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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보 Feb 04. 2022

반짝이던 그해, 우리는

#그해우리는 (SBS, 2022)

오랜만에 졸업한 고등학교에 들렸다.

졸업한 학교 인근에 살고 있기에 매일같이 보고 있었지만, 학교 담벼락을 따라 한 바퀴 뱅 돌아본 건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100m 달리기를 하려면 대각선으로 뛰어야 하는 좁은 운동장은 그때보다 지금이 더 작게 보였다.


졸업 후 나는 많이 자란 걸까, 변한 걸까?

사실 크게 달라진 걸 느끼지 못하고 살았다. 하지만 졸업 후 벌써 20년이 흘렀고, 체감하지 못할 뿐 삶은 많은 부분 달라졌으리라. 감상에 젖을 일도, 감상적인 반응도 줄어드는 재미없는 삶이 되었다는 게 가장 큰 변화일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졸업한 고등학교 들린 건 드라마 <그해 우리는> 때문이다. 가슴속에 있는 첫사랑의 추억을 소환시키고, 없던 학창 시절을 만들어낸다는 '기억 조작 감성' 드라마를 보다 나도 오래전에 잊었던 그 시절 좋아했던 아이가 떠올랐다. 처음에는 그냥 당시 설레었던 느낌이 살짝 들었을 뿐이었는데.. 모락모락 피어난 기억의 조각들이 그 아이의 이름과 얼굴까지 생각나게 했다.


마을버스에서 우연히 본 그 아이의 무엇이 그리 좋았을까. 반항적이게 자른 짧은 머리였던가, 검은색 차이나 칼라에 대비되던 하얀 얼굴이었나. 한번 눈에 띄니 계속 보이던 그 아이를 좋아하게 됐다. 아는 거라곤 교복에 부착돼있던 이름뿐이었는데, 이름 하나로 너와 나의 연결고리를 찾아 마침내 고백까지 했던, 사랑에 용감했던 시절 있었다.


드라마 <그해 우리는>을 보며 나처럼 지난 과거의 어느 한 계절을 떠올리는 반응들이 많았다. 풋풋한 주인공들의 모습은 '내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아련한 기억 속으로 데려갔고, 그렇게 떠오른 추억을 주고받다 코 끝이 찡해지기도 했다.

학교 수돗가에서 이러고 한번씩 장난치고 그러셨죠? :)     

드라마를 보며 주인공을 이해하고 상황을 공감하는 일은 자주 일어난다. 하지만 대부분 거기서 그친다. 브라운관 속 인물은 허구(가상)란 생각 때문에 주인공의 이야기가 내 삶에 들어오기까지 아무래도 거리를 느낀다.  하지만 <그해 우리는>을 보면서 사람들은 감상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경험을 꺼내놓았다. 나는 짝사랑한 시간을, 어떤 이는 현실의 무게 때문에 소중한 이를 떠나야 했던 기억을, 이번 생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는 외로움을, 부족한 모습을 보이면 실망할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을 느끼던 그 해의 일들. 기억을 꺼내놓는 건 말처럼 쉽지 않다. 기억 저편에 묻어두었다는 건 그 만한 이유가 있다. 그럼에도 시청자들이 드라마를 보며 자신의 한 조각을 꺼내 놓게 된 건 아마도 우리가 주인공들이 쫓던 시선을 따라 그 끝까지 가봤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 속 주인공들을 묶었던 매개체는 ‘다큐멘터리’다. 전교 1등 연수(김다미 분)와 전교 꼴등 웅이(최우식 분)를 함께 촬영했던 고등학교 시절의 다큐멘터리가 10년 뒤 역주행을 하면서, 두 사람은 다시 한번 휴먼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이 된다. 당시 두 사람의 친구였던 지웅(김성철 분)은 이번 다큐멘터리의 감독으로 참여하면서 세 사람은 다시 한번 10년 전으로 돌아가 지금을 돌아본다.


다큐멘터리는 현실을 사실적으로 기록한 장르영화다. ‘영화’라는 단어 때문에 오해할 수 있으나, 다큐멘터리에는 허구란 하나도 없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평범한 일상을 그대로 담는 영상이 무슨 재미가 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지웅 사수인 동일(조복래 역)이 말했듯 “특별한 건 없어서 놓치기 쉬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그리고 보여준다. 당신의 놓친 특별한 것이 무엇인지. 사람들은 객관적일 수가 없다. 그래서 가끔 자신을 동떨어진 곳에서 보는 시선이 필요한데 다큐멘터리가 그런 역할을 해준 것이다.


연수는 지웅이 촬영한 영상을 보며 자신이 웅이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볼 수 있었다. 안 좋게 헤어졌다고 생각했는데, 연수는 내내 웃는 얼굴로 웅이를 보고 있었다. 지웅은 출연자의 시선 끝을 따라가 보라던 작가의 조언대로 연수의 시선 끝을 따라가 보았기에 그녀의 마음이 변치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의 시선 끝이 내내 연수를 향해 있었기에 그녀의 마음을 단번에 알아차렸단 사실을 깨닫게 되자, 잘 숨겨왔다고 생각한 연수를 향한 자신의 마음이 사실 그렇지 않았음도 알게 된다.



