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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보 Mar 14. 2022

'진짜'만이 줄 수 있는 파장

<사내 맞선> (SBS, 2022)


따스한 기운이 완연해진 요즘이다. 나무에는 꽃 봉오리가 맺히고 가벼워진 사람들의 옷차림에서도 봄이 옮을 느낀다. 이 시기의 밤을 좋아한다. 자발적 산책을 불러일으키는 봄 냄새나는 밤공기, 설렘으로 물드는 봄이 오고 있음을 느낀다. ‘사랑’이라는 단어는 어느 계절에 두어도 어울리지만 설레는, 풋풋한 감정은 아무렴 봄을 닮았다. 그래서 우리가 봄의 기척만 느껴도 이렇듯 설레어하며 들뜨는 것 같다. 새로 편성된 드라마들 속에서도 핑크빛이 맴돈다.


새롭게 시작한 로맨스 장르 중 드라마 <사내 맞선>은 ‘아는 맛이 무섭다’라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친구 영서(설인아 분)를 대신해 맞선 자리에 나가 온갖 진상 연기로 맞선을 파토 내던 하리(김세정 분)는 맞선 시장에 영서의 소문이 이상하게 나면서 자연스럽게 가짜 맞선녀의 생활을 접었다. 취업 후 바쁘게 지내던 하리에게 영선은 다시 한번 가짜 맞선녀가 되어달라고 한다.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라는 영선의 부탁에 못 이겨 가짜 마린 그룹의 외동딸 ‘진영서’가 되어 나간 맞선 자리에서 맞선 상대로 자기가 다니는 ‘GO푸드’ 사장, 강태무(안효섭 분)를 만난다.


드라마 <사내 맞선>은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사실 친구를 대신해 맞선을 보러 가는 설정이나, 가짜 상대를 좋아하게 되는 남주의 설정은 이미 많은 드라마에서 사용한 진부한 소재다. 하지만 다 같은 떡볶이라고 해서 모든 집의 맛이 같지 않고, 우린 익숙하고 친숙한 맛의 무서움도 잘 안다. 우리가 떡볶이를 놓지 못하듯, 진부한 소재임에도 드라마 <사내 맞선>은 좋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건 잘 나가는 떡볶이 집에 비밀 레시피가 있듯 <사내 맞선> 만의 비법이 있기 때문이다.

가장 큰 특징이자 유쾌한 부분은 웹툰의 특성을 드라마에 잘 녹였다는 점이다. 맞선을 보며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던 태무는 첫 맞선에 누가 나오든 결혼을 할 생각이 있었다. 그래서 맞선을 파토내려온 하리는 역으로 청혼을 받게 된다. 그런 그를 떼어내기 위해 하리는 아무 말이나 하던 중 태무가 시조새를 닮아서 싫다고 한다. 그 말에 충격을 받은 태무의 반응도 웃겼지만, 이후 태무에게서 카톡이 오든, 전화가 오든 시조새 울음소리와 3D로 시조새가 튀어나오는데, 그럴 때마다 귀여운 웃음을 짓게 된다. 이렇듯 드라마의 분위기는 밝다. 보통 잘 사는 친구 대신 맞선을 보러 가는 주인공은 돈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두 사람의 우정이 한 남자를 동시에 사랑하게 됨으로 흔들리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하지만 드라마 <사내 맞선>은 괜한 갈등구조를 만들지 않는 점도 좋았다.


태무와 하리의 관계만큼 기대를 갖게 하는 서브 커플로 영서와 성훈(김민규 분)의 관계를 설정하고, 드라마 속에서 등장인물들이 즐겨보는 ‘굳세어라 신금희’라는 드라마를 통해 재벌 남주와 평범한 여주의 사랑에 걸림돌이 될만한 뻔한 고구마를 비꼰다. 그런 장면들을 통해 우린 그렇게 뻔하게 가진 않을 거라는 연출의 의지를 느꼈다고나 할까? 직원을 ‘여직원’으로 따로 지칭해 부르는 계빈 차장(임기홍 분)의 여러 부분을 잘(?) 정리해주는 여의주 부장(김현숙 분)과의 장면들을 통해서는 이 드라마가 하리에 대한 이야기의 방향이 적어도 ‘신데렐라’는 아닐 거란 생각도 들었다.  흔한 소재지만 세세한 부분에서 요즘 감성을 놓치지 않고 있어, 마냥  유치하지 않은 로맨스 코미디를 만들어가고 있다.


