번 받는 안전 알림 문자에 더 이상 놀라지 않고 차분히 '확인' 버튼을 누른다. 어떻게 지내냐는 안부는 백신 접종에 대해 묻는 물음으로 이어지고, 백신을 맞았다면 아프진 않았는지, 맞을 거라면 별 탈 없이 지나가길 바라는 인사로 바뀐 일상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이 자연스러움에 이따금 놀란다. 사는 동안 이런 일이 있을 줄이야. 살다 보니 별의별 일을 다 겪는다. 살다 보니 별의별 일을 다 겪는다라니. 나이 지긋한 어른들이나 할 법한 말이 무의식 중에 나왔다. 그리고 그 말은 '정말 오래 살고 볼 일이다'는 문장과 이어져 자동 완성되었다.


코로나로 인한 삶이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백신 접종 날짜가 다가오면서 다시금 커진 불안은 '오래 살고 볼 일'로 넘기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접종 자마다 다르게 발현되는 증상은 그 자체로도 불안이 되었지만, 증상의 정도 차가 커도 너무 컸다. 집에서 가장 먼저 백신을 맞게 된 건 고위험군 대상자였던 엄마였다. 내가 자라는 동안 엄마는 큰 수술을 두 번이나 받으셨다. 건강한 사람도 백신 후유증과 부작용이 생겼기에 엄마의 백신 접종을 가족 모두가 불안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예약하는 순간까지 날카로운 의견 대립이 있었지만 엄마의 의지대로 예약을 맞췄다. 그리고 한 달간 정말이지 오랜만에 열심히 기도를 했다.


산다는 게 내일 당장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고, 엄밀히 말하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죽어가는 거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런 문장들이 일정한 주기로 등장하는 건, 알지만 인지하지 않은 체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인간의 모순을 잘 담은 드라마  <어느 날 우리 집 현관으로 멸망이 찾아왔다>의 대사가 생각난다. 영원히 살 것처럼 사는 게 인간이라던 '멸망'의 말.

내가 쫄보고 겁이 많다는 걸 인정한다. 육체적 고통에 대한 두려움은 어릴 적부터 잔병 지레가 잦았고, 아픈 엄마를 보며 컸기에 남들보다 크게 반응하는 부분이 있다. 아무 일 없음을 믿지만 혹시나, 혹시나 하는 불안감으로 엄마의 백신 접종 날짜가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엄마와 보내는 시간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이런 내가 웃기다거나, 사람 참 부정적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나도 이런 내가 웃기다가 어이없지만, 정말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철학적인 문장이 실제로 느껴지면서 효녀가 되었으니까. 그렇게 또다시 살다 보니 별 일을 다 겪네,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엄마는 많이 아팠고, 오래 힘들어하시긴 했지만 2차까지 무사히 접종을 완료했다. 아빠와 언니도 불안하긴 했지만 염려되진 않았다. 오히려 가족의 걱정은 가장 늦게 백신을 맞는 내게로 향했다. 서른 문턱을 잘못 넘는 바람에 대상포진에 연달아 걸렸고, 왼쪽으로 신경통이 후유증으로 남았다. 한 때는 마약성 진통제를 먹었고 컨디션이 안 좋을 때면 도지는 신경통에 얼마 전까진 상비약으로 처방받은 진통제를 들고 다녔다. 뒤늦게 대상포진 예방접종을 맞았는데, 그걸 맞고서도 하루를 꼬박 아팠다. 저마다 다른 백신 반응에 내 마음은 가을날 갈대보다 더 심하게 휘청였다. 그러니 갑자기 또 삶이 아쉽고 아깝고 소중해졌다.


집에 있는걸 가장 행복해하는 사람인데, 겨울 추위를 앞두고 가을이 보여주는 높은 하늘과 뜨거운 태양을 보려고 자주 산책을 나섰다. 그 산책에 대부분은 엄마랑 함께였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자려고 누우면 포근한 이불속이 너무 좋았고 행복했다. 하루를 무사히 끝냈다는 기쁨에 감사했다. 토요일 오전, 중천에 뜬 태양이 반짝반짝 침대를 비추면 이불속에서 빈둥거리며 일어나는 게으른 행복을 느꼈고, 운동장을 달려도 덥지 않은 적당히 서늘한 바람도 삶을 행복하게 했다. 그냥, 자주 감사와 행복을 느꼈다. 백신으로 인한 불안이 마음을 힘들게 할 줄 알았는데 초반의 부담을 사라지고 점점 더 기분 좋은, 감사한 순간으로 채워졌다.



백신 접종을 마친 소감은 괜찮다. 1차에는 아무 생각 없이 신경통이 있는 왼쪽으로 주사를 맞아 왼쪽만 하루 신경통에 시달렸고 그래서 2차는 오른쪽에 맞았다. 둘 째날 하루정도 몸살을 앓았고 삼일째 될 무렵 컨디션은 정상으로 돌아왔다. 근육통도 오래가지 않았다. 걱정이 정말로 팔자라는 걸 인증한 기분도 들었다. 하지만 무사한 오늘이 당연한게 아니니 이또한 감사한 마음을 가진다. 


어제의 후회를 끌고 와 살고, 내일에 대한 염려로 지낸 오늘이었다. 오늘을 살아도 오늘이 없었다. 그래도 이번엔 그 걱정이 나를 망치기보단 순간, 순간 더 열심히 살고 싶어지게 한 건, 신기하고 또 감사한 일이다. 좋아하는 말씀이 있다.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날로 족하다.’ 

내가 예상하지 못한 일이 별안간 내일 생길 수 있다. 그래도 내일의 일이다. 한 날의 괴로움은 오늘로 족하니, 염려보다 하루하루가 소중했던 그 마음을 갖고 살아야겠다는, 다소 진부한 결말을 맺는다. 이런 클리셰는 클래식이라며. 

아는 분이 자주 쓰시는 인사인데 언제부턴가 저도 따라 쓰게 되었습니다. 모두 무탈하시길. 모든 밤 기도하는 마음을 갖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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