웅의 시선은 다큐멘터리 안에 작업하는 모습으로 담긴다. 그의 직업은 건물 일러스트다. 그가 건물만 그리는 건, 건물은 변치 않기 때문이다. 어디 가지 않고 그 자리에서 오래 있다. 세월을, 추억을 간직한 건물을 그리며 웅이는 안정을 느꼈다. 사람은 변하고 떠날 수 있다는 불안이 내포된 시선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가 처음으로 그린 사람이 연수였다. 최근도 아닌 두 사람이 처음 만난, 입학식 때 연수. 연수와 지웅을 통해 ‘시선의 끝’을 보았다면, 웅이를 통해선 ‘시선의 시작’을 보았다. 둘 다 내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는 지표로, 이들은 시선을 따라가 봄으로 자신들의 마음을 확인했다.


 ‘다큐멘터리’의 또 다른 특징은 모두가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배우나 연예인처럼 특정 인물만 주인공이 될 수 있는 드라마와 달리 현실을 그대로 담는 다큐멘터리에서는 모두가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사람은 물론 동물도 식물도 심지어 의자나 핸드폰과 같은 사물도 주인공이 된다. 지웅은 오래 연수를 짝사랑해 오면서 자신은 이번 생에 주인공이 아니라고 생각해왔다. 그의 짝사랑을 영화 ‘러브 액츄얼리’에 비유하는 후배 감독에겐 자신의 인생은 아무도 보지 않는 다큐멘터리라고 말한 적도 있다. 하지만 지웅도 마지막엔 연수와 웅이처럼 또 다른 다큐멘터리 주인공이 된다.


출연자의 일상이 주인공이 되는 다큐멘터리는 그 안에 '별거 없는 우리 일상까지 더해'질 때 그제야 바로소 '아 이게 사람 사는 이야기구나' 작품이 완성된다고 했다. 연수와 웅, 지웅의 시선을 따라가던 시청자인 우리는 자연히 그들의 시선을 받아 각 자의 삶으로 가져왔다. 그렇게 '별거 없는 우리 일상까지 더해'지니 <그해 우리는>은 단지 드라마가 아니라 사람 사는 이야기로 완성되었다.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이 된 연수와 웅, 지웅처럼 드라마 <그해 우리는>은 시청자인 우리도 자연스레 주인공의 자리에 앉힌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저들의 이야기, 저들의 지난 풋풋한 어느 시절이 아닌 <그해 양보는>처럼 나를 주인공으로 삼아 지난 시간을 떠올리게 한 것 같다.



“고만 고마한 인생 안에도 때에 따라 반짝반짝 떠 다니는 것들이 있어. 그때마다 그걸 안 놓치고 지 별주 머니에 잘 모아둬야 해야. 그래야 난중에 힘들고 지칠 때 그 별들 하나씩 꺼내 보면서 그 시간을 견딜 수 있어.”

#이번생은처음이라 (tvN, 2017)


<그 해 우리는>을 보며 나눈 이야기 중에는 다정하지 못 한 '그 해'도 있었다. 계절에 비유하자면 매서운 겨울 같았다. 하지만 그 계절을 지나온 지금 다시 떠올린 '그 해'에는 그땐 미처 알아차리지 못 한 따듯한 바람도 있었음을 발견하게 됐다. 지나간 기억은 아무 힘이 없는 듯 하지만 생각지 못한 위로와 다감한 감정들이 오늘의 감사가 되었다.  


<그 해 우리는> 은 시청하는 그 순간보다 보고 난 후에 마음의 일렁임이 컸다. 주인공의 심리를 색감을 통해 그려낸 감독의 연출적 비하인드를 알고 보니 그냥저냥 풋풋한 이야기가 아니었구나, 마음이 일렁이던 이유를 알 듯 했다. 봄부터 겨울까지 4계절을 다 담고 있는 이 드라마는 언제 꺼내보아도 좋을 듯 하다.


사는게 바쁘고, 매일 비슷비슷하게 흘러가니 무뎌지는 일상을 다시 꺼내 보면서 놓친 특별함을 발견하면 좋겠다. 그렇게 소중한 기억들을 별 주머니에 잘 모아 또 어느 험상궂은 계절의 그 해를 지나가 봐야지.


<그해 우리는>은 웨이브에서 관람 가능!

지웅의 특별한 소식이 담긴, 더 무비(THE MOVIE) 스페셜판은 오직 웨이브에서만 관람 가능 :)


그 해 우리는 16부작

제작사 스튜디어N, 슈퍼문픽쳐서 방송사 SBS

제작진 연출 김윤진, 이단 극본 이나은

최우식, 김다미, 김성철, 노정의, 박진주, 조복래 안동구, 전혜원 등 출연



본 리뷰는 웨이브로부터 소정의 원고료를 지원받아 주관적 평가를 포함하여 작성되었습니다.

#웨이브 #웨이브그해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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