드라마 <사내 맞선>은  12부작으로 편성이다. 남주에게 어떤 비밀이 있어 보이지만 그것 외에 큰 갈등이라고는 하리가 자신의 정체를 ‘금희’라는 부캐를 만들어 속였다는 것뿐인 상황을 생각하면 일반적인 16부작은 다소 길다. 오히려 짧은 회차에 속도감을 높여 네 사람의 복잡 미묘한 관계에 집중한 선택이 지혜로운 한 수가 된 듯싶다. 실제로 4회 만에 태무와 하리는 가짜 맞선 사이에서 가짜 연인 사이가 되었고, 하리와 시간을 보내는 사이 태무는 그녀에게 호감을 갖게 된다.  맞선 보는 시간이 아까워 거짓 연인을 만들던 태무가 하리와의 가짜 1주년을 지키기 위해 엄청난 스켸쥴 조정도 마다하지 않고, 7년간 한 사람을 짝사랑해 온 하리를 이해하며 위로하는 모습 속에서 그에게 일어난 변화가 느껴졌다. 마치 한 겨울 내내 얼어붙은 땅을 뚫고 봄의 새싹이 피어오르듯, 능률과 효율만 따지던 얼어붙어 있던 태무의 마음속에 사람을 향해 “진짜” 감정이 피어난 것이다. 4회 엔딩에는 태무가 자신이 만나온 가짜 연인 ‘신금희’가 사실 자신의 회사 ‘GO푸드’ 직원 신하리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두 사람의 이야기는 가짜에서 진짜로, 사내 맞선은 사내연애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될 예정이다.

하나의 거짓을 진실로 만들기 위해선 일 만개의 거짓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하나의 거짓을 만 개의 거짓으로 진실을 만들었다면, 만 개의 거짓을 진실로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거짓이 필요할까? 거짓으로는 진짜를 만들 수 없다는 뜻이다. ‘가짜’는 쉽고 편해 보이지만 영원할 수도, 미래도 없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가짜에 가까울수록 진짜가 선명히 보인다. 태무가 자신에게 가짜 연애 말고 진짜 연애를 해보라던 하리의 말을 짐짓 듣고 있던 것도 그 안에 움직이기 시작한 진짜 감정을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돌아가는 곳이 집이라면 자신은 집이 없다던 선겸에게 필요하면 가짜라도 가지는 것이 어떻겠냐며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던 드라마 <런 온> 속 미주의 대사가 떠올랐다. 하지만 결국 두 사람도 가짜에서 진짜가 된다. 어쩔 수 없이 우린 거짓보다 진심에 끌리며 반응한다. 진심이 될수록 모든 것을 다 쏟아붓고 엉망이 된다 할지라도, 결국 그 길을 간다. ‘가짜 연인’이란 소재가 언제나 진실한 사랑이 되어 끝나는 건 로맨스 드라마가 추구하는 해피엔딩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야 말로 '진짜'이기 때문이 아닐까?


전형적인 구조일수록 전하는 메시지에는 순수함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나는 이 드라마의 단순한 이야기 구조를 통해 진심이 전해질 때 일어나는 일, '진짜'만이 줄 수 있는 파장을 볼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언제나 그렇듯 나의 과한 생각임을 안다. 다만 코로나 3년 차, 이 생활이 길어지면서 이제 삶이 돼버린 거리두기는 그렇지 않아도 서툴렀던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 맺기를 더욱 어렵게 만들며, 진심을 숨기는 게 훨씬 이득인 것처럼 말하는 환경 속에서 나는 이런 순수한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거짓된 마음과 싸울 힘이 생기는 것 같다. 조금 더 진실한 사람이 되고 싶다. 내 감정에도, 생각에도, 삶에도. 다가오는 인연에도.


공기부터가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하는 이 계절에 어울리는 드라마 <사내 맞선>은 웨이브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부디 설레는 봄을 ‘진심으로’ 즐기시길. Enjoy Spring!


 


사내맞선 (12부작)

제작사 크로스픽쳐스 방송사 SBS

제작진 연출 박선호 극본 한설희, 홍보희

안효섭, 김세정, 김민규, 설인아, 이덕화 등 출연


 원고는 wavve 리뷰단 활동의 일환으로 '웨이브(wavve)'로부터 소정의 원고료를 지원받아 관적 평가를 포함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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