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심판> (넷플릭스, 2022)
아프리카에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속담이 있다.
한 아이가 자라는데 부모의 역할뿐만 아니라 사회와 국가의 역할도 중요하다는 의미로 우리에게도 익히 알려진 외국 속담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소년심판>은 아프리카 속담을 뒤집어 현실을 꼬집는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어. 이를 거꾸로 말하면 온 마을이 무심하면 한 아이를 망칠 수도 있다는 뜻이 돼.”
19세 미만 소년이 비행을 저지르면 소년들의 성품과 행동 교정을 위해 소년보호처분 재판, 소년재판이 열린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소년심판>은 이런 소년범들의 재판을 담당하는 지방법원 소년부의 네 명의 판사와 그곳에서 만나는 소년범들에 관한 이야기다. <소년심판>의 티저 영상이 올라왔을 때 소년범을 미화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의 시선이 있었다. 우리가 본 소년범죄는 그 나이에 행했다기엔 너무나도 잔혹한 사건들이 많았다. 언론은 사건의 잔혹성을 부각하고, 여론은 소년법 처벌규정이 너무 약하다, ‘촉법소년’을 폐지해야 한다 등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애석하게도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던 사람 중 한 명이다. 하지만 <소년심판>을 보고 나서 법의 존폐를 논하기 앞서 더 중요한 것,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게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건 바로 “관심”이다.
김혜수 배우가 연기한 심은석 판사는 과거 한 사고를 겪게 되면서 소년범을 혐오하게 된 인물이다. 반면 김무열 배우가 연기한 차태주 판사는 소년범을 사랑으로 대하는 인물로 심 판사와 대비되는 인물로 등장한다. 보통 이렇게 반대의 인물이 등장하면 좋은 쪽으로 그러니까 이 작품에서는 소년을 혐오하던 심 판사가 차 판사가 가진 사랑의 자세로 변화되는 과정을 그리는 게 기존 작품들에서 많이 봐온 구성이라면 <소년심판>은 두 인물이 가진 신념(혐오와 사랑)을 그대로 고수한다. 이는 <소년심판>이 가진 소년을 향한 균형 잡힌 시선이자 시청자에게 전하려는 메시지로 다가왔다. 이렇게 모든 방식으로 작품은 내내 말하고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소년들을 향한 관심이며, 그 관심은 균형 잡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소년심판>은 혐오와 사랑이라는 양극단의 시선에서 여러 에피소들을 통해 소년범죄의 현재와 현실적 고충을 보여준다. 그 이야기들은 판단을 하거나, 어떠한 의견을 내놓기에 앞서 소년들의 현실이 어떠한지 알고는 있는지 내게 묻는 듯했다. 아이들에게는 범죄에 노출되기까지 많은 이야기가 있었다. 단순히, 한 번에 범죄를 저질러 소년 재판까지 오는 일은 극히 드물다. 극 중 영나는 엄마를 생각하는 마음이 큰 아이였는데 영나의 엄마는 죽을병에 걸렸다고 아이를 속임으로 양육을 포기했고 홀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영나는 배신감에 더 폭주했고, 신우는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잘못된 선택을 했다. 유리는 가정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범죄의 유혹 앞에 놓였다.
소년 사건에서 우리가 신문이나 뉴스를 통해 알게 되는 강력 범죄는 1%에 불과하다. 그 외에 학교 폭력 15% 나머지는 가정 폭력과 불화 등을 피해 시도한 청소년 비행이라는 통계는 시작이자 마지막이 되는 가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말해주고 있다. 만약 가정이란 울타리가 튼튼했다면 이들을 법정에서 만나는 일은 없었을지 모른다. 물론 환경이 나쁘다고 해서 모두 죄를 짓지 않는다. 유리는 범죄의 유혹 앞에서 자신의 삶을 지키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 노력은 처참하고 처절했으며 만약 심 판사를 만나지 않았다면 끝까지 지켜질 수도 없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아직 부모와 어른들의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이 범죄의 유혹 앞에 스스로를 온전히 지킨다는 건 이처럼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지 모른다. 그래서 유리에게 있어 심 판사가 가진 소년에 대한 관심은 단순한 도움을 넘어선 구원처럼 보였었다.
