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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보 Mar 02. 2022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악의마음을읽는자들 , 2022, SBS

누군가를 ‘안다’고 말할 때, 그 말은 내게 설렘을 주는 말이었다.

특히 어떤 이의 마음을 아는 일은 애정이 담겨야 가능한 일이기에 나는 그렇게 헤아리는 일들을 좋아했다. 가령 차를 뜨겁게 마시는 걸 좋아하는 이를 위해 잔부터 신경 써서 데워 놓는다거나, 그가 좋아하는 작가의 신작 소식이 들리면 그 책을 가장 먼저 선물하는 건 나였으면 한다. 받고 즐거워할 이의 표정을 보는 건 그를 아는 나만이 느낄 수 있는 기쁨이겠다. 내가 행복이라 느끼는 것들 역시 나를 아는 이들의 작고 큰 헤아림들에서 비롯되었기에 내게 누군가에 대해, 무언가에 대해 알아가는 일을 좋아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알기 위해 노력하진 않았다. 마음을 힘들게 하는 관계에 한해서는, 그 관계가 일방적인 무례함으로 가득하다면, 애써서 알아가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고, 이 세대 역시 그럴 필요가 없다는 분위기다.


하지만 여기,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알고 싶지 않은 흉악범들을 찾아가서 만나는 사람들이 있다. 하영(김남길 분)과 영수(진선규 분)는 전국의 교도소를 돌면서 살인죄와 같이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들을 인터뷰한다. 저들의 범죄 동기, 방법이 아닌 범죄를 저지른 OOO의 가족관계부터 자라온 환경, 기억에 남는 즐거운 경험이나 기분 나쁘고 화나는, 슬펐던 일들을 묻는다. 이러한 질문은 보통 한 사람을 알아갈 때 생기는 질문들이다. 그러니까 두 사람의 인터뷰 목적은 수사 보완이 아니다. 범죄자들을 알기 위해, 그 사람을 알아가기 위해  악의 마음을 인터뷰하러 다닌 것이다.


누군가를 이해하는 일을 설렘에 비유하며 낭만적인 일처럼 말했지만, 사실 말처럼 쉽지 않다. 이해란 머리가 시키는 이성의 영역처럼 보이지만, 그 사람이 되어,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마음의 영역이다. 시간과 감정적, 육체적 에너지 모두가 엄청난 양으로 쓰인다. 좋아하는 사람을 향해서 쓰기에도 부족한 그 에너지를 하영과 영수는 왜 범죄자를 이해하기 위해 쏟았을까? 심지어 ‘그화(化)’돼가는 과정에서 마음이 온통 검게 물들어 괴로운 지경에 빠지지만, 그럼에도 저들을 알아가려고 했다. 그건 범죄의 양성이 달라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드라마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은 요즘 예능에서 자주 뵈어 친숙해진 프로파일러 권일용 전 정경의 이야기를 담은 동명의 논픽션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하영은 권일용 전 경장을, 국영수 팀장은 윤외출 부장을 모티브로 한 역할이다). 드라마는 연쇄살인범을 다룬 이야기가 아닌, 연쇄살인범을 ‘쫓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주려 해고, 원작은 프로파일러라는 직업의 심리적 측면과 새로운 수사 방법을 관철시키는 과정을 담고 있다. 원작과 이를 각색한 드라마는 적절히 조화를 이루어 공통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언제부턴가 프로파일러라는 직업이 우리에게 자연스러워졌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분명 생소했다. 일반인인 내 눈에도 범죄자들을 인터뷰하러 다니는 두 사람이 이해가 가지 않는데 1990년대 현장에서 범죄심리를 분석하여 수사한다는 두 사람은 얼마나 냉소적인 시선을 받았을까? 왜 범죄자를 인터뷰하러 다니냐고 온갖 무시와 견제 속에서도 국영수 팀장은 한국에도 머지않아 미국처럼 동기가 없는 범죄가 발생할 것을 예견했기에 프로파일러 팀을 만드는 일을 끝까지 관철시킨다. 그가 프로파일러 팀을 주장할 때까지만 해도 “모든 살인 사건에는 피해자가 죽을 만한 이유가 있다.”는 <수사반장>의 실제 모델이었던 최중락 형사의 말처럼, 범죄 동기가 뚜렷했다. 하지만 급격한 경제성장을 지나서 IMF가 터지면서 기존의 수사로는 도저히 잡을 수 없는 유영철, 강호순, 정남규 사건들이 터진다. 국영수 팀장이 예견했지만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그런 사건들이 한국에서도 일어나고야 만다. 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정상의 범주를 벗어나 오로지 살인이 목적인, 무작위에 무대포 범행을 저지른다. 그들을 잡기 위해선 그리고 앞으로 일어난 범죄를 막기 위해선 저들을 알아가는 것은 중요한, 필요한 수사방법이었다.