가정을 지키는 건 부모인 어른의 몫이지만 안타깝게도 부모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는 어른도 많다. 그래서 심 판사는 아이들에게 처분을 내리는 동시에 부모들에게도 교육을 명한다. “소년은 결코 혼자 자라지 않습니다. 오늘 처분은 소년에게 내리지만 그 처분의 무게는 보호자들도 함께 느끼셔야 합니다.” 가정이란 울타리가 튼튼하지 않다면 그다음으로 둘러진 학교와 사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아이들은 보호를 받아야 한다. 한 아이가 어떤 상황인지, 그런 선택을 하게 된 원인과 이유를 알지 못하고서 소년법의 목적인 ‘소년이 건전하게 성장하도록 돕는’ 일을 완성하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러한 관심보다 결과에 대한 엄벌의 목소리만 크다. 이 모두를 아우르고 있는 국가란 울타리 역시 소년들에게 든든한 믿을 주지 못 한다. 아이들은 갈 곳이 없고 그렇게 범죄의 유혹에 넘어가는 안타까운 반복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tvN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호통판사로 유명한 천종호 판사가 출연한 적이 있다. 소년 재판만 십 년 가까이 맡아온 천종호 판사는 인터뷰 말미에 이런 말을 했다. “저는 엄벌은 하되 처벌한 이후 한 사회의 어른으로서 아이들의 재비행을 막기 위해 노력해왔고.. 국민들께서는 범죄 결과가 보도되었을 때 거기에만 집중하지 마시고, 그 뒤에 이 아이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한 번이라도 봐주시면 그 아이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 우리 시회가 좀 더 나은 방향으로 가는데 많은 힘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천종호 판사의 책 <내가 만난 소년에 대하여(우리 학교, 2021)> 에서 천 판사가 판결을 내리기 전 고심하는 장면이 반복되어 등장한다. 판결은 크게 몇 가지로 나눌 수 있지만, 천종호 판사는 소년들에게 도움이 될 판결을 내리려 애쓴다. 그래서 판결을 내리기 전에 유명 가요를 개사해서 아버지에게 읽어보게 함으로 소년의 마음이 어떤지 알게 하기도 하고, 소년범에게 “잘못했습니다, 부모님 사랑합니다” 등 평소에 하지 못 했던 말을 소리 내어 외치게 함으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죄의 무게를 느끼게 하기도 하며, 도벽이 심했던 어느 자매에게는 고민 끝에 돈이 든 지갑을 선물해주기도 했다. 생계가 어려워 시작된 도벽이 큰 범죄로 이어졌던 자매는 돈이 든 지갑을 보며 어리둥절해 하지만, 천 판사는 '부모로부터, 사회로부터 따뜻한 온기를 받아 보지 못하고 자란 아이들이 세상에서 버림받았다는 절망으로 자신을 성급히 포기하는 일만은 없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지갑을 선물했다고 한다. 법에 맞는 형량을 정하기 위해 고민하는 것이 아닌, 한 소년이 앞으로 살아갈 미래까지 생각한 천 판사의 판결은 한 사람을 향한 ‘관심과 이해’의 노력으로 보였다. 죄의 잘못을 깨닫기 위해 엄하게 처벌은 내리지만 결국 그 아이를 위한 것이란 마음을 법정에 선 소년들도 분명 느꼈으리라 생각한다.
천종호 판사의 이러한 모습은 심은석 판사가 갖고 있는 ‘혐오’에 대한 자세와 닮았다. 심 판사의 ‘혐오’는 과거 한 사건으로 소년범을 혐오하게 되었지만 싫어하고 미워한다 할지라도 소년을 위해서라면 최선을 다 한다. 몸을 아끼지 않는다. 냉정함은 유지하되 어떤 색안경도 끼지 않으려 한다. 의심하고 경계를 하지만 그건 소년들을 이해하고 알아가려는 심 판사만의 방식이었다. 차 판사가 공감과 믿음을 먼저 줌으로 소년들을 알아가려 한 것처럼. 이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소년을 알아가려 했고, 소년을 위함이라는 진심을 알게 되고 나서는 서로의 방식을 존중하며 때로는 서로의 방식으로 소년들을 바라보기도 한다.
그래서 소년이 저지른 범죄가 피해자의 삶을 어떻게 무너트렸는지 바로 보게 했고, 죄에 책임을 진다는 일이 얼마나 크고 막중한 무게를 지니는지 깨닫게 했다. 그래서 이 재판장에서 다시 만나지 않도록, 그것이 심은석 판사가 소년을 혐오하면서도 소년 재판부로 온 이유이자, 소년법의 목적이기도 했다. “비단 가해자나 피해자를 떠나서 아이들이 다시 범죄에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저희 소년 형사 합의부의 목적이기도 하고요." 1화에 등장 한 차 판사의 대사는 그 뜻을 내포한 다른 형태의 문장으로 에피소드마다 등장하면서 우리 사회가 어떻게 하면 소년이 건전하게 성장하도록 도울 수 있는지 계속 생각하게 했다.
우리 모두는 가능성이 무궁한 존재로 서로의 인생을 섣불리 단정 짓지 않으려 한다. 무궁한 가능성을 믿으며 응원하며, 실패의 순간에서도 기회를 만들어 주려고 한다. 저마다의 인생이 가치 있다면 소년들의 인생도 마찬가지다. 소년들도 일정 나이가 지나면 사회에 나와 구성원으로서, 한 사람의 몫을 하는 어른이 될 것이다. 아이들이 자라 건강한 사회의 구성원이 될 수 있도록 돕는 건 어른인 우리의 몫이며 궁극적으로는 우리 모두를 위한 일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어쩌면 <소년 심판>의 엔딩은 가히 충격적이라 말할 수 있다. 내게 엔딩이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 직접 물어온 본들도 계시다. 물론 나는 작가도 연출진도, 드라마와 관계된 사람은 아니지만 작품을 보며 고민하며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에 앞의 모든 이야기를 부정하는 듯한 엔딩에 대해 물어온 것 같다. 그만큼 가슴 아픈 엔딩이었다. 내가 느낀 엔딩의 의미는 소년에게 관심을 갖길 바라는 간절함이다. 이번 글에서도 지겹도록 반복하고 있지만, 작품 역시 충격적인 엔딩을 통해서 다시 한번 우리가 가져야 할 관심을 강조하고 있다고 느꼈다. ‘속도’가 아닌 ‘관심’을, 판결 후 건강한 사회 구성원이 될 수 있도록 가정을 포함한 학교와 사회, 나라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는 외침. 소년 범죄 앞에 소년법을 폐지하는 것이나 처벌 수위를 높이는 것을 논하기 앞서 선제되어야 할 것, 바로 아이들을 향한 균형 잡힌 관심 말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 건가? 내게 물어본다면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방법에 대해서 말하기는 어렵다. 사실 아직은 모르겠다. 추상적이고 이상적인 글로 마무리 짓고 싶지 않지만 사실이다. 다만 적어도 앞으로 소년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된다면 판단하기 전에 생각을, 상황을 호기심이 아닌 "관심"으로 주의를 기울여 보려 한다. 아이들을 향한 반응의 속도마저 조금 늦추고 천천히,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한 사람의 몫을 할 수 있도록 생각을 가다듬으려 한다. 무엇보다 함께 고민하는 자리를 지키려고 한다. 이 또한 추상적 일지 모른다. 하지만 '관심'은 모든 일의 출발선이라 생각한다면 이러한 시작을 만들어준 이 작품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그래서 부디 모두, 이 작품을 한 번은 시청해보았으면 마음이다.
“어떤 작품으로 기억될지는 모르겠어요. 함께 고민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해서 선택했거든요.”
(김혜수 배우 인터뷰, 마이데일리)
위의 문단에 마지막으로 쓴 '고민하는 자리'는 김혜수 배우의 마이데일리 인터뷰를 보고 생각했다. 이 글을 쓴 목적이 김혜수 배우가 작품을 선택한 이유와 같기에 김혜수 배우의 인터뷰 속 한 문장을 빌러 이 글을 마칠까 한다.
소년심판 (10부작)
채널 넷플릭스 제작사 길픽쳐스, 지티스트
제작진 연출 홍종찬 극본 김민석
김혜수, 김무열, 이성민, 이정은 등 출연