영수 팀장이 하영에게 프로파일러를 권하는 장면에서 영수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프로파일러의 요소로 ‘감수성’을 말한다. ‘타인에 대한 감수성’, 결국 이들이 하는 일은 사람의 마음을 분석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타인에 대한 감수성’이란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그 말이 ‘타인을 향한 이해’로 받아들여졌다. 이해란 수용을 위한 과정일 수도 있지만, 무언가를 알기 위해 첫 번째로 거치는 일이 아닐까 싶다. 모르는 문제를 푸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 공부인 것처럼, 이들은 새로운 범죄 유형에 앞에 그 범죄를 저지른 이들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한다.


물론 이해는 모두 공감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프로파일러들의 이해는 공감과 별개다. 그래서 더 괴로웠을, 그리 유쾌하지 않은 일. 범죄자들을 인터뷰하는 장면은 시청자로서 보기만 하는데도 힘들었는데, 사람을 이유 없이 참혹하게 죽여놓고서도 미안해하지 않고, 사과는 하지만 사과의 대상이 없는 그들을 대하는 일은 '유쾌하지 않은 일'이란 표현으로 부족하다. 극 중 하영은 “악마에게 감정이 있을 거라 추측한 것은 나의 오만이었다. 그에겐 감정이 아닌 자기 위안과 합리화만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정상의 범주를 벗어난 저들을 직접 대면해야 했을 하영과 영수는 무너지는 마음을 붙잡으며, 그들 안으로 걸어 들어간다. 범죄자의 심리를 분석하는 수사를 포기하지 않는다. 이들에게 있어 이 일은 하고, 말고의 영역이 아닌 기필코 해내야 하는 사명이었다.


권일용 전 경정과 윤외출 부장은 사건들을 마주할 때마다, 그리고 범죄자들을 인터뷰하고 돌아올 때마다 ‘왜 똑같은 환경에서 누군가는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능력을 상실하고 괴물이 되고, 누군가는 정상인으로 남는가’, ‘어떻게 한 인간이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을 이토록 완벽하게 상실할 수 있는가’ 질문을 던지게 됐다고 한다(원작 발췌).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해서 아직 제대로 된 답을 찾지 못했다. 다만 이들의 수사는 IMF, 밀레니엄이라는 변화하는 시대를 향한 이해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는 시대 속에 한 사람을 알아가는 노력으로 보였다.


답은 찾지 못했고, 답을 찾는 과정마저 고단했음에도 포기하지 않음으로 두 사람을 시작으로 프로파일러 1기 팀이 생긴다. 그리고 지금까지 계속해서 프로파일러들은 양성되고 있다. 극악한 범죄를 저지른 이들을 잡고, 대비하는 수사가 다음 세대를 향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행한 고단한 이해와 노력은 그런 면에서 내가 좋아하는 이해의 과정을 닮았다. 비록 이들이 읽고 있는 건 ‘악의 마음’이지만, 결과는 우리 모두를 향한다. 쉽지 않은, 심지어 수사 과정에서 주목받는 자리도 아님에도 묵묵히 범죄심리 수사 과정을 만들고, 그 자리를 지켜준 수사관분들께 감사한 마음이다.



그래서 드라마를 볼 수록 걱정되고 염려되는 마음이 커졌다. 수사관 분들의 마음이 어둠에 물들고 산산조각 나지 않을까, 그럴 때 어떻게 그 마음들은 지켜지고 회복될 수 있을까? 범죄자를 인터뷰하고 온 날 괴롭고 괴로워하며 왜 자신을 프로파일러로 불렀냐고 원망하듯 묻는 하영에게 영수는 미안하다 했지만 다시 돌아간다 해도 너를 선택할 거라고 했다. 하영도 “저도요”라고 답한다. 그러니까 하영과 영수는 다시 돌아간다 해도 프로파일러가 되었을 것이다. 누군가를 향해 이해를 갖는 일이 지금처럼 상처를 받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올 수도 있겠지만, 두 사람이 서로를 알고 의지하며 이해를 통해 느낀 위로와 행복이 저들을 지켜줄 거란 믿음이 들었다. 그리고 우리 또한 이러한 이해의 노력 속에 타인의 고통에 함께 아파하고, 슬퍼할 줄 아는 사람으로 자신을 지킬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악마와 다를  있는 , 어쩌면 인간의 마음을 어루만질  있다는  있지 않을까. 마음을 어루만지는 일이 얼마나 고귀하고 중요한 것인지를 다시금 생각할  있길. 더해, 자신의 마음까지 보듬을  있는 존재가 되길.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기획의도 중에서>”


우리가 잃어버리지 말아야  '이해' 대해 다른 시선으로 생각해볼  있는 <악의 마음을 는자들> 웨이브에서 보실  있습니다.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12부작)

제작사 스튜디오 S 방송사 SBS

기획 이슬기, 김미주 연출 박보람 극본 설이나

김남길, 진선규, 김소진, 이대연, 김원해, 공성하, 려운, 정순원, 김혜옥 등 출연


본 원고는 wavve 리뷰단 활동의 일환으로 '웨이브(wavve)'로부터 소정의 원고료를 지원받아 주관적 평가를 포함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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